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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공론의 장’ 또는 ‘그들만의 성채’

2017 대한민국 ‘카톡 스피어’

‘공론의 장’ 또는 ‘그들만의 성채’

‘공론의 장’ 또는 ‘그들만의 성채’

[shutterstock]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3월  1일 서울 도심을 촛불과 태극기, 거대한 두 개의 물결로 갈라놓았다. 같은 시간 온라인 세상도 출렁였다. 대학 동창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선 40대 학원강사 전모 씨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스마트폰에 안 읽은 메시지 알림이 수십 개씩 떴다”고 했다. 학과 동기들이 함께 만든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에 집회 참가자들이 현장 사진을 찍어 올리고, 다른 친구들은 응원과 격려의 글을 잇달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내 주위 사람들은 다 대통령 탄핵이 정의라고 말한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국민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70대 전직 교수인 김모 씨의 카카오톡(카톡) 상황은 달랐다. 김씨는 비평준화 시절 지역 명문고와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평생 법학교수로 일했다. 이러한 삶의 이력 때문에 주위에 법조인과 학자가 많다. 그가 이들과 소통하는 몇몇 단톡방에는 이날 태극기집회 관련 글과 사진이 여러 개 올라왔다. 김씨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규모를 비교하며 ‘태극기 쪽 참가자가 훨씬 많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었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경조사 공지 정도만 올라오던 공간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극기집회에 한 번도 나간 적 없지만 현장 분위기가 어떤지,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단톡방을 통해 생생히 접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인스턴트 메신저의 한국적 변신

‘공론의 장’ 또는 ‘그들만의 성채’
카톡은 ‘국민 앱’(애플리케이션)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 조사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98%가 카톡을 설치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모바일로 페이스북과 네이버 ‘라인’을 사용한 비율이 각각 20.3%와 8.4%에 그쳤다. 이처럼 카톡 사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 중 하나는 학교, 회사 등에서 메시지 전달도구로 널리 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한 중학생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반별로 가장 먼저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단톡방을 만드는 거다. 반 회장이 공지사항을 올리고, 친구들끼리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거나 어느 과목 숙제가 어떻다거나 하는 얘기를 거기서 하기 때문에 카톡을 안 쓰면 학교생활이 힘들어진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학기 초 학부모 전체를 초대해 단톡방을 만들거나 군대에서 소대나 중대별로 단톡방을 만들어 사병 부모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도 흔하다.

40대 직장인 황모 씨는 “과거에도 여러 명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MSN이나 네이트온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개인용 컴퓨터(PC)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로그아웃하면 단체방이 사라지는 형태라 동일 멤버가 같이 대화하려면 매번 새로 불러야 했다. 반면 카톡은 한 번 단톡방을 꾸리면 누군가 탈퇴하거나 일부러 나가지 않는 이상 계속 모임이 이어지고 모바일 기반으로 24시간 온라인 상태가 유지돼 더 편리하다”고 밝혔다. 2010년 탄생한 카톡이 이런 기능으로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 시장을 선점하면서 학교와 회사 등 여러 공동체가 잇달아 공적 단톡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방들은 참여자 사이 친밀도나 공동 관심사, 이해관계 등에 따라 다시 수많은 사적 단톡방으로 분화했다.



지난해 군대에 아들을 보낸 한 50대 주부는 “부대에서 만든 단톡방에 가입했더니 다른 부모들이 계급별, 지역별로 별도 단톡방을 만들어 나를 초대하더라. 지금은 아들 군대 관련 단톡방만 3개”라고 밝혔다. 그는 “친해진 엄마들하고는 단톡방에서 군대 얘기뿐 아니라 우리 집 얘기, 친구 얘기 등 사적인 대화도 나눈다”고 밝혔다. 지난여름 유럽으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30대 직장인도 “여행 전 준비사항 등을 공유하려고 만든 단톡방은 이제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지만, 현지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만든 단톡방에선 지금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렇게 단톡방이 계속 ‘새끼’를 치면서 카톡은 한국에서 인스턴트 메신저라기보다 다중이 교류하는 소셜네트워킹 도구로 더욱 널리 쓰이게 됐다. 100% 육박하는 앱 설치율이 보여주듯 카톡 사용자 풀은 성별과 세대도 초월한다.

60대 대학교수 박모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널리 카톡을 사용하는지 이야기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를 화제에 올렸다. “영화를 보면 외계인의 지구 도착 소식을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즉각 접한다. 반면 그 윗세대인 교수는 학생들이 술렁거리는 것을 보고 뒤늦게 TV를 켜서 뉴스를 본다. 만약 영화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할 리 없다. 교수든 학생이든 거의 동시에 카톡을 통해 외계인 이야기를 받아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장년층 이상 중에는 아직도 스마트폰 사용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적잖다. 그런데 카톡은 문자메시지를 읽고 보내는 정도의 기능만 알면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 접근이 쉽다”고 밝혔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16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 요약보고서’를 봐도 우리나라 인터넷 서비스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층과 그 외 연령층의 이용률 격차가 가장 적은 서비스가 인스턴트 메신저(고령층 61.4%, 그 외 94.6%)였다(그래프 참조). 박씨는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대형지진이 났을 때도 트래픽이 폭증해 카톡이 여러 시간 두절되지 않았나”라며 “요즘 우리 세대는 많은 사람이 카톡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사회와 교류한다. 나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카톡을 통해 아는 경우가 많은데, 은퇴해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하듯 내가 관심 있어 할 만한 내용을 골라 보내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탄핵 찬반 논란은 이처럼 단톡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보 유통의 양과 속도를 급속히 높인 계기가 됐다. 서울 한 명문여고를 졸업한 70대 김모 씨는 동창생 단톡방이 요즘 갑자기 활성화되며 정치적 공간으로 변해가는 데 어색함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원래는 친구들끼리 좋은 전시회나 영화 얘기를 공유하고 시간 맞춰 같이 보러 다니는 용도로 단톡방을 썼다. 그런데 몇몇 친구가 다른 단톡방에 도는 기사, 칼럼, 선언문 같은 걸 옮겨 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런 글이 다수를 이뤄 이제는 서로 대화를 주고받기보다 밖에서 떠도는 얘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창구처럼 변한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친구는 몇 명 안 되지만 오랜 인연이라 뭐라 하지도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모바일 홍보 강화 등을 위해 ‘소셜 프로단’이라는 이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담당 조직을 만든 적이 있다. 당시 김무성 당대표는 이 단체 출범식에 참석해 “조직 이름을 ‘새누리당 SNS 전사’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며 “(‘전사’들을 위해 당에서) 모든 걸 다 결재해드릴 테니 돈 아끼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시라”고 격려했다. 보수정당의 정책이나 장점이 SNS에서 진보정당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급증한 시니어 카톡 ‘전사’

‘공론의 장’ 또는 ‘그들만의 성채’
이번 탄핵정국에서 보수진영 인사들도 같은 방식으로 ‘동지’의 ‘SNS 활동’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박사모’ 등 50여 개 단체가 구성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온라인 카페에는 3·1절을 앞두고 ‘대한문 앞 탄핵 반대 집회’를 알리는 공지문이 올라왔다. 이 글 안에는 ‘애국시민 여러분들께서 아는 지인과 애국단체의 카톡, 밴드 등에 올려서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당부의 말이 담겨 있었다.

전직교수 김모 씨의 동창 카톡방에 올라온 어느 글에도 ‘무한 퍼트림 부탁드립니다’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 소속 한 검사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측과 ‘작당’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김씨는 “최근 카톡방에 올라오는 정치 관련 뉴스에는 이런 식으로 공유를 요청하는 당부의 말이 붙은 게 많다”며 “내 지인들도 사명감을 갖고 이런 뉴스를 자신이 참여하는 각종 단톡방에 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정규재TV’ 등의 인터넷 방송이나 탄핵심판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 변호인으로 활동한 김평우 변호사 등의 발언은 순식간에 여러 단톡방에 공유된다고 한다. 그는 “탄핵국면 초기 많은 언론이 이른바 ‘촛불민심’만 국민의 뜻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 영향으로 ‘언론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보수층이 단톡방을 대안언론처럼 사용하는 분위기”라며 “이렇게 단톡 활동이 활발해지고 그 여파로 태극기집회 참가자가 늘자 비로소 정치인들이 태극기집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노력이 세상을 바꿨다고 자평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최근엔 젊은 세대도 카톡 사용 중 이들의 ‘활약’을 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0대 변호사 장모 씨는 얼마 전 한 단톡방에 ‘강제 초대’를 받은 경험을 들려줬다. 그를 초대한 사람은 이름만 알 뿐 안면이 없는 선배 변호사였는데, 해당 단톡방에는 이미 변호사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은 그 방에서 몇몇 변호사는 지속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기각돼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었다. 장씨는 “처음엔 가만히 지켜보다 계속 있으면 나도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아무 말 없이 빠져나왔다. 나보다 앞서 나간 변호사도 제법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밝혔다. 40대 직장인 지모 씨는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단톡방에 70대 이모부가 들어와 자꾸 정치 뉴스를 올린다”며 “출처가 불분명한 얘기도 많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젊은 세대는 단톡방 등을 통해 자신과 다른 정치적 의견을 접하게 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장·노년층은 단톡방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다른 세대에도 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했다.



장  ·  노년층 단톡방 통해 의견 전달 노력

‘공론의 장’ 또는 ‘그들만의 성채’

지난해 12월 7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장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오른쪽)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한 동영상 캡처 자료를 보여주며 “이래도 최순실 씨를 모르느냐”고 추궁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날 카카오톡을 통해 김 전 실장이 최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영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뉴스1]

30대 학원강사 손모 씨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는 카톡에서는 보통 친구들과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고, 정치 이슈 등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싶을 때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나와 정치적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단톡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때도 소통을 하지 일방적으로 내 주장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여럿이 함께 쓰는 단톡방에 아무 설명도 없이 불쑥불쑥 정치 뉴스만 올리는 사람을 보면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SNS 사용에 능숙한 젊은 세대가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SNS를 번갈아 사용하는 것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디지털 미디어 리서치 업체 코리안클릭이 지난해 발표한 ‘세대별 소셜미디어 이용행태 분화 현상’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66.7%, 20대 초반 사용자의 61.0%가 페이스북을 이용했다. 반면 50대의 페이스북 이용률은 19.7%에 그쳤다. 사진을 주로 등록하는 인스타그램 서비스도 10대의 37.8%, 20대 초반의 37.2%가 이용하지만 50대 이용률은 5.9%에 불과했다. 중·장년층에게는 카톡이 친교의 장이자 정치적 발화의 도구일 수도 있는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최근 사이버 세계에 카톡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니어 세대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6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 요약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실버 서퍼’ 비율은 2011년 13.4%에서 지난해 38.4%로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7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도 25.9%로 2014년 14.1%, 2015년 17.9% 등에 이어 지속적인 증가세다. 60대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비율은 74.5%에 달했다. 10대(100%), 20대(100%), 30대(99.8%)의 인터넷 이용률이 사실상 포화인 상태에서 사이버 세계의 노인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셈이다. 이들은 다른 세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려 하고, 단톡방을 통해 이야기를 건넨다.

탄핵정국은 지극히 사적인 목적으로 ‘끼리끼리’ 단톡방을 사용하는 세대가 카톡을 통해 정치적 의견을 전파하려는 세대의 힘과 열정을 ‘카톡 스피어’에서 대면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의 접촉이 사이버 세계에 넓은 ‘공론의 장’을 만들게 될까, 아니면 각각 ‘그들만의 성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까. 카톡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광화문광장 혹은 서울광장을 눈여겨보게 되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7.03.08 1078호 (p24~27)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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