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4일 이천수 선수가 멕시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108년 만에 금의환향한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한 취재진은 2만여명. 참가선수가 1만5000여명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매체 기자는 물론 방송작가 리포터 등 방송인과 스포츠 칼럼니스트 등이 치열하게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ID 카드에 쓰인 E자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보도진들은 따지고 보면 각국의 응원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국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자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마치 자신이 딴 양 호들갑스럽게 기자실을 누빈다. 반대로 금메달 후보가 맥없이 무너지면 낙종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소침하기 일쑤다.
그래서 취재기자의 분위기를 보면 해당 국가의 성적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기자단은 대회 초반 사격과 유도에서 부진한 성적을 올리자 한때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나마 축구가 좋은 성적을 올려 위안을 삼았지만. 일부 기자들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는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태권도와 양궁을 대회 초반에 치르게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로비를 해야 한다는 신소리를 하기도 했다.
무더위 탓 … 기자들도 낮잠은 필수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아테네에 집중돼 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아테네의 모습은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런던 등 유럽의 어느 도시 못지않게 화려하고 우아하다. 그러나 돋보기를 들이대면 미흡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아테네의 어두운 모습들 역시 보도진의 좋은 취재거리다. 기실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의 숨은 1인치까지 전하는 것은 보도진의 의무이기도 하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아테네는 개판(?)이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많은 개들이 거리를 누비고 다녔고, 집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부랑자들도 많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개들은 도살돼 묻혔고, 부랑자들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유럽 언론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아테네는 올림픽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길 잃은 개와 부랑자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측 보도’까지 한다.
아무튼 취재 열기는 아테네의 더위만큼이나 달아올라 있다. 올림픽의 구호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다. 아마도 보도진의 구호는 ‘더 빨리, 더 정확히, 더 깊게’가 아닌가 싶다. 매체의 성격은 다르지만 모두가 속보와 특종에 목숨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한 기자는 “특종하고 난 다음날 시체로 발견되더라도 특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기자들은 낙종을 죽기보다 더 싫어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테네 중심가 신타그마(한국의 강남이나 명동) 광장에 여기저기 밟히는 뚱뚱한(엉덩이가 태산처럼 큰 나이 든 여성) 여인들만큼이나 아테네엔 특종거리가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의 메달 경쟁, 밖에서는 취재진들의 취재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아테네에선 누구나 2시간의 시에스터(낮잠)를 즐겨야 한다(잠을 자지 않고는 더위를 견딜 수 없다). 외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낮잠을 청하는 그들 가운데는 30년 넘게 올림픽을 취재한 60, 70대 노(老)기자들도 있고(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현지 취재를 한 필자는 그들에 비교하면 애송이다), IBC(국제방송센터)나 MPC(메인 프레스센터)를 헷갈려 하는 초보 기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같이 목에 걸고 있는 ID 카드는 올림픽 기간 동안 갖가지 특혜가 부여되는 요술방망이다. 이 카드로 38개 모든 경기장에 무상으로 출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 버스 박물관 등도 무료로 타거나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경기장 곳곳에 있는 음료수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으며, 현지 경찰들에게 특별한 외국인으로 보호받을 수도 있다. ID 카드가 말 5개 이상짜리 마패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셈이다.
ID 카드를 보여주고 경기장으로 들어가 멀티비전과 전화세트가 놓여 있는 보도센터에 앉으면 대회 진행요원들이 각 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를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보도진들은 불만이 많다.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가 늦게 온다느니, 아테네 음식이 너무 짜다느니, 몸수색을 너무 자주 한다느니…. 심지어 한 유럽 기자는 ‘보도자료’를 내놓으라면서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이 경찰관이나 군인이 없으면 치러지지 못하게 된 게 벌써 30년이 넘는다. 72년 뮌헨올림픽에서 ‘검은9월단’에 혼이 나고부터 올림픽은 군경에 의지하지 않으면 대회를 치를 수 없게 됐다. ‘테러올림픽’의 원조격인 뮌헨올림픽에선 검은9월단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들과 독일 경찰관, 그리고 검은9월단 단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각국의 귀족 또는 부호들로 이뤄진 IOC위원들과 명품으로 치장한 그들의 부인들도 호텔에서 몸수색을 당해 스타일을 구기기 일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장과 선수촌, 그리고 미디어 빌리지는 흡사 포로수용소를 연상케 한다. 군경이 중무장한 채 24시간 이중삼중으로 경계하기 때문. 경계에 나선 이들에게 ‘실수’란 건 없다. 테러가 일어나면 올림픽은 끝장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스 정부가 20만명도 되지 않는 정규군 가운데 수만명의 군인을 차출해 올림픽을 지키게 한 것은 테러리스트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테러가 발생하면 올림픽은 끝장이다.
그렇지만 통제를 받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기장과 올림픽 관련 시설을 지키는 군경이 얼마나 융통성이 없는지 허리띠에 붙어 있는 작은 금속 때문에 ‘삑’ 소리가 나도 온몸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댄다. 수모에 가까운 보호를 받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 선수단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
군 시설 촬영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상상을 뛰어넘는 삼엄한 경비로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 한 기자가 경호 상태를 시험해보기 위해 올림픽 관련시설의 담을 넘다가 체포되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고, 중국 기자들은 그리스 군 시설을 허락받지 않고 촬영하다 경찰관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가방을 놓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에도 폭발물이 들어 있지 않나 의심한 경찰관이 가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기 일쑤다. 달랑 물병과 셔츠 1장이 들어 있는 가방 때문에 ‘1호 경계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아테네 시내가 적막한 고요 속에 휩싸이는 오전 2시가 넘어서도 프레스센터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기자들과 촬영한 화면을 손질하는 엔지니어들은 24시간 내내 일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구촌이 참으로 넓다는 것을 이곳 IBC에서 실감하고 있다. 환하게 밝혀진 IBC의 밤이 깊어간다. 아니, 낮이 익어가는지도 모른다.
ID 카드에 쓰인 E자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보도진들은 따지고 보면 각국의 응원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국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자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마치 자신이 딴 양 호들갑스럽게 기자실을 누빈다. 반대로 금메달 후보가 맥없이 무너지면 낙종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소침하기 일쑤다.
그래서 취재기자의 분위기를 보면 해당 국가의 성적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기자단은 대회 초반 사격과 유도에서 부진한 성적을 올리자 한때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나마 축구가 좋은 성적을 올려 위안을 삼았지만. 일부 기자들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는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태권도와 양궁을 대회 초반에 치르게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로비를 해야 한다는 신소리를 하기도 했다.
무더위 탓 … 기자들도 낮잠은 필수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아테네에 집중돼 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아테네의 모습은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런던 등 유럽의 어느 도시 못지않게 화려하고 우아하다. 그러나 돋보기를 들이대면 미흡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아테네의 어두운 모습들 역시 보도진의 좋은 취재거리다. 기실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의 숨은 1인치까지 전하는 것은 보도진의 의무이기도 하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아테네는 개판(?)이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많은 개들이 거리를 누비고 다녔고, 집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부랑자들도 많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개들은 도살돼 묻혔고, 부랑자들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유럽 언론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아테네는 올림픽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길 잃은 개와 부랑자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측 보도’까지 한다.
아무튼 취재 열기는 아테네의 더위만큼이나 달아올라 있다. 올림픽의 구호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다. 아마도 보도진의 구호는 ‘더 빨리, 더 정확히, 더 깊게’가 아닌가 싶다. 매체의 성격은 다르지만 모두가 속보와 특종에 목숨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한 기자는 “특종하고 난 다음날 시체로 발견되더라도 특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기자들은 낙종을 죽기보다 더 싫어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테네 중심가 신타그마(한국의 강남이나 명동) 광장에 여기저기 밟히는 뚱뚱한(엉덩이가 태산처럼 큰 나이 든 여성) 여인들만큼이나 아테네엔 특종거리가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의 메달 경쟁, 밖에서는 취재진들의 취재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아테네에선 누구나 2시간의 시에스터(낮잠)를 즐겨야 한다(잠을 자지 않고는 더위를 견딜 수 없다). 외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낮잠을 청하는 그들 가운데는 30년 넘게 올림픽을 취재한 60, 70대 노(老)기자들도 있고(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현지 취재를 한 필자는 그들에 비교하면 애송이다), IBC(국제방송센터)나 MPC(메인 프레스센터)를 헷갈려 하는 초보 기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같이 목에 걸고 있는 ID 카드는 올림픽 기간 동안 갖가지 특혜가 부여되는 요술방망이다. 이 카드로 38개 모든 경기장에 무상으로 출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 버스 박물관 등도 무료로 타거나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경기장 곳곳에 있는 음료수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으며, 현지 경찰들에게 특별한 외국인으로 보호받을 수도 있다. ID 카드가 말 5개 이상짜리 마패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셈이다.
ID 카드를 보여주고 경기장으로 들어가 멀티비전과 전화세트가 놓여 있는 보도센터에 앉으면 대회 진행요원들이 각 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를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보도진들은 불만이 많다.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가 늦게 온다느니, 아테네 음식이 너무 짜다느니, 몸수색을 너무 자주 한다느니…. 심지어 한 유럽 기자는 ‘보도자료’를 내놓으라면서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이 경찰관이나 군인이 없으면 치러지지 못하게 된 게 벌써 30년이 넘는다. 72년 뮌헨올림픽에서 ‘검은9월단’에 혼이 나고부터 올림픽은 군경에 의지하지 않으면 대회를 치를 수 없게 됐다. ‘테러올림픽’의 원조격인 뮌헨올림픽에선 검은9월단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들과 독일 경찰관, 그리고 검은9월단 단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각국의 귀족 또는 부호들로 이뤄진 IOC위원들과 명품으로 치장한 그들의 부인들도 호텔에서 몸수색을 당해 스타일을 구기기 일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장과 선수촌, 그리고 미디어 빌리지는 흡사 포로수용소를 연상케 한다. 군경이 중무장한 채 24시간 이중삼중으로 경계하기 때문. 경계에 나선 이들에게 ‘실수’란 건 없다. 테러가 일어나면 올림픽은 끝장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스 정부가 20만명도 되지 않는 정규군 가운데 수만명의 군인을 차출해 올림픽을 지키게 한 것은 테러리스트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테러가 발생하면 올림픽은 끝장이다.
그렇지만 통제를 받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기장과 올림픽 관련 시설을 지키는 군경이 얼마나 융통성이 없는지 허리띠에 붙어 있는 작은 금속 때문에 ‘삑’ 소리가 나도 온몸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댄다. 수모에 가까운 보호를 받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 선수단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
군 시설 촬영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상상을 뛰어넘는 삼엄한 경비로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 한 기자가 경호 상태를 시험해보기 위해 올림픽 관련시설의 담을 넘다가 체포되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고, 중국 기자들은 그리스 군 시설을 허락받지 않고 촬영하다 경찰관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가방을 놓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에도 폭발물이 들어 있지 않나 의심한 경찰관이 가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기 일쑤다. 달랑 물병과 셔츠 1장이 들어 있는 가방 때문에 ‘1호 경계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아테네 시내가 적막한 고요 속에 휩싸이는 오전 2시가 넘어서도 프레스센터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기자들과 촬영한 화면을 손질하는 엔지니어들은 24시간 내내 일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구촌이 참으로 넓다는 것을 이곳 IBC에서 실감하고 있다. 환하게 밝혀진 IBC의 밤이 깊어간다. 아니, 낮이 익어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