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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 해산해 10월 초 재집결하는 빡빡한 일정. 소속팀 복귀 이후 서너 경기밖에 치르지 않은 채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그 짧은 사이 크나큰 변화를 겪은 선수도 있다. 발렌시아 CF의 이강인, SV 다름슈타트 98의 백승호,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황희찬이다. 다행히 큰 부침은 없었다. 영리하게 대응하며 한 발씩 뻗어나갔다.
명실상부 에이스로 거듭나는 이강인
축구선수는 늘 변수에 시달린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사를 압축해놓은 느낌이다. 한 경기, 한 장면에 선수 운명이 엇갈리기도 한다. 감독 및 구단과의 관계, 동료와 포지션 경쟁,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연유하는 팀 이적까지. 제 의지 밖의 일이 수시로 터지니 미래를 단언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최근 입지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한 선수는 단연 이강인. 1군 데뷔전 및 승격 기회를 줬던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의 후임으로 알베르트 셀라데스 신임 감독이 등장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시즌 중 뜬금없이 감독을 갈아치운 데는 “구단주 피터 림과의 불화가 결정적”이라고 전해왔다. 싱가포르 출신인 림이 유망주 육성에 공을 들이는 데다, 이강인을 전면에 내세워 아시아시장을 정조준하리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당장 레귤러 멤버로 쓰기엔 부족할 수 있어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용도로 뛰게 한다는 것이다.
설령 ‘마케팅용’이라도 어떤가 싶다. 이강인은 출전 시간이 몰라보게 늘어났다. 셀라데스 감독이 부임한 이래 매 경기 피치를 올리고 있다. 상대도 그저 그런 팀이 아니었다. FC 바르셀로나나 첼시 FC 같은 거함과 맞섰다. 한국인 최연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 기록을 깬 건 덤. 최근에는 정규리그 첫 선발 출격에 데뷔 골까지 작렬했다.
토랄 전 감독 체제에서 포지션, 플레이 스타일 등 여러 대목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이강인은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뛸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조금 부족해도 마케팅 효과가 있다’가 아니라 ‘잘하는 데다 마케팅 효과까지 있다’는 평가가 옳다.
물론 10대 후반 선수가 완벽할 수는 없다. 자신감은 확실히 붙었지만 지금보다 여물었을 때 좀 더 매서운 모습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벤투 감독 또한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강인을 가리켜 “수비력은 보완할 부분이 있다. 대표팀에서 함께하는 동안 한층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 상황. 이 선수가 3년 뒤 월드컵까지 어떻게 성장해갈지 지켜보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 될 테다.
성공적인 분데스리가 데뷔 백승호
SV 다름슈타트 98의 백승호. [뉴스1]
그것도 기나긴 준비 없이 단숨에 해치워야 했다. 새로운 팀과 계약한 뒤 바로 9월 A매치를 치렀고, 복귀 직후 데뷔전까지 치르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청용, 이재성 등 한국 선수가 많은 독일 ‘2. 분데스리가’(2부 리그) 덕을 본 걸까. 선수 스스로 확실히 안정감을 느꼈다. 재빨리 녹아들며 적응해나갔다. 디미트리오스 그라모지스 감독은 3경기 연속 선발로 굳건한 신뢰를 표했다. 계약 전 미팅 자리에서 나온, “백승호의 강점이 우리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은 단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벤투 감독 머릿속의 백승호는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A매치를 두 차례 소화한 백승호는 모두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소속팀 다름슈타트에서 맡은 역할과 같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답게 공을 다루고 연결하는 기술이 남다르기에 지도자의 마음을 샀다. 다만 향후에도 계속 아래에 머물지, 아니면 전진 배치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받쳐준다면 더 나아가 공격적으로 해결하는 그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관련해 좀 더 적극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바라는 이들도 있다. 중앙 수비수 바로 앞에 선 만큼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상대를 제압해줬으면 하는 관점에서다. 본디 백승호 자체가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부수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A매치 데뷔 이란전에서는 상대 길목을 곧잘 차단하는 매력을 뿜어내곤 했다. 이런 모습이 다시 나올지 지켜보는 것 또한 중대 관전 포인트다.
잠시 길을 잃었던 황희찬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황희찬. [GettyImages]
하지만 벤투호에서는 그만큼 재미를 보지 못했다. 포지션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다. 즐겨 쓰지 않던 스리백을 꺼낸 벤투 감독은 오른쪽 윙백으로 황희찬을 놨다. 폭발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움직임에 주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급작스러운 자리 이동에 선수 자신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나왔다. 말 그대로 실험을 겸한 평가전의 묘미는 살렸지만, 황희찬은 확실히 공격적으로 써야 제맛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황희찬은 소속팀으로 돌아가 다시 고삐를 당겼다. 꿈의 무대 챔피언스리그에서 첫선을 보여야 했다. 종전의 중압감과는 비교가 안 됐다. 유로파리그 4강 주역으로 우뚝 섰던 황희찬이지만, 챔피언스리그는 또 다른 얘기였다. 이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부터 훨씬 더 강력했다. 황희찬은 이를 처음 경험하는 자리에서 1골 2도움의 주인공이 됐다. 유럽 전역에 맹위를 떨쳤음은 물론이다. 선수 본인이 목표로 삼은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진출에도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한 박자 쉬어가긴 했다. 훈련 중 공에 맞아 눈을 다쳤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지난 시즌까지도 잔부상이 많았던 터라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다시 올라오는 추세다. 최근 고글을 끼고 복귀전을 치렀다. 여기에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리버풀 FC와의 맞대결까지 잡혀 있어 본인도 매우 신나 있다. 상승세를 타면 탈수록 펄펄 나는 게 이 선수의 습성. 황희찬은 더 좋은 공격수로 거듭나기 위한 양분을 모조리 빨아 당기는 중이다.
이들 한국 축구 유망주 셋은 10월 둘째 주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당장 한국 축구를 살려내라는 특명을 받은 건 아니다. 냉정히 말해 이번 스리랑카전과 북한전에서 얼마나 뛰게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장기적으로 이들이 잘돼야 대표팀 전체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과정에서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무척이나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