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과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포옹하고 있다. [ACN]
카스트로와 차베스
쿠바 학생들이 마차를 타고 등교하고 있다(왼쪽).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를 사려고 줄 서 있는 시민들. [위키피디아, Mecro Press]
카스트로는 이 과정에서 차베스에게 조언하는 등 사실상 멘토 역할을 했다. 게다가 쿠바도 원유 공급에 대한 보답으로 베네수엘라에 의사를 비롯해 전문 인력을 대규모로 파견했다.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보낸 인력은 4만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75%는 의사였다. 베네수엘라는 이들의 인건비로 연간 54억 달러가량을 쿠바에 지급했다. 쿠바에서 파견한 인력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차베스 정권을 지키는 데 투입된 정보요원과 군 자문관들로, 이들의 규모는 1만여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법무부와 정보기관, 각종 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차베스는 이들 쿠바 정보요원에게 자국 내에서 총기를 소지하고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줬다.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역시 쿠바와 관계가 돈독했다. 마두로는 카스트로가 2016년 사망한 이후 정권을 잡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도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마두로는 오일머니를 석유산업과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고 무상복지를 늘리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데 사용해왔다. 마두로는 또 지난해 5월 20일 실시된 대선에서 각종 불법행위를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대선은 주요 야당 후보가 불참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부정선거라는 비판을 들었다.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원유 수출 금지 같은 강력한 제재조치에 나섰고,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올해 1월 스스로를 임시대통령으로 선언한 뒤 마두로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남미 폭정 3인방
식료품을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쿠바 국민들. [cubanreporer.net]
미국 정부는 아예 본보기로 9월 26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와 자녀 4명 등에 대해 자국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9월 24일에도 베네수엘라 석유를 쿠바로 운송한 파나마 등의 해운업체 4곳을 제재했으며, 쿠바 유엔대표부 외교관 2명도 추방했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추진해온 쿠바와의 화해 정책을 취소하고 제재조치를 강화해왔다. 오바마는 2014년 12월 쿠바와 관계 복원을 선언하면서 해빙 분위기에 물꼬를 텄고, 2015년 7월엔 외교 단절 54년 만에 아바나에 미국대사관을 열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인의 쿠바 개인 여행을 제한한 것은 물론, 쿠바 군부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을 단속하는 조치를 내리는 등 양국관계를 국교 정상화 이전으로 되돌리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마두로 정권 붕괴를 고리로 쿠바와 니카라과 정권을 와해시키고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미국의 뒷마당(backyard)’인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를 ‘폭정 3인방(troika of tyranny)’이라고 규정해왔다.
트럼프 정부는 이처럼 쿠바에 대한 고강도 제재조치를 계속 내놓고 있으며 지금까지 내린 제재조치의 핵심은 쿠바 정권의 돈줄을 끊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재조치 내용을 보면 쿠바계 미국인의 가족 여행을 제외한 모든 국민의 쿠바 여행 금지를 들 수 있다. 또 쿠바계 미국인이 쿠바에 사는 가족을 위해 달러를 송금하는 것도 분기당 최대 1000달러(약 120만 원)로 제한했다.
미국에는 쿠바계 국민 180만여 명이 살고 있다. 전체 쿠바 인구가 112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6명당 1명꼴이다. 이들이 고국의 가족과 친지에게 보내는 돈은 매년 30억 달러(약 3조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 연대법’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경제난으로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탈출하고 있다. [UNHCR]
트럼프 정부의 이런 고강도 제재는 마두로 정권에 대한 쿠바의 지원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트럼프는 또 내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 등에 거주하며 쿠바 정권 붕괴를 원하는 쿠바계 미국인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속셈도 있다.
쿠바 정부는 이에 맞서 민간과 공공사업자들의 상품 및 서비스 가격 인상 금지 등 전면적인 가격 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쿠바 정부는 닭고기, 쌀, 콩, 달걀을 인당 한정 수량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국가 배급 시스템을 통해 통제하는 조치를 내렸다. 쿠바 정부는 그동안 연간 20억 달러를 들여 식료품의 3분의 2를 외국에서 들여왔지만 외화 수입이 크게 줄면서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하자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 정부가 각종 제재조치 등 잔악한 집단학살 정책을 통해 우리를 옥죄고 있다”며 국민에게 에너지와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지도자들의 말과는 달리 경제난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는 쿠바와 베네수엘라 국민의 신세가 고달프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