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맘이어도 괜찮아

엄마의 외로움을 모른 척 말아요

출산 후 “세상과 단절된 것 같다” 호소 많아

  •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선임연구원

    입력2019-10-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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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보물처럼 아끼는 단톡방(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이 하나 있다. 2015년 봄, 출산을 앞두고 다니던 서울 마포구 한 산부인과의 원장이 그해 출산하는 산모들의 모임을 주선(?)해줬다.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스무 명 남짓한 20~40대 여성은 탕수육과 짜장면을 앞에 두고 어색하게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순5모임’(2015년 순산을 위한 모임)의 시작이었다.

    출산 동기 단톡방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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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이 지난 요즘, 나는 그때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그간의 내 삶이 어땠을까 아찔해질 때가 있다. 영유아, 특히 신생아 육아는 도전과 난관의 연속이다. 30년 넘도록 ‘아기’라는 생명체를 거의 본 적 없이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수시로 울어대는 한 어린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해보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달래고 간호하는 모든 일상이 낯설다. ‘내가 아기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건가’ ‘아기는 괜찮은 걸까’ 하는 불확실성과 의심에 수시로 시달린다. 뭔가 걱정될 때면 미친 듯이 인터넷을 검색해보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한 친구는 출산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아기 기저귀에서 라면 냄새가 나 ‘어제 저녁 남편이 먹을 때 한두 젓가락 얻어먹은 라면의 인스턴트 음식 성분(?)이 모유에 들어가 아이에게 전해진 건가’ 하는 죄책감으로 새벽 내내 인터넷을 뒤졌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튿날 아침, 먼저 아이를 키워본 친언니로부터 ‘일회용 기저귀 냄새가 본래 그런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척 허망했단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마다 동료 엄마들과 나누는 단톡은 언제나 든든한 고민 상담의 창구가 돼준다. 같은 2015년생 아이의 엄마지만 출산 시점이 몇 개월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나름 ‘선배 엄마’가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엄마는 ‘우리 아이도 그렇다’며 공감과 위로로 화답한다. 

    그뿐이랴.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 아기를 돌봐야 하는 출산 직후 수개월 동안 우리의 긴긴 밤을 달래준 것은 단톡방에서 이어진 수다였다. ‘육아의 터널’을 견디려면 아기가 잘 때 엄마도 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한번 잠에서 깬 뒤 쉽게 다시 잠들 수 없는 불면의 새벽, 깨어 있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육아의 고됨을 유머로 승화하는 엄마들의 재치는 피로해소제였다. 무엇보다 이 단톡방은 ‘외로움’이라는, 초기 육아의 가장 큰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줬다. 



    항상 아기와 함께 있는 엄마가 외로움에 시달린다는 것은 일견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외로움은 영유아 엄마들이 겪는 가장 흔한 어려움 중 하나다. 2017년 영국 자선단체 ‘액션 포 칠드런(Action for Children)’이 2000명의 영유아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52%가 자녀 출산 이후 외로움을 경험했으며, 24%는 주변과 단절감을 호소했다. 영국적십자가 2018년 영유아 엄마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영국의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한국의 차관급) 트레이시 크라우치(Tracey Crouch) 또한 2016년 첫아기를 출산한 뒤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느낌을 받으면서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엄마들의 고충을 가중하는 것은 막상 이를 주변에 호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30대 중반 한 엄마는 “‘항상 아이와 함께 있는데 뭐가 외롭냐’는 주변의 반응에 더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엄마들조차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를 끝없이 갈구하고, 내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있는데 외롭다니, 말도 안 돼! 캐나다 칼럼니스트 레아 매클래런(Leah McLaren)은 ‘엄마가 되는 끔찍한 외로움(The excruciating loneliness of being a new mother)’이라는 글에서 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말 그대로 내 몸에 동여매(Strapped to my body) 있는데 삶에서 가장 외로운 시기라고 느끼는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다.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오해받는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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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후반에 첫아기를 낳은 늦맘은 외로움에 더 취약할 공산이 크다. 친한 동료는 학부모가 됐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친구를 만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막상 만나서도 초보 엄마로 겪어내고 있는 상황을 나누고 공감을 구하기 어렵다. 

    남편이 든든한 육아 동지라면 좀 낫겠지만, 야근이 일상인 한국 사회에서 그런 남편이 흔하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다. 게다가 40대 무렵인 늦맘의 남편 역시 뒤늦게 찾아온 아빠로서 의무와 직장에서의 각종 압박, 부담에 시달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 외로움을 덜어주기는커녕, ‘안 싸우면 다행’인 것이다. 

    초보 엄마의 외로움과 고립감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외로움은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심장병 발병의 가능성을 높여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서는 외로움의 해악이 “담배를 하루에 15개비씩 피우는 것과 맞먹을 정도”라고 밝혔다. 아이가 자라면 나아진다지만, 출산 무렵부터 최소 2~3년간 외로움이 지속된다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영유아 엄마(혹은 주양육자)의 외로움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문 편이다. 

    초보 엄마가 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문제’라는 데 있다. 엄마는 대부분 출산 이후 고립과 외로움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출산이 ‘기쁨’ 코드로만 소비된 탓이다. 앞서 언급한 매클래런도 “아기와 애착을 형성하는 일이 배우자와 관계를 포함, 주변의 여러 영역과의 단절로 이뤄진다는 것은 많은 초보 엄마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그래서 더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늦맘은 임신과 출산 자체가 도전인 경우가 많아 임신 준비 및 출산 기간 내내 아이의 안위에만 신경 쓰기 쉽다. 나도 그랬다. 임신 기간 내내 배 속의 아기가 잘 지낼지, 어떤 육아용품이 필요할지, 아기 낳는 과정이 얼마나 아플지, 과연 순산할 수 있을지, 모유 수유는 어떻게 할지만 생각했다. 이후 내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주변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외로움 정책’에 초보 엄마도 포함시켜야

    순5모임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매일 바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읽고 쓰고 일하다 갑자기 자거나 우는 것 이외에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기와 단둘이 남겨졌다면, 아기의 상태와 관련된 수많은 질문을 혼자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지쳤다면, 하루 종일 아기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것 외에는 거의 대화를 할 수 없었다면 나는 아마 감히 ‘늦맘이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열이 38.6도.’ 단톡방에 뜬 한 줄의 메시지에서 엄마들은 아이의 상태와 해당 엄마의 마음을 짐작해낸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못했다’는 메시지에 담긴 다중적 의미, 즉 ‘아이가 아파 속상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내 처지도 큰일이다’라는 데 공감한다. 동갑내기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모습, 어느덧 동생이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함께 나누는 것도 큰 기쁨이다. 실제 다 같이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것이 4년간 10번이 채 되지 않음에도 엄마들은 이처럼 끈끈하다. 

    어린 시절 앞집과 문 열어놓고 지냈고, 우리 집에 동네 엄마들이 놀러 오곤 했다. 출산 후 너무 외로워 ‘아동도서 영업사원을 기다렸다’던 어느 엄마와 달리 예전 엄마들은 지금처럼 고립되지 않았을 듯하다. 요즘 세상에 갑자기 이웃과 현관문 열어놓고 지낼 순 없겠지만, 산모 모임을 만들어준 산부인과 원장의 배려 같은 따뜻한 관심이 있다면 엄마들은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외로움을 중요한 정책 어젠다에 포함시키고, 초보 엄마(New Mom)의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 및 출산 연령 증가를 경험하면서 초보 엄마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따른 문제점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과 출산 연령의 가파른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영유아 엄마의 외로움을 해결할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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