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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변할 수도 있는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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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이 문제 삼는 대목은 토스의 자본금 129억 원 가운데 RCPS가 96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그래프1 참조). 즉 토스가 증권사 대주주 역할을 할 정도로 자본 면에서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5월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심사 때도 동일하게 적용돼 ‘토스은행’ 탈락의 주요 근거가 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토스는 총 6차례에 걸쳐 RCPS를 발행해 투자금을 유치했다. 현재까지 토스의 누적 투자금은 3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RCPS란 ‘대출은 아니지만 대출 같기도 한’ 주식이다. 우선주(Preferred Stock)기 때문에 의결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에 우선해 배당을 받고, 전환(Convertible)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동시에 상환(Redeemable) 권리도 있어 투자자는 발행 회사에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토스는 ‘투자한 지 3년 후부터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투자금에 8% 단기 이자를 붙여 상환한다’는 조건으로 RCPS를 발행했다. 한편 최근 발행되는 RCPS에는 통상적으로 우선주임에도 의결권이 부여돼 있다. 토스가 발행한 RCPS도 마찬가지. 토스의 투자자는 회사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하면서 우선적인 배당과 보통주 전환 권리를 누리는 동시에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자를 붙여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야놀자, 우아한형제들도 피할 수 없는 ‘돈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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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업계에 RCPS 투자가 확산되는 것은 스타트업과 투자자 둘 다에게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투자자는 스타트업이 승승장구해 주식시장에 상장될 경우 전환권을 행사,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꿔 이익을 실현하고, 기업 사정이 나빠질 경우엔 상환권을 행사해 투자금을 돌려받음으로써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RCPS 활용은 국내에 앞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널리 확산된 투자 방법이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변호사는 “다만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투자의 경우 상환권 실익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초기 투자에 한해 상환권 없는 우선주 투자가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스타트업은 회계 및 재무상 이점을 누린다. 2011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이 도입되면서 RCPS가 자본이 아닌 부채로 분류되기 시작했지만, 비상장회사에 한해서는 RCPS가 여전히 자본으로 간주된다. 또 투자자가 상환권을 발동하기 전까지는 사채(社債)와 달리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과거에는 상환우선주(Redeemable Preferred Stock·RPS)가 주된 투자 방식이었는데, K-IFRS 도입 이후 RPS가 상장 여부를 떠나 모두 부채로 잡히면서 그 대안으로 RCPS 투자가 일반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회의 차단이냐, 금융사의 기본이냐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왼쪽)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뉴스1, 뉴시스]](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d/96/d7/5a/5d96d75a1b3ad2738de6.jpg)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왼쪽)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뉴스1, 뉴시스]
이에 대해 토스 측은 “투자 후 일정 시한이 지나야 상환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당장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토스가 빠른 속도로 기업 가치가 성장하고 있어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할 이유도 없다. 또 회사에 이익금이 있어야 상환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투자 시한 3년이 지나 현재 상환권 행사가 가능한 토스의 RCPS는 절반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1조 원으로 평가된 토스의 기업가치는 올해 8월 2조7000억 원으로 1년도 안 돼 2배 넘게 성장했다. 또한 상법상 상환권 행사는 ‘배당가능 이익’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회사가 영업 활동으로 쌓아놓은 이익이 있어야만 투자금을 회수해갈 수 있다. 2013년 설립된 토스는 매년 적자를 내 현재 결손금(누적 적자)이 1000억 원을 넘어선 상태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RCPS의 상환권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타트업이 성공가도를 달리면 투자금을 돌려받을 이유가 없고, 스타트업이 망하면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RCPS 문제로 토스 같은 테크핀(TechFin·기술+금융)의 금융업 진출이 막히는 것은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기회 차단”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시각은 다르다. 토스가 비상장기업이라 RCPS가 부채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해도, 자본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업에 진출할 때는 RCPS가 가진 잠재적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가 신흥 금융사의 향후 사업 전망을 좋지 않게 평가해 상환권 행사로 그간 쌓아놓은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회수해갈 경우 해당 금융사 고객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금융당국으로서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으로 예금자 보호를 해주는 은행과 증권사는 공공성이 매우 큰 기관인 만큼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재무적 안정성은 기본 중 기본”이라고 말했다.
RCPS의 상환권 행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온라인쇼핑몰 팀그레이프에 각각 20억 원, 15억 원을 RCPS 형태로 투자했던 KB증권과 DS자산운용은 이듬해 팀그레이프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자 연대보증을 선 모회사 옐로모바일을 상대로 투자금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도 발목 잡혀
한편 YG엔터테인먼트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에 670억 원을 토해낼 위기에 처한 상태다. 2014년 10월 LVMH그룹 산하 투자회사 ‘그레이트 월드뮤직 인베스트먼트’는 YG엔터테인먼트에 RCPS 방식으로 610억 원을 투자했는데, 이 투자 계약에서 5년 후 주당 4만3574원에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투자금에 연 2% 이자를 얹어 돌려받는 옵션을 걸었다. 청구일인 10월 16일이 보름도 남지 않은 10월 2일 현재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2만3350원으로 올해 초 최고가(5만800원)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YG엔터테인먼트가 1200억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어 LVMH그룹 측에 투자금을 돌려줄 여력은 충분하지만,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해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상환권 행사를 유보하고자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토스가 증권업 및 인터넷전문은행업에 진출하려면 RCPS의 상환권 문제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나 증권사와 운명을 함께하는 주요 주주는 K-IFRS 기준으로 자본 적정성을 심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토스 투자자들이 상환권 자체를 없애거나, 상환권 행사 가능 시점을 무기한 연기하는 해결책이 거론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토스 투자자들이 보통주 전환 계획서를 제출하고 금융당국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한 발씩 양보할 수 있지도 않겠느냐”고 견해를 피력했다. 토스에 투자한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은 단독으로 행동하기보다 다 함께 움직인다. 토스의 주요 투자자가 여럿이기 때문에 의견을 한데 모으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