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에서 방출된 정성훈(왼쪽)과 KBO의 2차 드래프트 때 LG 트윈스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돼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손주인. [동아DB]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어수선합니다. 구단은 ‘리빌딩을 하겠다’며 팀 개편에 나섰지만 팬들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11월 24일 LG 홈구장인 서울 잠실야구장 앞에는 ‘FA(자유계약선수)도 리빌딩도 필요없다’는 팻말을 든 팬이 1인 시위에 나섰고, 주말인 25~26일에는 더 많은 수가 잠실야구장을 항의 방문했습니다.
이들이 요구한 건 양상문 단장 퇴진. 양 단장이 LG 감독을 맡았던 2014년부터 올해 10월까지 ‘큰’ 이병규(43·현 LG 코치), 이진영(37·현 kt 위즈), 정성훈(37), 손주인(34·현 삼성 라이온즈), ‘작은’ 이병규(34·현 롯데 자이언츠)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습니다.
반대급부로 LG는 점점 젊은 팀이 됐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014년 28.8세이던 LG 선수의 평균 연령은 △2015년 28.2세 △2016년 28세 △2017년 27.5세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4년 동안 LG는 두 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니 성적 면에서도 실패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도 LG 팬들이 양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에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뭘까요.
왜 이렇게 보호해야 할 유망주가 많았을까
LG를 응원하는 이유가 서로 다르듯 이번에도 팬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화가 났겠지만, 종합하자면 ‘LG 프런트가 ‘박병호병(病)’에 걸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홈런 타자’의 대명사가 된 박병호(31·넥센 히어로즈)지만 LG 시절에는 ‘박병신’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알을 깨지 못하는 유망주였습니다. 정의윤(31)도 SK 와이번스로 건너간 뒤 ‘터지는’ 바람에 ‘탈지(脫+LG)효과는 역시 과학’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번 겨울 LG는 ‘유망주는 차라리 우리가 안고 죽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LG가 정성훈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11월 22일에는 2차 드래프트가 열렸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선수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각 구단은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선수를 포함해야 합니다. 올해 LG에서는 ‘작은’ 이병규, 손주인, 백창수(29·현 한화 이글스)가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팀을 옮기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신동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은 페이스북에 ‘LG는 유망주를 지키기 위해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이병규, 손주인, 백창수를 넣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2차 드래프트 결과를 보자. 다른 팀 코어(core) 유망주가 막 팔려나가고 그랬나? 그렇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이어 그는 ‘유망주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슬롯(slot)’이 필요했다는 것은 팀이 스스로 ‘누가 진짜 유망주인지 모른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선수도 잘할 것 같고, 저 선수도 잘할 것 같고, 다 아깝고 그래서 다 지키려니 슬롯이 모자랐다. 이건 ‘결정장애’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계속해서 ‘누굴 키워야 할지 모르겠으니 n분의 1로 기회를 나눠주며 매 시즌 ‘나는 1루수다’ ‘나는 2루수다’ ‘나는 우익수다’를 찍는다. 누가 좀 잘해도 여전히 선택을 못 한다. 다른 선수도 그만큼 시키면 그만큼 잘할 것 같으니까 또 기회를 나눈다. 팀 내 톱(top) 유망주가 있으면 그를 키우기 위해 같은 포지션의 베테랑 즉전(즉시 전력감)을 파는 건 메이저리그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누구를 키우겠다’는 플랜(plan)이 있는 경우다. ‘누구를 키울지 알아보려고’ 베테랑 즉전을 파는 경우도 있나?’라고 덧붙였습니다.
LG 팬 여러분, 이제 고개를 그만 끄덕여도 괜찮습니다. 저 역시 침 흐르는 것도 모르고 저 글을 읽었습니다.
유망주 빼갈까 두렵지만 정작 타석은 베테랑에게
LG 트윈스에서 빛을 못 보다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한 후 홈런 타자로 거듭난 박병호.[동아DB]
최근 4년간(2014~2017) 나이별 타석 비율로 LG와 10개 구단을 비교해볼까요. 이 기간 LG에서는 23~27세 타자가 전체 2만2048타석 가운데 34.9%(7684타석)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나이대 10개 구단 평균은 28.0%이고, LG를 제외한 9개 구단 평균은 27.2%였습니다. LG는 확실히 유망주에게 기회를 많이 준 팀이었습니다.
문제는 신 분과장의 지적처럼 기회를 ‘쪼개서’ 줬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 LG에서 한 시즌 100~200타석에 들어선 27세 이하 유망주는 9명이었습니다. 나머지 9개 구단 평균은 6명. 이 3명 차이면 이병규, 손주인, 백창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LG는 베테랑 타자도 리그 평균보다 많았던 팀입니다. LG에서는 이 기간 35세 이상이 전체 타석 가운데 21.5%에 들어섰는데 같은 기간 리그 평균은 13.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LG 베테랑이 그저 ‘철밥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건 아닙니다. 이 기간 LG 팀 전체 OPS(출루율+장타력)는 0.756이었는데 35세 이상은 0.806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23~27세 LG 타자 OPS는 0.741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간 LG는 능력에 따라 기회를 보장해줬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최근 10년간(2008~2017) 나이별 OPS를 보면 타자가 나이 들면서, 그러니까 경력이 쌓이면서 기량이 발전하는 건 보통 27세까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해 그 선수의 부모라면 몰라도 구단 프런트에서 27세까지 성장하지 못한 선수가 ‘혹시라도 다른 팀에서 터질까’ 걱정하는 건 그리 합리적인 접근법이 아닙니다.
베테랑 쪽을 보면 세월을 막을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진짜 추해지기 전 선수들이 은퇴를 선택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35세 이후에도 타자들이 평균 OPS 0.774를 기록,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8~34세 성적(0.781)에 크게 뒤지지 않는 건 나이 들어서도 계속 잘 치는 선수들만 살아남는다는 뜻일 테니까요.
LG는 올해 팀 평균 자책점 1위(4.32)에 이름을 올리고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투타 불균형’이 문제였다는 뜻일 테고, 타격 기록 중에서 장타력(0.400)이 최하위라는 게 제일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LG는 장타력을 얻는 쪽으로 전력 향상 방향을 잡는 게 옳겠죠. 올해 23~27세인 LG 타자의 장타력은 딱 0.400으로 팀 평균과 같았습니다. 35세 이상은 0.445였습니다.
참고로 FA시장에서 80억 원 ‘잭팟’을 터뜨린 민병헌(30·롯데)의 올 시즌 장타력은 0.445였습니다. 민병헌이 올해까지 몸담은 두산 베어스의 안방구장 역시 투수들에게 극도로 유리하다는 그 잠실야구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