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 원본 로그기록과 삭제된 옥수동 ◯◯◯아파트 로그기록.[사진제공·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요즘, 그보다 바쁜 사람이 있을까 싶다. 2만 명 넘는 회원을 둔 인터넷카페 ‘아파트 비리 척결 운동본부’의 송주열(55사진) 회장은 회원들의 아파트 비리 문의에 주말도 없이 전국을 순회 중이다. 인터넷으로만 하루 20건 이상 아파트 비리 관련 문의가 들어온다. 그만큼 아파트 비리가 광범위하다는 방증이다. 그는 2014년 ‘난방비리’ 문제로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서울 옥수동 ◯◯◯아파트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11년째 아파트 비리 척결에 나서고 있다. 11월 7일 서울 충정로 ‘주간동아’ 인터뷰룸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김부선 씨의 문제제기 이후에도 난방비 비리가 해결되지 않은 거 같다.
“2015년 7월 서울 성동구청에서 민관합동조사를 벌였는데, 나도 조사단으로 참여했다. 그때 한겨울에도 난방비 ‘0원’인 집이 많았다. 한겨울 난방 사용량은 통상 전기 사용량 대비 4~7배율가량 나오는데, 그 배율이 3 이하인 곳도 수두룩했다. 검침기 오류 때문이라고 하지만 주민들이 공평하게 내는 공용난방비까지 ‘0원’인 가구가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난방비 ‘0원’의 불신
[지호영 기자]
“전기·수도 검침 자료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조사단의 조사 기한이 닷새밖에 안 돼 어떤 서류를 집중적으로 볼지 정해야 했다. 앞서 서울시에서 난방비 비리를 조사한 걸 점검하려고 전기요금과 수도사업소 검침기록을 요구했고 2012, 2013년 겨울철 6개월간 사용량을 받아 조사했다. 그때 대략 40가구의 한겨울 난방비가 ‘0’원이었다. 당시 난방비를 안 낸 주민들은 ‘남향이라 따뜻해서 난방을 안 했다’ ‘외국에서 살았다’ 같은 변명을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남향이라 해도 밤에 해가 뜨는 건 아니지 않나. 회계장부 수정도 많았다.”
▼왜 그런 일이 생기나.
“당시 김부선 씨가 사는 아파트는 중앙난방을 하고 있었고, 난방 검침기는 ◯ ◯정밀주식회사가 만든 적산열량계를 사용했다. 메인 검침기는 집 안에 달렸고, 디지털 숫자로 표시되는 서브기기가 외부에 설치돼 검침원이 서브기기의 숫자를 확인한 후 요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문제는 서브기기의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메인 검침기에서 서브기기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연결선이 끊어지면 서브기기에 표시되는 숫자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집주인이 일부러 (메인 검침기와 서브기기를 연결하는) 선을 빼놓을 경우 서브기기만 보면 난방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메인 검침기 사용량 수치는 올라가도 검침할 때 외부 서브기기가 그대로라면 결국 공동사용량 금액이 오를 수밖에. 그러니 어떤 집은 80만 원 내고 또 어떤 집은 0원을 내는 이상한 기록이 생기는 거다.”
▼사건 핵심인 회계 프로그램은 조사를 못 했다는 얘기인가.
“관리소 직원만 접근 가능하고, 당시 자료는 검침기록이나 관리비 부과 명세에 수정이 많았다. 전산 프로그램을 조작하면 모든 데이터가 연동해 바뀌기 때문에 서버 로그기록을 살펴보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서버 로그기록을 열람하려면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한다. 검사는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이 돼야 (영장을) 신청할 수 있지 않나. 범죄 혐의를 입증하려면 먼저 서버 로그기록을 봐야 하는데 볼 수가 없으니 어떻게 아파트 비리를 척결할 수 있겠나.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에 조작을 못 하도록 한 회계 프로그램이 탑재돼 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조사기간(닷새) 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기한 내 들여다볼 수 있는 장기수선충당금(아파트 내 주요 시설 공사에 대비해 마련해놓는 비용) 등 각종 공사기록에 집중했다. 장기수선충당금의 경우 수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해 횡령으로 처벌받은 판례가 있다. 그런데 5년치 자료를 조사해보니, 입주자대표 의결도 없이 다른 용도로 사용한 돈이 4712만 원이었는데, 우리가 조사할 당시에는 명쾌하게 해명 못 하다가 구청의 소명 요청 요구에 관리비로 전용했다고 주장하더라. 원래 입주 초기에는 선수 관리비를 받아 부족한 관리비를 충당하는데, 누가 왜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부족한 관리비로 썼다 해도 미수 관리비를 회수해 즉시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누군가 횡령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구청에는 일반 관리비 계좌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소명했다. 우리 조사 이후 김부선 씨가 나서 정밀회계감사를 따로 했는데, 당시 회계감사자료를 보니 4712만 원이 통장 4곳에서 이체됐더라. 폐지를 팔거나 행사로 얻은 잡수익, 그리고 보도블록 공사 뒤 남은 돈 등을 기타수익이라고 하는데, 그 돈은 당연히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했다. 원래 충당금으로 와야 할 돈이 온 것뿐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옥수동 아파트는 2012년부터 개별난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2013년 개별난방과 중앙난방의 장단점 비교 용역을 의뢰했는데, 용역 잔금(572만 원)을 1년 반 뒤에 지급하기로 계약했더라. 상식에도 맞지 않고 서류 조작을 통한 횡령이 의심돼 수사가 필요한 사안으로 봤다. 우리의 조사 결과를 구청에 알렸고, 구청은 소명을 거쳐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결국 난방비를 많이 낸 주민들의 피해 회복은 안 됐다. 이런 일은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승강기 부품 교체의 함정
[지호영 기자]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기수선 계획에 없는 공사를 하거나, 장기수선 계획에는 있지만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해 대출로 공사를 시행하는 경우는 의심해야 한다. 관리비 고지서에 매달 7만~8만 원이 부과되는 승강기 충당금이나 LED(발광다이오드) 공사 충당금 같은 이상한 명목의 부과 내용이 있다면 관리비 납부를 거부해야 한다. 관리비는 관리로 발생한 비용만 부과하는 것이니까.”
▼4월 잦은 승강기 고장을 수상히 여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점검해보니 22건의 공사 가운데 13건에 중고 부품을 사용하고 신제품 가격을 청구한 것으로 확인돼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승강기 비리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인천 청라지구의 한 아파트 동대표가 전화를 해왔는데, 승강기 와이어가 절단돼 긴급 수의계약을 해야 하는데 수리비 견적이 540만~550만 원으로 나왔다고 하더라. 그래서 350만 원에 수리하는 곳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러한 공사비 부풀리기는 다반사다. 최근 내 인터넷카페에는 승강기의 두뇌 구실을 하는 ‘인버터’를 교체했는데, 38개월 전 설치한 인버터를 빼서 다시 설치하는 등 중고 부품을 가져다 끼웠다고 도움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만약 승강기를 수리했다면 각 부품마다 ‘시리얼 넘버’가 적힌 스티커를 확인하고 보관하는 게 좋다. 경기 한 아파트는 도장 공사를 하면서 페인트를 두 번 칠할 것을 한 번만 칠하거나,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동대표를 제대로(?) 하면 아파트 한 채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니….”
▼왜 이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걸까.
“입주민들이 견제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일부 입주민이 비리 의혹을 발견해 게시판에 공지하려 해도 관리 주체(관리소장)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현행법상 사적재산(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공무원의 규제입법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동별 대표를 해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한 뒤 버티거나 해임 사유가 없는데도 해임을 진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입주민 10명이 서명하면 누구나 게시판 공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30명 이상 서명하면 누구든 아파트 단지 내 방송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관리비 지출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아파트 관리에 필요한 항목 외 지출은 따져봐야 한다. 이렇게 입주민들의 참여와 견제가 있어야 자기 재산이 잘못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출입구 지붕이 ‘뚝’
2013년 1월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공동주택관리 개선을 위한 청책(聽策) 워크숍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송주열 아파트 비리 척결 운동본부 회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그렇다. 사후에 잘못된 점을 소송하는 것은 시간 및 비용 면에서 쉽지 않다. 구청 공무원들의 관리·감독에도 한계가 있다. 20여 건 위반사항을 적발해도 비교적 잘못이 큰 건에 대해서만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 소송을 통해 처분을 무력화하는 경우도 많아 구청 공무원들이 과태료 처분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 관리를 전담하는 공동주택관리청 신설이 필요하다고 본다. 뒷돈을 받는다면 불법선거 사범처럼 신고자에겐 포상금을 주고, 받은 사람에겐 받은 액수의 50배를 과태료로 부과하는 제도 등의 도입이 절실하다.”
과태료 부과 기본법인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은 두 가지 이상 위반행위가 있을 경우 각각의 위반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지만, 단서조항을 통해 개별법이 이와 다른 규정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월 이 단서조항을 적용해 공동주택관리법상 위반행위가 두 가지 이상이면 가장 중한 과태료만 부과하도록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가 전문적인 사항을 알 수 없는 만큼 여러 건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였지만, 여러 차례 위반해도 과태료는 한 건에 불과해 위법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11년째 아파트 비리 척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내가 왜 이 일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거 아닌가. 남 일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손해는 우리에게 돌아온다. 같이 힘을 합쳐 아파트 적폐를 추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송 회장의 직업은 스크린골프 기기를 설치하는 기사다. 2006년 그가 살던 경기 파주시 아파트의 출입구 지붕이 뚝 떨어졌는데, 떨어진 7t짜리 콘크리트 덩어리에 철근이 아예 없는 걸 발견했다. ‘부실공사’를 따졌더니 입주자대표회의 임원이 만류했다. 파주시청이 건설업자를 고발했지만, 입주자대표는 도리어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냈고, 송 회장이 이 탄원서를 입수해 입주민들에게 돌렸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그가 아파트 비리 척결에 나선 계기였다.
“아파트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입주민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입주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