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주인공 이훤 역을 맡은 배우 김수현.
하이틴 로맨스 같은 ‘해품달’이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특히 30, 40대 이상 주부 시청자들이 ‘예쁜’ 청년 왕에 열광하는 데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해품달’의 열혈 시청자이자 세 명의 주부 기자인 ‘동아일보’ 신동아팀 김지영(42), 편집국 문화부 이지은(35), 여성동아팀 김유림(33) 기자가 ‘해품달’과 김수현 열풍에 대한 뜨거운 수다를 펼쳤다.
“부와 권력에 미모까지”
이지은 | 2005년 30대 싱글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그때 제가 스물아홉 살에 미혼이었는데, ‘30대 싱글 토크’라는 주제로 ‘주간동아’에서 방담을 한 적이 있죠.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주간동아’에서 ‘꽃미남 청년 왕에 열광하는 아줌마 토크’에 참여하게 됐네요(웃음). 재미있는 건 저는 나이가 들고 유부녀가 됐는데, 좋아하는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더 어려지고 예뻐졌다는 점이에요.
김지영 | 특히 요즘은 10대 청소년이 아역을 맡으면서 그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아요. 오늘의 주인공인 김수현도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의 주인공 고수의 아역으로 나왔죠. 사실 저는 그때부터 김수현을 눈여겨봤어요. 눈빛이 살아 있는 게 어리지만 남자의 향기가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왼쪽부터) 김유림 기자 김지영 기자 이지은 기자
김지영 | 그런데 드라마 ‘이산’의 이서진이나 ‘동이’의 지진희에게는 이런 열풍이 불지 않았어요. 사실 30~40대 여성이라면 나이로 봤을 때 이서진이나 지진희에게 열광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죠.
생물학적 완성도(?)와 미학적 완성도
이지은 | 사실 여성 시청자가 이들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이 설레는 건 중고교나 대학 시절에 꿈꿨던 연애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봐요. 당장 저만 해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이서진이나 지진희를 보면 어릴 적 감정이 생기지 않아요. 그냥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멋진 아저씨 같은 느낌이죠. 우리가 그들과 함께 불륜 드라마를 찍고 싶은 건 아니잖아요(웃음). 나이는 먹어도 드라마 앞에선 스무 살의 감성이랄까, 김수현은 대학 때 좋아했던 오빠의 모습이에요. 실제 김수현의 나이도 스물네 살이고요.
김지영 | 지금의 주부 시청자가 사춘기와 대학 시절을 보낸 1980~90년대에는 연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 순정만화, 할리퀸 로맨스 등 대중문화 매체가 워낙 많았어요.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았죠. 그런 작품 속에는 남자 주인공의 공식이 있어요. 잘생기고, 몸매 좋고, 나쁜 남자지만 나만을 사랑하는…. 특히 뒤에서 숨 막힐 만큼 안아줘야 하죠(웃음). 그렇게 감성이 말랑말랑하던 시절에 봤던 이상적인 남자 주인공 상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 거라고 봐요. 게다가 왕이라니(웃음).
김유림 | 개인적으로는 ‘해품달’에 등장하는 남자 한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순정만화 속 예쁜 옷차림과 배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거든요. 특히 김수현이 잠행을 나갈 때 입는 한복과 갓은 정말 예쁘잖아요. 흡사 한복 입고 웨딩 촬영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자 주인공이 입은 한복이 이렇게 예뻤던 건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사극 드라마의 전체적인 색감이 화사해진 것도 이 무렵부터였고요. 남자 한복이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된 거죠. 물론 김수현 같은 주인공의 우월한 ‘기럭지’와 작은 얼굴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이지만 말이에요.
김지영 | 김수현의 목소리도 무척 좋아요(웃음). 단순히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발음과 발성까지 좋으니까 얘가 뭔가 있어 보여요.
김유림 | 그런데 김수현 입꼬리가 원래 그렇게 올라갔어요? 입술이 정말 섹시해요. 특히 극중에서 침을 맞을 때 보니 다리털이 북슬북슬한 거예요.
이지은 | 사실 김수현이 전형적인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남자로 느껴져요, 다리털마저(웃음). 송중기나 김현중처럼 피부가 좋고 인형처럼 예쁜 꽃미남은 보기엔 흐뭇한데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배우는 소지섭인데, 소지섭만 해도 가슴팍에 팍 안기고 싶은 스타일이잖아요. 비슷한 감정이 김수현에게도 생긴다는 거죠. 요즘 ‘나꼼수’로 인기를 끄는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수현에게서 높은 ‘생물학적 완성도’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반면 송중기는 ‘미학적 완성도’가 더 높다고 해야겠죠.
김유림 | 남성을 판타지로 느끼는 10대는 미학적 완성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20대 중반이 넘으면, 특히 결혼까지 했다면 생물학적 완성도에 더 민감하지 않겠어요(웃음)?
김지영 | 남성적 매력, 일종의 페로몬이 느껴져야 30, 40대에까지 어필할 수 있죠. 하지만 완벽하기만 해선 안 돼요. 언뜻 완벽해 보여도 내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어야 하죠. 김수현도 비슷해요. 왕이기 때문에 형과 편하게 지낼 수도 없고 사랑하는 여인과도 이별해야 했던 슬픈 사연이 뒤에 있는 거잖아요. 사실 나이 많은 여자가 풋풋한 아가씨보다 경쟁력이 높은 것은 ‘푸근한’ 마음밖에 더 있겠어요. 그러니 엄마처럼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1월 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해를 품은 달’의 제작 발표회. 왼쪽부터 김수현, 한가인, 정일우.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젊은 세종 역을 맡았던 송중기(왼쪽).
김지영 | 하지만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주부 팬들이 공감하기가 쉬워진 거예요. ‘쟤도 하는 걸 보니 나도 할 수 있다’는(웃음). 요즘 아침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이혼한 아줌마 직원을 사랑하는 젊은 미혼 본부장님의 로맨스잖아요. 같은 방식으로 30~40대 주부 시청자의 ‘로망’을 간질이는 거죠.
이지은 | 우리가 ‘해품달’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랑과 전쟁’을 안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김유림 | ‘해품달’이 추억이라면 ‘사랑과 전쟁’은 공감이죠. 심리학자들이 이른바 ‘이모 팬’의 심리를 분석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남성은 미래 지향적이지만 여성은 과거 지향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나도 저 때로 돌아가고 싶고, 저런 로맨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렸다는 거예요.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고르고 있는 20대 여성.
이지은 | 한마디 더 보태자면, 로망은 로망에서 끝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예요. 로맨스 판타지에 열광하는 여성을 보면서 힘든 현실을 외면한 채 달콤한 환상에 취했다고 비난하는 남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해품달’도 보고 ‘뿌리깊은 나무’도 보고 영화 ‘도가니’도 보는 거니까요. ‘꽃미남 왕’은 김치찌개를 주식으로 먹던 사람이 어쩌다 한 번 맛보는 치즈케이크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