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 불만사례 또한 폭증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결혼정보업 피해구제 건수는 2000년 59건에서 2005년 232건으로 크게 늘었다. 사진은 모 결혼정보업체의 신문광고(왼쪽)와 커플매니저 상담 모습.
미혼여성 박모(48)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방 소도시에서 혼자 힘으로 유통사업을 벌이느라 혼기를 놓쳤다. 박 씨는 신문광고를 통해 자주 접하던 A업체에 2000년 2월 초혼회원으로 가입했고, 그해 10월 두 살 연하의 남성 B 씨를 소개받았다. 첫 만남 이후 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혼담이 오고 갔다. 하지만 서너 번 정도 만났을 무렵 B 씨는 자신의 카드빚 이야기를 꺼냈다. “카드빚이 1억원이 좀 넘는데 대신 갚아줄 수 있겠느냐”고 박 씨에게 물은 것.
찰거머리 남성 “우선 빚 갚아달라” 종용
거액의 카드빚 존재에 대해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에 박 씨는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 씨는 자신에게 B 씨를 소개해준 이 업체의 커플매니저 C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카드빚이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박 씨는 “처음 B 씨를 소개해줄 때는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고 집안도 부유하다고 했다”면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소개한 것”이라며 원망을 토로했다.
“한번은 B 씨가 ‘결혼하면 전세 얻을 돈 있느냐’고 물었어요. ‘있다’고 했죠. 결혼자금으로 2억원 정도를 통장에 예치해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세 얻을 돈으로 카드빚을 대신 좀 갚아달라’고 해서 크게 놀랐어요.”
박 씨는 이후에도 B 씨에게서 ‘먼저 빚을 갚아주고 나중에 결혼하자’는 제안을 수차례 받았다고 한다. 박 씨는 “나중에는 자기 부모의 빚까지 갚아달라고 했고, 사업자금을 대달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B 씨는 A업체가 소개해준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고, 동거 중에도 박 씨에게 ‘빚을 갚아달라. 그리고 결혼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박 씨는 이러한 제안을 거듭 거절했고, B 씨는 결국 동거하던 여성과 결혼했다.
박 씨가 빚더미에 오른 남성을 소개받은 것은 B 씨 경우 한 번만이 아니었다. 커플매니저 C 씨는 이 업체를 그만두고 다른 결혼정보업체로 옮겨간 뒤에도 박 씨에게 자주 연락을 취했다(결혼정보 업계에서는 퇴사한 직원이 회원 연락처를 빼내 임의로 영업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박 씨는 “C 씨가 ‘이번에는 꼭 결혼을 성사시키겠다’고 해 70만원을 내고 회원가입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C 씨가 소개해준 명문대 출신의 고등학교 교사 D 씨는 수억원대의 빚더미에 오른 사람이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대뜸 자기 빚이 5억7000만원이라면서 일단 7000만원을 갚아달라고 했어요. 월급까지 압류가 들어올 상황이라면서요. 저를 결혼만 해주면 빚을 대신 청산해줄 여자로 여기는 듯해서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C 씨에게 이 교사가 빚더미에 오른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도 ‘몰랐다’고만 하더군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겠다는 박 씨의 꿈은 이 같은 두 번의 ‘충격’으로 산산조각 났다. 특히 B 씨와의 일들로 인해 박 씨는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게 됐고, 결국 30억원의 연 매출을 올리던 사업까지 접었다. 박 씨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커플매니저 C 씨의 태도”라고 토로했다.
업체·커플매니저 상대로 손배소송 제기
“B 씨 문제를 상의하자 C 씨는 ‘그 정도는 갚아줘라. 1억원은 투자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충고하더군요. 이미 동거하는 여성까지 있는 사람인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에 대해 커플매니저 C 씨는 “두 남성 회원에게 거액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빚을 갚아주고라도 결혼하라고 한 것은 혼기를 놓친 박 씨를 위한 충고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C 씨는 “사전에 두 남성 회원의 신용 상태를 알았더라면 박 씨에게 미리 그 사실을 알리고 그래도 만나보겠냐며 의사를 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빚이 그 정도 있다면 중매해주기에는 부담스러운 회원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박 씨는 A업체와 커플매니저 C 씨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그가 이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매우 낮다. 법무법인 ‘이인’의 김선양 변호사는 “‘엄선된 사람을 골라 소개해줄 것’이라는 결혼정보업체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치를 감안할 때 이 업체가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현재 결혼정보업체가 회원의 정확한 재산 상태까지 파악해 그것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박 씨가 이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박 씨는 “결혼정보업체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미혼인들과 그 부모들에게 이 같은 피해를 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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