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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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라”

단국대 이해명 교수, 책으로 펴낸 20년 자녀 교육법 … 과외도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2-29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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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교육,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라”
    단국대 이해명 교수(57, 교육대학원장)를 처음 만난 것은 1998년이다. 당시 이교수가 6년 간 매달린 끝에 발표한 논문 ‘중·고등학생의 학업성적 결정구조’가 세간에 화제가 되었을 때다. 이 논문은 지능, 학습태도, 과외, 가정환경, 학교환경, 사회환경 등 조건이 각기 다른 학생 48개교 3500명을 대상으로 학업성적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목적이 있었다. 새 정부 들어 불법 고액과외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던 터라 연구결과 중 “과외가 학업성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부분만 크게 부각되었다. 교육담당 기자로서 발표내용을 듣고 무작정 이교수를 찾아갔다.

    “과외해도 정말 효과가 없습니까? 교수님 자녀들은 과외한 적이 없나요?”

    “전혀”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둘째아이(범주, 당시 대원외고 2학년)는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 미술 과외에 한문을 개인지도 받았고,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3년 동안 일본어 개인지도,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개인지도도 1년 반 정도 받았는데 효과가 없어 그만두었지요”라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보통 부모와 너무 똑같은 대답에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자녀 교육,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라”
    그러나 이교수가 말하는 과외란 학업성적 향상을 위한 국·영·수 과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학교 공부 이외의 공부, 즉 아이의 적성이나 특기를 길러주는 학습이 진짜 과외라고 말한다. 첫딸을 기를 때 ‘공부는 제가 하는 것이지…’라며 무심하게 키운 것이 후회스러워 여덟 살 터울의 둘째 범주를 기를 때는 교육학자답게 철저한 교육프로그램을 짰다는 것이다. 아들의 경우 음악과 미술 과외는 실패로 끝났지만 일단 초등학교 시절 아이의 재능을 살펴보는 의미에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자는 아이가 몇 살이오?” 한 돌도 채 안 되었다고 했더니 이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내가 아이 기르는 법을 알려줄 테니 나중에 꼭 실천해 봐요” 한다. 짧은 시간 들은 몇 가지만으로도 귀가 솔깃했다. 영어공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데 처음부터 기본문형을 완전히 외우도록 하고(범주의 경우 중학교 과정 영어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데 1년이 채 안 걸렸다), TV를 끄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필요하면 도서목록을 주겠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꼭 한자가 아니라 한문을 가르쳐라, 영어가 어느 정도 되면 중학교부터 제2외국어를 가르치고….



    그러나 이교수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가르쳤는지보다 ‘어떻게’ 가르쳤는지가 훨씬 감동적이었다. 아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기 위해 집 근처 학원을 알아보았더니 네모칸에 열심히 한자 그리는 연습만 되풀이하기에 안 되겠다 싶어 개인교사를 구하고 처음부터 ‘명심보감’을 외우고 쓰는 학습을 요구했다고 한다. 초등학생에게 ‘명심보감’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신반의한 교사도 나중에는 그 시간을 기다릴 만큼 신이 났다.

    범주가 1년 만에 ‘명심보감’을 떼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직접 ‘사서’를 가르쳤다. 이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3년 정도 서당에 다니며 ‘논어’ ‘맹자’를 배운 적이 있지만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따로 예습을 했다. 매일 아침 30분씩 아들과 ‘논어’ ‘맹자’를 읽고 해석하고 외는 데 1년 정도가 걸렸다. 이렇게 익힌 한문실력은 중학교 때 시작한 일어공부의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글을 읽고 쓰는 데, 특히 조어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영어도 아버지가 직접 가르쳤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에게 매일 밥 먹기 전 30분씩 식탁에서 기본문형과 단어를 외우게 하고 제대로 외웠는지 확인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1단계는 교과서로 하다 2단계는 쉬운 영어 이야기책을 택했다. 3단계는 범주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교수가 연구교수로 미국에 머무는 동안 실생활 영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솔직히 아버지는 영어강의를 알아듣고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2년이 걸렸지만 아들은 2개월 만에 미국생활에 완전히 적응했고, 미국인 교사들이 놀랄 만큼 정확한 단어와 세련된 문장을 구사했다.

    이렇게 꾸준히 영어기초를 쌓은 덕분에 범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토플 성적이 670점(677점 만점)이었고, 이미 플라톤의‘국가’와 같은 고전들을 원서로 섭렵했으며 경제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관련 전문서들을 원서로 읽으며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교육문제는 아버지의 의욕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가족들이 하루종일 TV 리모컨을 끼고 사는 집에서 아이가 책을 읽을 리 없다. 이교수는 제일 먼저 TV를 껐다. 뉴스나 스포츠중계 정도로 TV 시청을 제한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온 가족이 대화를 나눴다. 아내 김경희씨(53)는 “애들 아빠가 얼마나 엄격한지 TV를 켤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다”며 웃는다.

    주말에는 가족이 책방에 들러 점심도 먹고, 오가는 동안 읽은 책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단순 대화였으나 나중에는 사회적 이슈를 놓고 가족토론을 벌였다. 식탁토론은 딸이 결혼하고 아들이 고3이 될 때까지 계속했다. 무엇보다 이런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웠다. 범주의 경우 너무 아는 게 많아 대화를 독점하려 하고 상대의 말허리를 자르고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연히 친구들에게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주곤 했는데 가족토론으로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연습을 하면서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말하는 기술도 늘었다.

    이교수의 교육법을 핵심만 정리하면 이렇다. 과외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초등학교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 때로는 이해보다 암기가 중요하다, 많이 읽고 쓰고 듣고 말하게 하라. 이교수에게 그런 좋은 내용을 말로만 하지 말고 책에 담아주면 여러 사람이 배울 수 있지 않느냐고 청했다. 아들의 입시가 끝나면 쓰겠다던 약속은 범주의 재수로 1년 지연되었다. 올해 범주가 서울대 경제학부에 입학하자 약속대로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동아일보사)를 펴냈다. 책의 부제가 ‘교육학 교수가 20년 동안 실천한 엘리트 교수법’이어서 무슨 영재교육 비법이라도 적혀 있을지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를 읽으면 돈 많고, 아는 것 많은 아버지보다 자상한 아버지 노릇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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