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4일 서울 명동성당 입구. 시민 몇 명이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신자입니다”(시민).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시죠”(경찰). 차량을 가진 몇몇 운전자들은 트렁크까지 열어야 했다.
명동성당 본당 뒤편 성모 마리아상 앞 조그만 광장. ‘번듯한 집’(천막) 안에서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몇몇 간부와 함께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단병호. 1999년 8·15 특사 때 2개월 4일의 형기를 남기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전임 이갑용 위원장의 잔여 임기를 채운 후 올해 초 3기 위원장으로서의 연임에 성공한 그가 이곳에 진을 치고 노동계의 투쟁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사상 초유의 양대 항공사 파업, 그에 이은 민주노총 하루 총파업 등 두 차례의 파업투쟁을 벌인 상태. 그런데도 단위원장은 명동성당에 은거하면서 정부와의 ‘전면전 불사’를 외치고 있다. 이는 분명 과거와 다른 양상. 무엇이 노동계를 거리로 내모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과연 타당한 주장인가.
지난 7월13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대의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정권의 전면적인 노동탄압에 맞서고 하반기 잘못된 구조조정과 노동법 개악을 분쇄하기 위해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오는 7월22일 조합원 수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상경투쟁’을 벌이기로 했으며 △구속 노동자 석방과 검거령 해제 △용역 ‘깡패’와 구사대를 동원한 불법 부당 노동행위 사용자 구속 △노동문제에 대해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하는 일부 신문 구독 중단 등의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이날 수배중인 단위원장은 대회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정권 퇴진이라는 투쟁목표를 분명히 하고 광범위한 세력을 묶어 투쟁전선을 조직해 나가자”는 취지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것은 올 4월경. 정서적으로 노동자와 가깝다고 평가해 온 김대중정권을 노동자들이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일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얘기인가.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렇게 평면적·감정적으로 상황을 해석하지 말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정권이 출범하면서 상당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분석도 현재의 노-정 간 전면 대결국면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우선 민주노총은 현 상황을 ‘자본 대 노동의 결전국면’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김대중정권은 민주노총의 6월 총력투쟁을 빌미로 전면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노-정 간 피할 수 없는 결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대우자동차에 이어 ㈜효성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민주노총 지도부와 간부들에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계획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도발입니다”(단위원장 메시지).
한마디로 ‘의도한 도발’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와 연결된다. 단위원장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진다. “김대중정권은 노동부문 개혁을 천명하며 이른바 신노사문화를 정착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신노사문화! 이게 무엇입니까. 노-사와 노-정 간의 철저한 협력관계를 전제로 한 노조활동을 뜻합니다. 이는 곧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발전시켜 온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연대와 투쟁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민주노조운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선실장은 이와 관련, “노동계의 투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하반기까지 계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해외매각과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을 이 정도나마 막을 수 있는 것은 민주노총의 투쟁 덕분이며 앞으로 예상하는 하반기 구조조정과 노동관계법 개악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해 맞설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정세 판단도 깔려 있다. 현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어 ‘자본의 총공세’, 즉 재계가 내년 대선을 겨냥해 현 정권을 ‘압박’하면서 ‘일방적’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를 위한 입법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 정권이 ‘소수 정권’으로 지지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재계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이를 ‘역이용’해야 한다는 전략도 있다. “국민 지지율이 20% 안팎에 지나지 않고 광주에서조차 47%로 떨어졌으며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꼭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세는 아닙니다”(단위원장).
한편 이같은 ‘결연한 투쟁 의지’ 이면에는 ‘조직 와해’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하였다는 노동 전문가의 분석이다.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단위원장을 비롯, 단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이홍우 사무총장과 양경규 공공연맹위원장에게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에게 함께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극히 드문 예다.
어찌 보면 단위원장 체제의 토대도 취약하다. 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올 1월18일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단위원장 계열의 이른바 ‘중앙파’, 유덕상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나선 ‘좌파’, 강승규 민주택시연맹위원장이 후보로 나선 ‘국민파’ 등 3파전으로 진행되었다. 1차 투표에서는 국민파인 강승규 위원장이 1위를 했으나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위를 한 유덕상 지지 세력의 상당수가 단위원장을 지지함으로써 중앙파인 단위원장이 당선된 것이다.
국민파는 당시 선거에서 강경한 주장을 내세우긴 했지만 대체로 대화로 실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 중앙파와 좌파 진영보다 ‘온건 노선’을 걷는 것으로 분류한다고 노동부는 분석한다. 한 노동전문가는 “단위원장측은 정부가 민주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민파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단위원장측이 정부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투쟁을 통해 국민파를 견제하려는 것 같다는 게 이 전문가의 얘기다.
단위원장은 이 대목과 관련, “일각에서는 투쟁 일변도의 무리한 투쟁을 배치함으로써 조직의 피해만 가중하고 무엇 하나 이뤄놓은 게 없지 않느냐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지만, 민주노총의 강도 높은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노동현장을 온통 비정규직으로 채웠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단위원장 체제의 민주노총이 전면투쟁에 나선 데에는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민주노총은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노동자에겐 가혹하고 사용자에겐 관대하다고 토로한다. 실제 매달 10여 명 안팎이던 구속 노동자수가 4월 19명, 5월 21명으로 늘더니 6월에는 무려 69명이나 되었다. 올 들어 162명의 구속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5월 이후 구속되었다.
반면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각종 고발·고소 등 신고 접수 건수는 98년 335건, 99년 331건, 지난해 705건, 올 3월 말 현재 281건 등으로 줄지 않았다. 이 가운데 사법 처리 건수는 98년 296건, 99년 288건, 지난해 602건, 올 3월 말 현재 123건. 그러나 사용자를 구속한 숫자는 98년 1명, 99년 4명, 지난해 2명, 올 3월 말 현재 1명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노동정책이 민주노총의 강경투쟁을 부추겼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는 21세기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며 ‘신노사문화’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대결과 투쟁 위주의 노사관계를 협력과 상생의 노사관계로 발전시킨다는 취지는 좋으나 캠페인성 행사 위주로 치우치면서 노사 양측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 김태기 교수(단국대 경제학)는 “인력감축 없이 구조조정할 수 있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다 파업 위기가 닥치면 노조측에 대가를 지불하고 무마하는 등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늘 파업을 예상하고도 조정 능력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다. 중앙노동위원회 박윤배 공익위원은 “노동위원회가 행정편의주의적 지도를 남발하는 등 책임 회피만 하다 뒤늦게 엄단을 외치지만 제대로 집행하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태복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김호진 노동부 장관, 장영철 노사정위원장 등 노동 관련 ‘빅3’의 업무 공조도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민주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부가 노사정위원회의 사전 양해 없이 ‘비공식 대화 채널’을 만들겠다고 언론에 발표했다가 노사정위가 발끈해 수포로 돌아간 적도 있다. 정부가 주로 한국노총을 교섭 파트너로 삼는 것도 민주노총의 ‘정치적 소외감’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또 사측이 교섭을 해태하며 노조를 자극하는 노무관리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의 투쟁방식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여론이 거세다. 민주노총은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고 정부가 이를 거부한다고 말하지만,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줄곧 ‘노-정 직접 교섭’ ‘대통령 면담’ 등 정부가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내세우곤 했다.
최근의 사례. 2차 파업을 앞두고도 민주노총은 단위원장에 대한 검거령 철회와 단위원장의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청와대는 “수배중인 단위원장 대신 합법 신분인 간부와 만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민주노총은 이를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수배중인 단위원장을 면담할 수 없다는 것은 노동 탄압을 중단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며 “대리인 면담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지도부 검거를 계속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제안은 ‘불법행위를 눈감아 줄 수는 없지만 민주노총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카드였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중론.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노동계도 대결 지향의 투쟁방식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 기능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구의 노동운동은 이미 파업 위주의 투쟁에서 합리적 협상 쪽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또 ‘정치투쟁’보다는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
그러나 현재로선 민주노총이 투쟁노선을 급격히 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위원장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노사정위에 참여해 성실히 대화하려 할 때 정부가 보인 태도는 한마디로 ‘노동자 배제 정책’이었다. 절박한 노동자의 요구는 수용하지 않고 노동자에 대한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대화하자는 것은 기만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내부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돌파구가 보이지 않지만 민주노총 안의 국민파를 중심으로 현 지도부의 투쟁노선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성당 본당 뒤편 성모 마리아상 앞 조그만 광장. ‘번듯한 집’(천막) 안에서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몇몇 간부와 함께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단병호. 1999년 8·15 특사 때 2개월 4일의 형기를 남기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전임 이갑용 위원장의 잔여 임기를 채운 후 올해 초 3기 위원장으로서의 연임에 성공한 그가 이곳에 진을 치고 노동계의 투쟁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사상 초유의 양대 항공사 파업, 그에 이은 민주노총 하루 총파업 등 두 차례의 파업투쟁을 벌인 상태. 그런데도 단위원장은 명동성당에 은거하면서 정부와의 ‘전면전 불사’를 외치고 있다. 이는 분명 과거와 다른 양상. 무엇이 노동계를 거리로 내모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과연 타당한 주장인가.
지난 7월13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대의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정권의 전면적인 노동탄압에 맞서고 하반기 잘못된 구조조정과 노동법 개악을 분쇄하기 위해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오는 7월22일 조합원 수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상경투쟁’을 벌이기로 했으며 △구속 노동자 석방과 검거령 해제 △용역 ‘깡패’와 구사대를 동원한 불법 부당 노동행위 사용자 구속 △노동문제에 대해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하는 일부 신문 구독 중단 등의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이날 수배중인 단위원장은 대회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정권 퇴진이라는 투쟁목표를 분명히 하고 광범위한 세력을 묶어 투쟁전선을 조직해 나가자”는 취지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것은 올 4월경. 정서적으로 노동자와 가깝다고 평가해 온 김대중정권을 노동자들이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일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얘기인가.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렇게 평면적·감정적으로 상황을 해석하지 말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정권이 출범하면서 상당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분석도 현재의 노-정 간 전면 대결국면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우선 민주노총은 현 상황을 ‘자본 대 노동의 결전국면’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김대중정권은 민주노총의 6월 총력투쟁을 빌미로 전면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노-정 간 피할 수 없는 결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대우자동차에 이어 ㈜효성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민주노총 지도부와 간부들에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계획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도발입니다”(단위원장 메시지).
한마디로 ‘의도한 도발’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와 연결된다. 단위원장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진다. “김대중정권은 노동부문 개혁을 천명하며 이른바 신노사문화를 정착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신노사문화! 이게 무엇입니까. 노-사와 노-정 간의 철저한 협력관계를 전제로 한 노조활동을 뜻합니다. 이는 곧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발전시켜 온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연대와 투쟁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민주노조운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선실장은 이와 관련, “노동계의 투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하반기까지 계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해외매각과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을 이 정도나마 막을 수 있는 것은 민주노총의 투쟁 덕분이며 앞으로 예상하는 하반기 구조조정과 노동관계법 개악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해 맞설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정세 판단도 깔려 있다. 현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어 ‘자본의 총공세’, 즉 재계가 내년 대선을 겨냥해 현 정권을 ‘압박’하면서 ‘일방적’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를 위한 입법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 정권이 ‘소수 정권’으로 지지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재계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이를 ‘역이용’해야 한다는 전략도 있다. “국민 지지율이 20% 안팎에 지나지 않고 광주에서조차 47%로 떨어졌으며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꼭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세는 아닙니다”(단위원장).
한편 이같은 ‘결연한 투쟁 의지’ 이면에는 ‘조직 와해’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하였다는 노동 전문가의 분석이다.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단위원장을 비롯, 단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이홍우 사무총장과 양경규 공공연맹위원장에게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에게 함께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극히 드문 예다.
어찌 보면 단위원장 체제의 토대도 취약하다. 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올 1월18일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단위원장 계열의 이른바 ‘중앙파’, 유덕상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나선 ‘좌파’, 강승규 민주택시연맹위원장이 후보로 나선 ‘국민파’ 등 3파전으로 진행되었다. 1차 투표에서는 국민파인 강승규 위원장이 1위를 했으나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위를 한 유덕상 지지 세력의 상당수가 단위원장을 지지함으로써 중앙파인 단위원장이 당선된 것이다.
국민파는 당시 선거에서 강경한 주장을 내세우긴 했지만 대체로 대화로 실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 중앙파와 좌파 진영보다 ‘온건 노선’을 걷는 것으로 분류한다고 노동부는 분석한다. 한 노동전문가는 “단위원장측은 정부가 민주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민파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단위원장측이 정부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투쟁을 통해 국민파를 견제하려는 것 같다는 게 이 전문가의 얘기다.
단위원장은 이 대목과 관련, “일각에서는 투쟁 일변도의 무리한 투쟁을 배치함으로써 조직의 피해만 가중하고 무엇 하나 이뤄놓은 게 없지 않느냐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지만, 민주노총의 강도 높은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노동현장을 온통 비정규직으로 채웠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단위원장 체제의 민주노총이 전면투쟁에 나선 데에는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민주노총은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노동자에겐 가혹하고 사용자에겐 관대하다고 토로한다. 실제 매달 10여 명 안팎이던 구속 노동자수가 4월 19명, 5월 21명으로 늘더니 6월에는 무려 69명이나 되었다. 올 들어 162명의 구속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5월 이후 구속되었다.
반면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각종 고발·고소 등 신고 접수 건수는 98년 335건, 99년 331건, 지난해 705건, 올 3월 말 현재 281건 등으로 줄지 않았다. 이 가운데 사법 처리 건수는 98년 296건, 99년 288건, 지난해 602건, 올 3월 말 현재 123건. 그러나 사용자를 구속한 숫자는 98년 1명, 99년 4명, 지난해 2명, 올 3월 말 현재 1명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노동정책이 민주노총의 강경투쟁을 부추겼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는 21세기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며 ‘신노사문화’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대결과 투쟁 위주의 노사관계를 협력과 상생의 노사관계로 발전시킨다는 취지는 좋으나 캠페인성 행사 위주로 치우치면서 노사 양측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 김태기 교수(단국대 경제학)는 “인력감축 없이 구조조정할 수 있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다 파업 위기가 닥치면 노조측에 대가를 지불하고 무마하는 등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늘 파업을 예상하고도 조정 능력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다. 중앙노동위원회 박윤배 공익위원은 “노동위원회가 행정편의주의적 지도를 남발하는 등 책임 회피만 하다 뒤늦게 엄단을 외치지만 제대로 집행하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태복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김호진 노동부 장관, 장영철 노사정위원장 등 노동 관련 ‘빅3’의 업무 공조도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민주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부가 노사정위원회의 사전 양해 없이 ‘비공식 대화 채널’을 만들겠다고 언론에 발표했다가 노사정위가 발끈해 수포로 돌아간 적도 있다. 정부가 주로 한국노총을 교섭 파트너로 삼는 것도 민주노총의 ‘정치적 소외감’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또 사측이 교섭을 해태하며 노조를 자극하는 노무관리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의 투쟁방식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여론이 거세다. 민주노총은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고 정부가 이를 거부한다고 말하지만,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줄곧 ‘노-정 직접 교섭’ ‘대통령 면담’ 등 정부가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내세우곤 했다.
최근의 사례. 2차 파업을 앞두고도 민주노총은 단위원장에 대한 검거령 철회와 단위원장의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청와대는 “수배중인 단위원장 대신 합법 신분인 간부와 만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민주노총은 이를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수배중인 단위원장을 면담할 수 없다는 것은 노동 탄압을 중단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며 “대리인 면담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지도부 검거를 계속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제안은 ‘불법행위를 눈감아 줄 수는 없지만 민주노총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카드였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중론.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노동계도 대결 지향의 투쟁방식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 기능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구의 노동운동은 이미 파업 위주의 투쟁에서 합리적 협상 쪽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또 ‘정치투쟁’보다는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
그러나 현재로선 민주노총이 투쟁노선을 급격히 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위원장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노사정위에 참여해 성실히 대화하려 할 때 정부가 보인 태도는 한마디로 ‘노동자 배제 정책’이었다. 절박한 노동자의 요구는 수용하지 않고 노동자에 대한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대화하자는 것은 기만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내부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돌파구가 보이지 않지만 민주노총 안의 국민파를 중심으로 현 지도부의 투쟁노선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