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을 방문한 중도입국 다문화가정 청소년들.
10월 1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전국에서 모인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 없었다. 책이나 TV에서만 보고 들었던 유물을 실제로 대하고는 퍽 신기해했다. 이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하려 열을 올렸다. 전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꼼꼼히 유물을 살피는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그때 한 학생이 반가운 듯 외쳤다. “야, 금강, 금강이다!” ‘금강령’(부처를 기쁘게 하는 방울)을 보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한금강(15) 군을 부른 것. 한군은 신기한 듯 금강령을 보고 또 봤다.
국민체육진흥공단(KSPO, 이사장 정정택)은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다문화가정 청소년 초청 캠프 ‘생각나눔’을 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은 캠프 첫날 프로그램 중 하나. 이번 캠프는 특별히 ‘중도입국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위해 마련했다. 중도입국 다문화가정 청소년이란 해외에서 태어난 뒤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청소년을 일컫는 말.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한 이번 캠프에는 전북 익산, 충북 청주, 경기 수원 등에서 학생 108여 명이 참석했다. 장동민 KSPO 스포츠산업본부 올림픽유스호스텔 청소년팀 과장은 “KSPO는 매년 5차례씩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초청해 도시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며 “다문화가정 청소년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무슨 모양 같아요?”
“원숭이요.”
“이거는요?”
“용이요.”
전국에서 108여 명 참석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한국말이 서투른 청소년들이었지만 전시 안내자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다양한 유물도 열심히 들여다봤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던 중국 출신 첸첸(17) 양은 한자를 가리키며 “중국 글씨랑 달라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혜령(17) 양이 “중국에서 본 옛날 그림이랑 많이 비슷해요. 신기해요. 재밌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참가자 중 제일 어른스러운 시위룡(19) 군은 “고향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배워서 매우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뒤로하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KSPO 측은 한국에 온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준다는 취지에서 이곳 방문을 추진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많이 보던 곳이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모여 입법 활동을 벌이는 곳이에요.”
|
‘청소년 교류의 장’도 겸해
청소년들에게 국회에서 하는 일을 알려주던 하성수 올림픽유스호스텔 청소년팀 과장은 “이런 경험이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큰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 이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번 캠프를 통해 많이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들 중도입국 다문화가정 청소년은 KSPO의 배려 속에서 10월 첫째 주 황금연휴를 ‘한국 알기’ 시간으로 보냈다. 이튿날인 10월 2일에는 민속놀이를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도 나갔다. 마지막 날인 10월 3일에는 올림픽기념관 등 올림픽공원 주요 시설을 탐방했다. 또 부모님께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편지도 썼고, 축제의 밤 시간에는 서로 간의 우정을 돈독히 쌓았다. 박재근 올림픽유스호스텔 청소년팀 팀장은 “놀이공원 나들이는 아이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프로그램”이라며 “작년에는 도서벽지의 소년소녀가장을 초대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신나했다”고 전했다.
인솔자로 참가한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2학년 이창근(22) 씨는 “그동안 청소년 캠프에 많이 참가했는데 다문화가정 청소년이라 해서 다를 건 없다. 청소년은 다 똑같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교류’다. 사회에 나가서도 인간관계를 잘 맺을 수 있고, 전인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KSPO가 이처럼 다문화가정 청소년 초청 캠프 ‘생각나눔’을 개최한 이유는 국내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실질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다문화가정 학생은 92.8%나 증가했다(김춘진 민주당 의원, 2011). 하지만 다문화가정 아이 중 학교를 다니지 않는 수는 아직 많다.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학령기 아이(7~18세) 2만4867명 중 6089명(24.5%)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정택 KSPO 이사장은 “중도입국 다문화가정 청소년의 경우, 언어 문제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회 부적응,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 등 여러 이유로 2명 중 1명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탈학교’ 상태”라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많은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SPO가 중도입국 청소년에게 주목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언어 습득이나 학교 적응에 여느 다문화가정 아이보다 어려움을 겪는 중도입국 청소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KSPO는 앞으로도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부모와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실시할 계획이다.
민속놀이인 공기놀이(왼쪽)와 나만의 티셔츠 만들기에 여념 없는 청소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