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분석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기가 판치던 증권시장에 과학적 투자 방법을 처음으로 제시한 선구자다. 그는 ‘오마하의 현인’으로 추앙받는 워런 버핏을 비롯한 투자의 거장을 키워냈다. 1934년 처음 출간한 저서 ‘증권분석’은 77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최고의 고전이다.
그레이엄은 증권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증권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은 흔히 주식은 위험하고 채권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식도 충분히 싼 가격에 사면 건전한 투자가 되고, 채권도 경우에 따라서는 주식 이상으로 위험한 투기가 될 수 있다.
그레이엄은 개인이 채권을 살 때는 이자보다 신용도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절대로 망하지 않을 신용도 높은 채권을 사라는 것. 기관은 신용도 낮은 채권에 투자할 때 여러 종목에 분산해 투자하며, 높은 이자 수입을 일부 적립해 손실에 대비한다. 그러나 개인은 이런 식으로 손실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개인이 투기성 채권을 산다면,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을 참고해야 한다. 즉, 실패하면 막대한 손실을 볼 것을 각오해야 하며, 성공할 때는 주식처럼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월 지급식도 ‘양의 탈을 쓴 늑대’
요즘 월 지급식 펀드 가운데 브라질 국채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는 펀드가 많다. 브라질 국채는 왜 수익률이 높을까. 신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재 BBB 등급으로, 간신히 투기등급을 벗어난 수준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곧바로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레이엄이라면 이 국채를 십중팔구 투기성 주식 정도로 간주했을 것이다.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고 투기성 주식을 다루는 방식으로 브라질 국채를 사는 것이라면 충분히 타당한 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이자를 안전하게 주는 ‘연금형’ 상품으로 믿고 가입한다면, 하루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문제는 고객이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고 가입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은 주로 은퇴한 노년층이거나 은퇴를 앞둔 50~60대일 텐데, 브라질 국채의 신용등급, 환율 위험, 경제 전망을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아마도 단순히 ‘연금처럼 월급 받는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품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인 셈이다.
주식이나 다른 채권에 투자하는 월 지급식 펀드는 어떨까. 월 지급식 펀드는 대부분 매달 투자원금의 0.5~0.7%(연 6~8.4%)를 월급처럼 지급한다. 은행 이자보다는 확실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펀드 운용에서 높은 수익이 나온다면 다행이지만, 실적이 부진할 때는 원금을 깨서 월급을 준다. 문제는 월 지급액에 각종 수수료를 더하고 세금까지 포함하면 연 10% 이상 수익을 내야 원금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 상품은 수수료가 연 2% 가까이 된다. 월 0.5%를 지급하는 펀드에 1억 원을 투자한다면, 내가 월 50만 원을 받을 때마다 금융회사는 수수료로 월 15만 원 정도를 받아간다. 내 월급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내 월급은 정기예금 이자보다 15만 원 남짓 많다. 결국 금융회사는 정기예금보다 15만 원(연 2%)을 더 벌어주는 대가로 수수료 15만 원(연 2%)을 받아가는 셈이다.
2011년 8월 현재 실적이 연 수익률 10% 이상인 월 지급식 펀드는 29개 중 3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원금을 깨서 월급을 지급했다는 말이다. 이는 기업 실적이 부진한데도, 이익을 모두 털고 자본금까지 깨서 배당금을 지급한 꼴이다. 진정한 연금형 상품이 되려면 원금을 보전해야 함은 물론, 장기적으로 원금이 늘어나서 월급도 증가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원금조차 지키지 못하는 연금형 상품은 순진한 고객의 착각을 유도하는 조삼모사 상품에 불과하다.
상식에 들어맞는 월 지급식 펀드라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벌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월급을 줄 수는 없으므로, 예컨대 1년 정도는 정기예금 금리처럼 최소 수준으로 월급을 지급한다. △1년 뒤 운용실적이 나오면 원금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월급을 지급한다. 처음에 고객에게 약속했던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면 금융회사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각종 수수료 차감 후) 고객 몫으로 올린 누적 수익률이 일정 기간(예컨대 3년)의 은행 금리에도 못 미친다면, 고객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펀드를 해체한다. 고객이 은행에 예금하고 이자를 받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원금 까먹고서도 수수료는 꼬박꼬박
이를 두고 누군가는 업계 관행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고객을 유혹하고, 원금을 까먹고서도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겨가는 업계 관행은 과연 정당한가.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유능한 펀드매니저라도 몰려다니는 물귀신 앞에선 속수무책이므로, 사람이 몰려드는 인기상품은 쳐다봐서도 안 된다. 그런데 어떤 상품에 물귀신이 몰려들지 누가 알겠는가. 처음부터 물귀신 위험까지 방지하는 상품은 없을까.
다행히 이런 위험을 어느 정도 방지하는 상품이 있다. ETF(상장지수펀드)라는 상품이다. 혹시 ETF를 권하는 금융회사 사람을 만나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그 금융회사 사람과 인연을 잘 유지하기 바란다. 그는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양심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
ETF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이 없으므로,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ETF는 빼어난 장점 덕분에 근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세계 증권시장을 지배하는 상품으로, ‘주식처럼 증권거래소에서 거래하는 펀드’다. 따라서 금융회사에 찾아갈 필요가 없고, 주식을 사고팔 듯이 집에서 인터넷으로 거래하면 된다.
ETF의 대표적인 장점은 투명성과 저렴한 비용이다. ETF는 펀드의 보유 종목을 완전히 공개하며,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유 종목을 변경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펀드매니저가 필요 없고, 운용 보수도 일반 펀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다.
펀드매니저가 없고 종목 변경도 없다면 죽은 펀드인 셈인데, 살아 있는 펀드와 어떻게 경쟁할까. 증권시장은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해서 돈을 버는 시장이 아니다. 바쁘게 움직일수록 더 빨리 망하기 쉬운 시장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거래비용에 녹아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권시장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물리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놀라운 장점은 펀드 규모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더라도 펀드의 보유 종목을 사거나 팔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ETF를 주식보관증으로 보면 간단하다. 보유 종목을 하나로 묶어서 보관하고 그 주식보관증을 거래하는 방식이므로, 주식을 사고팔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호가 차이나 시장충격비용 같은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물귀신이 몰려들어도 큰 걱정이 없다. 이제부터는 틈나는 대로 ETF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
그레이엄은 증권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증권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은 흔히 주식은 위험하고 채권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식도 충분히 싼 가격에 사면 건전한 투자가 되고, 채권도 경우에 따라서는 주식 이상으로 위험한 투기가 될 수 있다.
그레이엄은 개인이 채권을 살 때는 이자보다 신용도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절대로 망하지 않을 신용도 높은 채권을 사라는 것. 기관은 신용도 낮은 채권에 투자할 때 여러 종목에 분산해 투자하며, 높은 이자 수입을 일부 적립해 손실에 대비한다. 그러나 개인은 이런 식으로 손실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개인이 투기성 채권을 산다면,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을 참고해야 한다. 즉, 실패하면 막대한 손실을 볼 것을 각오해야 하며, 성공할 때는 주식처럼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월 지급식도 ‘양의 탈을 쓴 늑대’
요즘 월 지급식 펀드 가운데 브라질 국채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는 펀드가 많다. 브라질 국채는 왜 수익률이 높을까. 신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재 BBB 등급으로, 간신히 투기등급을 벗어난 수준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곧바로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레이엄이라면 이 국채를 십중팔구 투기성 주식 정도로 간주했을 것이다.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고 투기성 주식을 다루는 방식으로 브라질 국채를 사는 것이라면 충분히 타당한 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이자를 안전하게 주는 ‘연금형’ 상품으로 믿고 가입한다면, 하루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문제는 고객이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고 가입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은 주로 은퇴한 노년층이거나 은퇴를 앞둔 50~60대일 텐데, 브라질 국채의 신용등급, 환율 위험, 경제 전망을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아마도 단순히 ‘연금처럼 월급 받는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품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인 셈이다.
주식이나 다른 채권에 투자하는 월 지급식 펀드는 어떨까. 월 지급식 펀드는 대부분 매달 투자원금의 0.5~0.7%(연 6~8.4%)를 월급처럼 지급한다. 은행 이자보다는 확실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펀드 운용에서 높은 수익이 나온다면 다행이지만, 실적이 부진할 때는 원금을 깨서 월급을 준다. 문제는 월 지급액에 각종 수수료를 더하고 세금까지 포함하면 연 10% 이상 수익을 내야 원금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 상품은 수수료가 연 2% 가까이 된다. 월 0.5%를 지급하는 펀드에 1억 원을 투자한다면, 내가 월 50만 원을 받을 때마다 금융회사는 수수료로 월 15만 원 정도를 받아간다. 내 월급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내 월급은 정기예금 이자보다 15만 원 남짓 많다. 결국 금융회사는 정기예금보다 15만 원(연 2%)을 더 벌어주는 대가로 수수료 15만 원(연 2%)을 받아가는 셈이다.
7월 18일 한국 거래소(KRX)에서 열린 100개 ETF(상장지수펀드) 상장 기념식.
상식에 들어맞는 월 지급식 펀드라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벌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월급을 줄 수는 없으므로, 예컨대 1년 정도는 정기예금 금리처럼 최소 수준으로 월급을 지급한다. △1년 뒤 운용실적이 나오면 원금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월급을 지급한다. 처음에 고객에게 약속했던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면 금융회사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각종 수수료 차감 후) 고객 몫으로 올린 누적 수익률이 일정 기간(예컨대 3년)의 은행 금리에도 못 미친다면, 고객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펀드를 해체한다. 고객이 은행에 예금하고 이자를 받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원금 까먹고서도 수수료는 꼬박꼬박
이를 두고 누군가는 업계 관행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고객을 유혹하고, 원금을 까먹고서도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겨가는 업계 관행은 과연 정당한가.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유능한 펀드매니저라도 몰려다니는 물귀신 앞에선 속수무책이므로, 사람이 몰려드는 인기상품은 쳐다봐서도 안 된다. 그런데 어떤 상품에 물귀신이 몰려들지 누가 알겠는가. 처음부터 물귀신 위험까지 방지하는 상품은 없을까.
다행히 이런 위험을 어느 정도 방지하는 상품이 있다. ETF(상장지수펀드)라는 상품이다. 혹시 ETF를 권하는 금융회사 사람을 만나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그 금융회사 사람과 인연을 잘 유지하기 바란다. 그는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양심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
ETF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이 없으므로,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ETF는 빼어난 장점 덕분에 근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세계 증권시장을 지배하는 상품으로, ‘주식처럼 증권거래소에서 거래하는 펀드’다. 따라서 금융회사에 찾아갈 필요가 없고, 주식을 사고팔 듯이 집에서 인터넷으로 거래하면 된다.
ETF의 대표적인 장점은 투명성과 저렴한 비용이다. ETF는 펀드의 보유 종목을 완전히 공개하며,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유 종목을 변경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펀드매니저가 필요 없고, 운용 보수도 일반 펀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다.
펀드매니저가 없고 종목 변경도 없다면 죽은 펀드인 셈인데, 살아 있는 펀드와 어떻게 경쟁할까. 증권시장은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해서 돈을 버는 시장이 아니다. 바쁘게 움직일수록 더 빨리 망하기 쉬운 시장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거래비용에 녹아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권시장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물리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놀라운 장점은 펀드 규모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더라도 펀드의 보유 종목을 사거나 팔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ETF를 주식보관증으로 보면 간단하다. 보유 종목을 하나로 묶어서 보관하고 그 주식보관증을 거래하는 방식이므로, 주식을 사고팔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호가 차이나 시장충격비용 같은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물귀신이 몰려들어도 큰 걱정이 없다. 이제부터는 틈나는 대로 ETF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