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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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떨고 ‘절망’에 눈물짓고

수재민들 ‘컨테이너’ 거주 두 달째 한숨만… 계약금·융자 상환 어려워 주택 신축 엄두 못 내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2-10-31 1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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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에 떨고 ‘절망’에 눈물짓고

    지난 수해로 아들과 집을 잃고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 김귀자씨(왼쪽)가 북받치는 설움을 못 이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간 지 두 달. 강원 강릉시 삼척시 등 수해지역 주민들의 근심은 찬바람과 함께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수해지역의 도로 전기 전화 등 기초시설만 복구됐을 뿐 수재민들의 정상 생활을 뒷받침할 시설 복구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 특히 집을 잃고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재민들은 성큼 다가온 겨울을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10월23일 강릉시 강동면 대동2리 군선천변. 곳곳에 수해 쓰레기가 널려 있고, 물에 잠긴 벼들은 썩어가고 있었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집들 주변의 공터에 새로 들어선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가옥 26채에서는 60여명의 수재민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후 6시경 해가 지면서 컨테이너 밖은 손이 시릴 만큼 기온이 떨어졌다. 수해 당시 아내와 두 딸을 잃은 염규태씨(42)네 컨테이너에선 염씨와 어머니 김유복씨(62), 이웃 컨테이너에서 건너온 할머니 유씨(75)가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 있었다.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에요”

    ‘추위’에 떨고 ‘절망’에 눈물짓고

    강릉시 강동면 대동2리 컨테이너촌에서 주민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5.4평 넓이의 컨테이너는 전기 보온 패널이 깔려 있어 바닥은 따뜻했지만 벽체가 얇은 데다 창문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이닥쳐 바깥의 한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염씨는 “외풍이 심해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 한다”며 “자다가 답답해 얼굴을 이불 밖으로 내놓으면 코가 얼얼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방안의 위아래 온도 차가 심해 어머니 김씨와 이웃 유씨 할머니는 보름째 감기를 앓고 있다. 약을 먹어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에요.”김씨는 밥을 뜨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10월7일 큰 손녀 은미양(7)이 실종된 지 37일 만에 벼 베기 도중 논바닥에서 발견된 뒤로 여태 찾지 못한 작은 손녀 생각에 입맛을 잃었다고 했다. 이번 수해로 인해 생긴 가슴의 통증 때문에 김씨의 목소리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고 힘이 없었다.

    컨테이너촌에서 20여m 떨어져 있는 염씨의 옛집은 요즘 한창 보수중이다. 천장까지 침수됐던 터라 기둥에선 아직도 물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염씨는 올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지내지 않기 위해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악몽을 안겨준 이 동네에서 정말 살기 싫습니다.”

    아직도 염씨는 자고 일어나면 아내와 아이들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중증장애인이 됐지만 여동생 5명을 키워 출가시켰고, 자신도 결혼해 두 딸을 낳고 7년 6개월간 행복한 가정을 일궜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는 막막하기만 하다. 어머니 때문에 아픈 속을 내색하지 않을 뿐 이미 그의 속은 시커멓게 탔다.

    저녁 7시30분 둥근 달이 밤바다 위에 낮게 떴다. 이번 수해에 아들을 잃은 김귀자씨(64)네 컨테이너 안. 살던 집마저 물에 쓸려가고 없어 컨테이너가 아니면 오갈 데 없는 처지인 김씨는 집터가 남의 땅인데다 돈마저 부족해 집을 새로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눈앞에 닥친 위기상황 탓에 김씨는 요즘 뒷목이뻣뻣하고 넋이 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눈물을 훔쳤다.

    “먼저 간 자식 따라갈 수도 없어. 딸이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고 있거든. 그놈 시집은 보내야제.”

    대동2리는 이번 수해 때 제방이 붕괴돼 4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130가구가 모두 침수를 당해 어느 곳보다 상흔이 깊은 마을이다. 이장인 신무선씨(59)는 “도로 전기 등 기초시설은 복구됐지만 집을 신축하거나 수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며 “컨테이너에 사는 사람들이 올 겨울을 어떻게 넘길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동2리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은 장현동 43통 일대에도 컨테이너촌이 들어섰다. 이곳은 수해 때 장현저수지가 파괴돼 아래 모산마을 32채 중 20채가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다. 26개의 컨테이너가 무리 지어 있는 이곳엔 50여명의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곳 역시 생활 여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방의 보온과 환기 등도 문제지만 방안에 연결된 수도에선 차가운 물만 나온다. 아침에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이 물을 데워 세수하고 음식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추위’에 떨고 ‘절망’에 눈물짓고

    지난 수해 때 장현저수지 둑이 터져 모산마을을 휩쓸고 간 뒤 처음으로 김월기씨 집이 신축되고 있다.

    영월과 설악산에 올 들어 첫눈이 내린 24일 아침 김월기씨(70)는 비상 급식시설에서 시린 손을 불어가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방을 따뜻하게 하려고 컨테이너 바닥에 전기를 연결하면 역한 냄새가 나 속이 울렁거리고 음식을 요리하면 냄새도 잘 빠져나가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고 컨테이너 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니 마을에서 웃는 낯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몇몇 사람은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술 한잔 걸친 최용집씨(63)는 “1만평의 밭에 농사를 지었는데 하나도 못 건졌다”며 “내년부터는 무얼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삼척시 미로면 사둔리 주민 김창하씨(65)는 8월31일 1차 수해 때 집과 축사가 쓸려나가는 등 큰 피해를 입은 뒤 10월18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또다시 컨테이너가 침수되는 고통을 겪었다. 19일 오전 4시께 불어난 물로 뒤편 강이 넘쳐 컨테이너를 덮친 것.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김씨는 “이제 물만 보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이웃 정순옥씨(51)는 1차 수해 때 비닐하우스와 집을 모두 잃었다. 수해 직전 남편 최성용씨(51)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이제는 대학생 아들의 아르바이트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씨는 “더 이상 흐를 눈물도 없다”면서도 “며칠 전 다시 내리는 비를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수해 피해주택은 모두 2만2940여채에 이르며, 25일 현재 전체 복구대상 가옥 4515채 가운데 20%도 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가운데 1510가구 2500여명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행정당국에서는 가능하면 올해 안으로 집을 지어 컨테이너 생활을 벗어나기를 독려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집공사를 시작할 계약금 마련에도 애를 먹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당국은 집의 골조를 올린 것이 확인되면 50%를 지원하고, 준공검사를 받은 뒤 나머지 50%를 지급할 계획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돈을 타서 집을 짓지 않고 도주할 경우 공무원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런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25일 현재까지 주택신축과 관련해서 지급된 돈은 전혀 없다.

    정부가 주택 재건축비로 3240만원(융자 1944만원, 보조 1296만원)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이는 본인 돈으로 집을 지은 뒤 등기를 마쳐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융자를 받더라도 주택이 전파되거나 농경지가 유실된 수재민들은 담보물건조차 확보할 수 없는 형편이고 융자를 받더라도 2년 내에 갚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내년 2월 철거 후엔 갈 곳 없어

    모산마을에서 단층(25.6평, 공사비 4600만원) 양옥을 짓고 있는 건축업자 이건태씨는 “재료비 때문에 계약금으로 최소한 500만원 이상은 받아야 착공이 가능하다”며 “이런 돈마저 없거나 원래 살던 집이 남의 땅인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는 수재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더욱이 공사 계약금마저 떼먹는 악덕 업주가 있어 수재민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노암동에서 모산마을 컨테이너촌에 들어온 6집 가운데 4집은 한 업자와 12월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기로 계약했지만 한 달이 지난 이제껏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해 계약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모산마을 컨테이너촌 사람들은 파괴된 장현저수지가 복구된다는 소식에 “더 이상 저수지를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며 “저수지를 만들지 말든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연동씨(49)는 “시장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앞산의 묵정밭에 집을 짓게 해달라고 요구해 동의를 얻었는데 나중에 시 건축과에서는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시장 따로, 직원 따로”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추위 속에서도 방의 절반만 따뜻하게 하는 등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정부가 보조하는 돈 이상의 전기요금이 나오면 개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

    그러나 강릉시 관계자는 “한전에서 50%, 도와 시에서 각각 25%씩 부담하기로 돼 있다”며 “100% 지원이 알려지면 주민들이 전기를 아껴 쓰지 않을 것 같아 일선에서 그렇게 행정지도를 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컨테이너촌의 한 주민은 “추위에 시달리는 수재민들의 처지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탁상행정을 비난했다.

    컨테이너는 그야말로 단칸방이라 가족이 많을 경우 뿔뿔이 흩어져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모산마을 최옥교씨(72)는 “아들 내외와 세 명의 손자가 이곳에 한꺼번에 기거할 수 없어 아들 내외만 건넛마을에 셋방을 얻었다”며 “어서 빨리 함께 생활할 수 있기만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수해 전부터 셋집에서 살았던 최씨는 “컨테이너라도 기거할 곳이 있어 좋다”며 “내년 2월 이후 컨테이너를 당국이 강제로 수거하면 갈 곳이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컨테이너촌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사람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서울의 모 회사는 대동2리 컨테이너촌에 7대의 기름보일러를 제공해 겨울을 이곳에서 나야 하는 수재민 가정에 온기를 전했다. 경기 고양시 청원건설(사장 배병복)측은 가스레인지 전기담요 히터 겨울외투 등 구호품을 4차례나 보내는 등 컨테이너촌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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