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 동남쪽에서 발견된 유골이 개구리 소년들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먼저 신뢰도가 높은 유전자 감식 방법이 있다. 1985년 영국의 제프리즈 박사가 특정 염기쌍이 여러 번 반복되는 구조인 ‘소위성 DNA(minisatellite DNA)’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손가락의 지문처럼 개인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유전자 감식이란 소위성 DNA라는 ‘DNA 지문’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친자나 혈연관계 확인에 사용될 수 있다.
10월1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 이후 실종된 한국인 자매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도 DNA 지문 감식법이 동원됐다. 인도네시아 법의학 지원팀이 한국인 자매 중 언니의 모발과 아버지의 타액,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검출된 DNA를 비교·분석한 결과, 여섯 가지 검사항목이 모두 일치했던 것.
이번 개구리 소년의 신원 감식에도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건 유골에서도 DNA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유골의 골세포에서는 외부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뽑아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혈통에 따라 유전되기 때문에 개구리 소년의 유골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뽑아내 어머니나 형제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비교하면 된다. 물론 개구리 소년의 유골이 11년 간이나 토양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유전자 감식에 필요한 DNA가 남아 있지 않을 경우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두개골 형체 복원 ‘슈퍼임포즈법’
이 경우 두개골의 형체를 복원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영상이나 물체를 이중으로 겹치게 하는 사진기술인 슈퍼임포즈법(superimpose method)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유골의 두개골과 사망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당시 얼굴 사진을 슈퍼임포즈 장비로 촬영해 필름을 현상한 뒤, 각각의 필름을 중첩시키고 각도와 크기를 조정한 뒤, 두개골과 얼굴 사진의 특징을 비교·검토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국내에서는 이 방법으로 10여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여자 두개골의 신원을 밝혀낸 사례가 있다.
범죄 발생시 ① 범행의 증거물 확보, ② 범죄의 단서 수집, ③ 수집한 증거물로 유전자 감식, ④ 두개골로 피해자의 신원 확인 등이 이루어진다.
법곤충학은 사체 부패와 관련된 곤충들을 이용해 사인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특히 의학적으로 추정하기 힘든 사체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데 요긴하다.
예를 들어 사체를 먹거나 사체에 알을 낳기 위해 날아오는 파리의 경우 종류에 따라 사체에 다가오는 순서가 다르다. 신선한 상태를 좋아하는 청파리가 숨진 지 5분 이내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이어 부패 정도에 따라 금파리(검정파리), 쉬파리, 침파리 순서로 사체에 접근한다. 사체에서 쉬파리의 잔해나 알의 흔적이 발견되지만, 청파리나 금파리의 흔적이 없다면, 이는 사람이 숨진 뒤 일정 기간 동안 파리들이 시신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시신을 옮기거나 조작하는 작업이 이뤄졌을 수 있다.
그러나 11년의 세월 동안 곤충 흔적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면 현미경을 이용한 정밀검사로도 곤충의 정체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 사계절이 뚜렷해 다양한 곤충류가 서식하는 데 반해 아직까지 법곤충학이 정착되지 않은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곤충을 이용해 개구리 소년의 사인을 규명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시신이 옮겨졌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토양검사도 병행되고 있다. 유골 주변의 흙이나 유골 위에 있는 돌이 유골 발굴 현장인 와룡산의 특성과 다를 경우 시신이 옮겨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실종된 지 9개월 만에 경남 창원 불모산에서 나무에 목매단 채 시신으로 발견된 대우중공업 노동자 정경식씨에 대해 지난 8월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자살이 아니라고 밝힌 근거도 토양검사를 통한 증거였다. 만일 정경식씨가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면 9개월 동안 사체가 부패할 때 발생하는 다량의 유기물질이 사체가 발견된 토양을 오염시켰을 텐데, 현장 토양에는 이런 흔적이 없었다. 또 목을 맨 끈에서는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울러 개구리 소년의 유골이 발견된 현장 일대의 토양에 대해서는 지질학자가 나서서 퇴적과 침식을 조사해 시신이 자연적으로 묻혔는지, 누군가에 의해 매장됐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중이다. 현장의 지질조사에 나선 전문가는 유골 발굴 지점 일대가 계단식 지형의 계곡이기 때문에 국부적으로 퇴적이 가능한 곳으로 보고, 발굴 지점, 계곡의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계곡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토사를 채취해 입자 크기나 성분을 정밀분석하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도 말을 한다.’ 법의학 수사 서적 첫장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죽을 때 자신이 죽게 된 사연을 알리는 흔적을 시신 어딘가에 남겨둔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난해한 암호 해석만큼이나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의학팀의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