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 2008년판.
창업과 폐업이 평행선을 긋는 요즘, 위와 같은 사례는 차라리 평범하다 하겠다. 닥쳤을 때 대비하는 것은 이미 늦지만, 늦더라도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었을 경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럴 때 참고할 수 있는 군사작전의 원칙은 없을까.
세계 최강 군대를 보유한 미국이 1990년대 말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잃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진단했을 때 많은 군사 전문가는 이를 하나의 레토릭(수사학)으로 봤다. 국방력 강화를 위한 핑계로 오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자국 군사력을 ‘다양하고 빨라진 갖가지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항공모함’에 비유하며 21세기 미군에게 필요한 덕목은 ‘민첩성(agility)’이라고 하자 그 진의가 이해됐다.
민첩성은 분자생물학 등에서 자주 인용되는 생존의 원칙이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를 ‘조직 지속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군사작전에서는 이 민첩성의 원칙을 어떻게 정의할까.
학습으로 통찰과 직관 길러라
1993년판 미국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는 ‘민첩성이란 적보다 전투력을 신속하게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과거 냉전시대의 안보환경과 위협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확했다. 따라서 전술적 차원에서 ‘적보다 빠른’ 정도면 충분히 상대적 우세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2008년판 ‘작전’에서는 뉘앙스가 상당히 달라진다. 이른바 ‘테러와의 긴 전쟁’ 시대에 전투력 우위의 전술로는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민첩성의 적용 범위도 작전급 이상, 전략적 수준으로 확대돼야 했다. 즉 전술적이고 단기적인 효과 측면뿐 아니라 군사전략, 국방정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의 장기적 방법론으로서의 민첩성을 제시한 것이다.
2008년판 ‘작전’에서는 민첩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을까. 첫째는 장기적 관점에서 구성원을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미 육군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부대들은 전쟁 도중에 그 전법(How to fight)을 ‘적을 격멸, 제압’하는 방식에서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바꾸려 노력했다. 지휘관 세미나를 하고 교범을 고치려 하는 등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군대의 시스템이나 절차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한 편이다. 사실 전쟁 와중에 군을 혁신하는 것은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때가 많다.
늦게나마 미 육군은 일반 사회의 사회과학, 문화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 커리큘럼과 각종 교재를 대대적으로 보완했다. 또한 이스라엘, 영국 등 일찌감치 테러와 전쟁을 벌였던 국가의 전문가를 미 육군 연구기관에 고용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달라진 전법이 실제 전장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변화 내용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장교들이 야전에 배치되고 난 뒤였다.
둘째는 새로운 기술을 ‘구매’하는 것이다(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도입’하는 것도 아닌, ‘구매’하는 것이다). 오늘날 군사작전 현장의 현재와 미래를 표현할 때 가장 상징적인 구실을 하는 것은 무인항공기(UAVs)다. 그러나 초기 타입의 무인항공기 RQ-1 프레데터가 정찰작전을 위해 유고슬라비아에 투입된 1995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알아본 극히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운용을 반대했다.
특히 각종 주변 장비와 운용 시스템을 제외한 본체 가격만 50억 원이 넘는 이 무인항공기가 향후 미국 국방비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프레데터, 리퍼 같은 무인항공기는 인간자산 투입의 위험을 줄이고 인력운용으로 인한 부대비용을 오히려 줄이는 효자 구실을 하고 있다.
셋째는 학습을 통해 통찰과 직관을 기르라는 것이다.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부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안개 속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좇아갈 수 있는 정신적 용기’라고 설파했다. 이 정신적 용기가 다름 아닌 통찰과 직관이다. 이는 전쟁사와 군사 교리(doctrine)에 대한 학습과 실제 전투에 참가한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대 군대가 장교들에게 강도 높은 학습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가 2009년 학업을 위해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에 갔을 때 미군 중령들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은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부터 영어로 된 ‘논어’까지, 그들의 수준 높고도 다양한 관심을 대변하는 것들이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내용을 적용해 앞서 언급한 A사가 방향 전환을 위해 했던 노력들을 분석해보자. 첫째, 구성원이 변하지 않는 한 구조조정은 소용이 없다. A사는 ‘뼈를 깎는 고통’이라고 스스로 표현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단기 흑자가 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줄어든 사람 수만큼 업무 부담을 느꼈다. 일에 대한 흥미와 의욕이 줄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A사 경영진은 2년 단위로 구성원 마인드 변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지속적인 세미나와 워크숍, 연구진에 의한 비전 개발 및 적용 등이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장기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들은 이전처럼 점차 자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업무에 전념하는 태도를 보이게 됐다.
둘째, 외부 컨설팅업체와 전문가에 의한 코칭을 수용하라. 많은 조직이 변화와 혁신을 위해 팀을 만들고 본부를 구성하며 태스크포스(TF)를 활용한다. 그러나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세미나를 하고 성과 발표를 하지만 이를 지속할 전담 인력과 제도가 보장되지 않으면 반짝효과에 그칠 뿐이다.
겸직이기 마련인 임시팀이 잠시 ‘붐’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팀 해체와 동시에 붐은 가라앉는다. 이에 반해 외부 컨설팅업체는 유지 보수와 지속성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본부나 TF의 경우 경영진에 보고하고 승인받는 과정에서 적시성을 상당히 잃는다. 하지만 전문가 코칭은 필요한 지점과 부서로 직접 이동해 필요한 상담과 조치를 독립적으로 취할 수 있다.
셋째, 팀 단위 자기주도 학습을 권장하라. 최근 스타트업 분야에서 관심을 모으는 한 업체는 경영진 주도로 갖가지 이벤트를 마련해 주목을 끌고 있다. 화제의 인물을 불러 특강을 하거나 유명 교수를 초빙해 워크숍을 하기도 한다. 쾌적한 분위기의 카페에 도서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스타트업에 속한 구성원이 스스로 업무 등에 필요한 학습을 하지 않으면 정보기술(IT) 분야 쪽 업체는 특히 살아남기 힘들다.
자기주도 학습이라고 이른바 ‘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만 떠올리면 오산이다. ‘당신이 학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모두 뛰어다니고 있는데 당신만 앉아 있다’는 위기감을 줄 필요도 있다. LCA-J 컨설팅의 경험에 의하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겠다’는 절박한 의지를 구성원들이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