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곡지구 ‘LG사이언스파크’ 공사 모습.
아파트 분양 당시 미분양이 속출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서울 마곡지구가 2년 사이 처지가 확 달라졌다. 지난해 전세로 입주한 주민들은 내년 재계약을 걱정할 정도로 전셋값이 급등했고, 매매가도 분양가 대비 2배 가까이 올랐다. 마곡지구가 갑작스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주요 기업 입주 결정되자 집값 동반 상승
10월 초 마곡지구를 찾았다. 서울도시철도 5호선 마곡역을 기점으로 서쪽과 남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동쪽으로는 기업들이 입주할 빌딩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마곡역에서 마곡지구 내 중심지역인 엠밸리 7단지까지 이동하는 도로에는 공사로 각종 건설장비가 곳곳에 놓여 있었고 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녀 걸어 다니는 주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곡지구 공사 완료 시점은 2030년으로 예정돼 있어 신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였다.
주거단지 가운데 일부는 지난해 공사가 끝나 주민 입주가 완료된 상태였다. 엠밸리 7단지 내 A공인중개업소 대표에게 시세를 묻자 “인기가 높은 108m2 전세는 매물이 없고 현재 남은 전세는 147m2밖에 없는데, 5억~5억5000만 원은 내야 한다. 같은 크기의 매매 물량은 좀 있지만 9억 원까지 올라간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2013년 분양 당시 마곡지구는 임대주택과 장기전세 비율이 높고, 학군도 좋지 않아 실거주 목적으로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미분양이 쌓이자 정부가 이를 털어내기 위해 12월까지 5년 양도세 면제 혜택을 제시했고, 그 영향으로 서서히 매물이 나갔다”고 말했다. 분양가는 3.3m2당 1200만 원으로, 당시 108m2는 4억 원대, 147m2는 5억 원대에 팔렸다.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그때 투자 목적으로 분양받은 이들은 지금 팔면 3억~4억 원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버는 셈이다. 분양광고 현수막을 내걸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오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 상승 기대의 견인차 노릇을 한 것은 주요 기업의 입주 결정이었다. 마곡지구는 서울시와 SH공사가 강서구 마곡동 일대 3.66km2 대지에 조성하는 주거·상업·업무·산업복합단지로, 사업이 시작된 2011년부터 어떤 기업이 들어설지 관심이 컸다. 올해까지 LG그룹, 롯데그룹, 넥센타이어, 대우조선해양, 코오롱, 이랜드그룹, S오일 등 주요 78개 기업의 입주가 확정됐다. 박희수 서울시 마곡사업추진단장은 “현재 전체 입주예정 기업 가운데 60%가 사업을 확정했다. 2030년이 되면 약 164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87만 명의 고용창출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LG그룹을 비롯한 국내 78개 기업의 입주가 확정되면서 서울 마곡지구 집값은 2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
수십 개 기업이 입주하는 시점에 고용인원의 이주가 본격화되면 아파트가 부족할 것이란 전망 때문에 마곡지구 인근 아파트값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B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마곡지구 북서쪽에 위치한 지하철 5호선 방화역 인근의 10년 넘은 아파트들도 일주일에 1000만 원씩 호가가 오르고 있다. 마곡지구 내 아파트만으로 이주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값까지 오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입주 시점 이주 수요는 기대 못 미칠 수도
이런 이유로 마곡지구 인근 민간건설사 분양 물량도 현재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었다. 2013년 말 현대엔지니어링에서 분양한 마곡힐스테이트는 SH공사에서 짓는 아파트보다 마감재가 좋고 구조도 나은 편이어서 분양가가 좀 더 비싼 3.3m2당 1600만 원에 책정됐지만 분양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B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마곡힐스테이트의 프리미엄은 높은 분양가 탓에 3000만 원 정도 붙었지만 12월 입주를 앞둔 현재 프리미엄은 평균적으로 2억 원 정도 오른 상태다. 마곡역 인근 이마트의 입주가 확정되고, 신세계아울렛까지 들어서는 것으로 확정되자 전체 상권이 좋아지리라는 기대감에 인기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마곡지구 집값은 서울 시내 어느 지역과 비슷한 수준일까. 부동산 컨설팅 전문업체 유엔알의 박상언 대표는 “송파구는 잠실 아파트값이 높은 편인데 108m2대 매매가가 9억~10억 원 정도다. 송파구 나머지 아파트들의 매매가는 평균 9억 원에 형성돼 있다. 마곡지구는 현재 송파구 평균 아파트값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향후 집값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박 대표는 “현재 마곡지구의 집값은 꼭지까지 올라간 상황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마곡지구는 임대주택 비율이 높고 학군도 좋지 않아 대출을 껴서 진입하는 중산층이 많다. 이 경우 다른 지역보다 경기에 취약하기 때문에 경기나 나빠지면 집값이 꺾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7년 기업 입주가 시작되는 시점에 집값이 한 번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일각에서는 풍부한 교통 인프라 때문에 이주 수요는 많지 않으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희수 단장은 “마곡지구는 서울의 서쪽 끝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서울 시내고,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이 연결돼 있는 데다 공항철도까지 개통되면 지하철역만 6개에 이른다. 강남권과도 20분 내에 있고 서울 다른 지역에서도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출퇴근이 충분히 가능한 지역이다. 거주시설 부족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곡지구 집값이 급격히 오른 것에 대한 대책은 없을까. 박 단장은 “아파트값은 시장의 가격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미분양 당시보다 3억 원 넘게 올랐다고 그에 맞는 대책이 당장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집값 상승은 개발 기대감 때문에 형성된 것인데, 개발계획이 10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집값 문제를 잡으려고 따로 대비책을 마련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