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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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공공보건 위협하는 위험물

[이윤현의 보건과 건강]

  • 이윤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대한검역학회 회장)

    입력2025-11-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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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0월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특별만찬에서 건배한 뒤 샴페인 잔을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샴페인으로 건배만 하고 콜라를 마셨다. 그의 오른쪽에 따로 준비된 콜라 잔이 보인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0월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특별만찬에서 건배한 뒤 샴페인 잔을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샴페인으로 건배만 하고 콜라를 마셨다. 그의 오른쪽에 따로 준비된 콜라 잔이 보인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말이 되면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부쩍 많아진다. 하지만 필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샴페인 대신 콜라를 마시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건배를 제의하자 다른 정상들과 함께 샴페인 잔을 들긴 했다. 하지만 테이블에 그대로 내려놓은 채 바로 옆에 있는 콜라를 마셨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가 알코올 중독으로 42세에 사망한 영향이다. “형의 죽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했던 그의 이런 행동은 음주에 관대한 우리 사회에 전하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술에 대한 패러다임 바꿔야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어떠한 수준의 알코올 섭취도 건강에 안전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국제암연구소(IARC) 또한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며 소량의 음주도 간암, 식도암, 유방암 등 최소 7종의 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다”는 믿음은 이미 과학적으로 부정된 상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술에 관대하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말이 회식 자리에서 농담처럼 오가고, 술을 거절하면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하지만 각종 연구에 따르면 음주 강요는 오히려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음주를 강요하지 않는 회사 직원들이 업무 효율과 만족도가 더 높다. 술을 사회성과 능력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비생산적인 셈이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38명에 이른다. 사회적 비난과 정부의 강력한 단속 및 처벌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13.2%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매년 100명 넘는 사람이 술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이제는 술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술은 관계의 윤활유가 아니라, 공공보건을 위협하는 위험물이다. 회식 문화를 일신하고 무알코올 음료를 확산하며 직장 내 음주 강요를 금지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책적으로도 음주운전 단속을 넘어, 알코올 소비 자체를 줄이기 위한 공공 캠페인을 강화해야 한다.

    연말 술자리에서 잠시 생각해보자. 지금 내 앞의 술잔이 나를 건강하게 하는가, 아니면 서서히 병들게 하는가. 올해 술잔 대신 제로 콜라 한 잔으로 건배 제의를 한다면 진정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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