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꽃물 들일 때 쓰던 명반, 알고 보니 색깔 지킴이

[이광렬의 화학 생활] 새 옷 처음 빨래할 때 명반 푼 물에 담가두면 색 빠짐 방지

  • 이광렬 고려대 화학과 교수

    입력2026-01-2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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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옷을 물들이는 염료는 염기성을 만나면 음이온으로 변해 물에 잘 녹는다. 염기성을 띠는 세제로 옷을 빨면 색이 빠지는 이유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옷을 물들이는 염료는 염기성을 만나면 음이온으로 변해 물에 잘 녹는다. 염기성을 띠는 세제로 옷을 빨면 색이 빠지는 이유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색이 아주 예뻐서 산 옷이 한 번 빨고 나니 물이 다 빠졌다. 아무 생각 없이 흰옷을 색이 있는 옷과 같이 빨았더니 새하얗던 옷이 그만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이염 방지 시트를 세탁기에 함께 넣고 돌렸는데도 색이 진한 옷이 흰옷을 울긋불긋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청소와 빨래에는 락스가 제격’이라는 거짓 정보를 보고 세탁물에 락스를 부었다가 색이 예쁜 옷 곳곳에 허연 얼룩을 만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흰옷과 색깔 옷을 구분해 빨고, 색이 있는 옷에는 락스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생활 상식을 배운다.

    염료 분자 많으면 이염 방지 시트 무용지물

    사실 화학 지식을 조금만 갖고 있어도 이런 세탁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중고교 과학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이다. 지시약 페놀프탈레인을 투명한 용액에 넣고 염기성인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용액이 아주 진한 분홍색으로 변하는 실험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페놀프탈레인처럼 강한 색을 나타내는 물질을 염료라고 하는데, 염기성 환경에서 이런 염료는 음의 성질을 띠는 이온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온은 물에 잘 녹는다.

    옷을 물들이는 물질도 바로 염료다. 우리가 사용하는 빨래 세제는 대부분 염기성이다. 그러니 빨래를 위해 물에 세제를 풀고 옷을 집어넣으면 옷에 있는 염료가 음의 성질을 띠는 이온으로 변할 수 있다. 음이온은 앞서 설명한 대로 물에 잘 녹아 옷 색이 쉽게 빠질 수 있다. 옷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염료가 옷 섬유에 단단히 고정되지 못하면 이온으로 변하기가 더 쉽다.

    빨아도 옷 색이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반이라는 물질을 활용하면 된다. 영어로 ‘알룸(Alum)’으로 불리고, 화학식은 K₂SO₄Al₂(SO₄)₃24H₂O다. 물에 잘 녹는 흰색 덩어리로 약국에서 살 수 있다. 봉선화 꽃으로 손톱을 물들일 때 쓰는 하얀 가루 맞다. 명반에 있는 알루미늄 양이온(Al³⁺)은 음이온 상태인 염료와 아주 단단하게 결합한다. 명반은 옷의 면섬유에 있는 산소 원자와도 강하게 결합한다. 염료를 옷 섬유에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것이다. 새 옷의 색 빠짐을 막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명반을 녹인 찬물에 새로 산 옷을 20~30분간 담가둔다. 명반은 옷 무게의 100분의 1 양이면 충분하다. 이후 옷을 찬물에 잘 헹군다. 마지막으로 소량의 구연산이나 식초를 넣은 물에 옷을 한 번 헹군 다음 잘 말린다. 이 과정을 여러 번 할 필요는 없고 옷을 사서 처음 빨래할 때만 한 번 하면 된다. 명반 처리를 한 옷은 색 빠짐이 훨씬 덜할 것이다.



    이염 방지 시트를 써도 이염이 생기는 건 왜 그럴까. 이염 방지 시트는 양의 성질을 가진 천 조각이다. 옷에서 빠진 염료들이 음이온으로 변해 물속으로 들어오면 이 음이온들을 이염 방지 시트의 양의 성질을 이용해 붙잡아 다른 옷에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게 이염 방지 시트의 원리다. 옷에서 떨어져 나온 염료의 분자 개수가 너무 많다면 어떻게 될까. 이염 방지 시트가 이것들을 다 붙잡기 어렵지 않겠는가. 경찰 1명이 한 번에 도둑 10명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색 빠짐이 아주 심한 옷은 이염 방지 시트를 사용해도 다른 옷을 물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염 방지 시트를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색깔 분자의 화학 결합 깨는 락스

    락스는 아주 강한 살균제면서 표백제다. 락스의 살균·표백 작용은 락스의 산화력에서 나온다. 락스가 색깔 분자의 화학 결합을 깨버리고 세균 속에 든 분자들도 마구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흰 수건을 표백하려면 락스를 물에 타 사용하면 된다. 락스가 수건에 남아 있는 약간의 색깔 분자까지 모두 파괴하면서 수건을 새하얗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 강력한 락스를 예쁜 주황색 옷에 뿌린다면 어떨까. 지저분한 허연 얼룩이 이곳저곳에 생기게 된다. 이를 복원해줄 세탁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락스는 색깔 옷 근처에도 두어선 안 된다.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아찔한 화학책’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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