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F-15K 기술유출 혐의 고강도 조사’ ‘FBI·CIA 등 한국 군수산업 조사’ ‘한국이 기술 도용해 짝퉁 무기 만든다, 美 의혹 여전’ ‘기술 도용 명백 vs 근거 없는 의혹 공방, 외교마찰 비화 우려’…. 11월 초부터 쏟아져 나와 안보당국을 벌컥 뒤집은 한국 공군의 F-15K 부품 분해 의혹 관련 보도다. 한미 군사당국을 초미의 긴장관계에 빠뜨린 이 사건과 관련해, 9월 중순 미 국방부 측이 조사단을 파견했으며 양측 사이에 강도 높은 공방이 오갔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투기에 장착하는 고성능 항법·표적식별장비 ‘타이거아이’의 일부 봉인이 손상됐다는 사실을 발견한 미국 측이 국방부 채널을 통해 “부품 해체를 하다 훼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 문제의 봉인지는 미국산 무기를 수입한 국가가 특수 군사장비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려고 장비를 임의로 뜯어보는 일을 막기 위해 납품 당시 붙여놓은 것. 9월 들어 국내의 한 공군비행장에서 진행된 한미 공동조사 과정에서 운용 당사자인 공군은 장착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손상된 것일 뿐, 기술 확보를 위한 임의 해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초기의 요란했던 보도와 달리, 11월 하순 들어 관계당국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상대로 “미국 CIA(중앙정보국), FBI(연방수사국) 관계자가 방한해 방위사업청과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미국 군사기술 도용 의혹을 조사 중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봉인지 훼손은 실수였고 이후 벌어진 논란 또한 해프닝에 불과했는데, 언론이 부풀리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는 취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기류가 당초 주장대로라면 ‘기술 도용 피해자’에 해당하는 미국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안을 더는 공개 거론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해진 것. 한마디로 ‘어느 쪽도 확전(擴戰)을 원치 않는 일’이 된 셈이다.
이 사건은 정말 단순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일까. 당국자들 말대로 미국 조사단은 실수일 뿐이었다는 우리 측 설명에 납득하고 돌아간 것일까. ‘주간동아’는 한미 양측의 다양한 관계자들을 통해 이러한 최근의 ‘해명’이 사실과 사뭇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살펴볼 내용은 이번 사안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 측 인사들의 면면. 그간 이를 담당하는 워싱턴 주무부처가 어디인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복수의 미국 현지 당국자들은 미 국방부 산하 국방기술보안청(DTSA)을 지목했다. 9월 한미 공동조사를 위해 우리 측 공군기지를 찾은 이들이 바로 제임스 허시 DTSA 청장을 비롯한 9명의 관련 전문가였다는 것. 함께 방한한 피터 버거 부차관보 등은 모두 미 국방부 정책실 소속으로 미셸 플러노이 정책담당 차관 휘하다. 미국산 무기 수입 국가의 방산기술 유출 문제는 국방부 정책실의 고유 업무라는 설명이다.
미 고위 관계자 줄줄이 방한 처음
문제는 한국의 기술 유출 의혹 때문에 미국 측 고위관계자들이 이렇듯 줄줄이 방한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사실. 이전에도 다소간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지만 방한한 인사는 통상 대령급 장교 수준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 국방부가 이번 일을 이전의 어떤 경우보다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셈이다.
또한 이는 ‘블루랜턴(Blue Lantern)’이라 부르는 미국 정부의 통상적인 무기거래 확인 절차와도 구별된다. 자국 무기가 위협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미 국무부가 운용하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한 국가의 현지 미 대사관 상무과 담당자가 당초의 계약자에게 물건이 제대로 인도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무기거래에 관여하는 우방국가 중개업자의 신원 확인도 블루랜턴 프로그램 소관. ‘블루’라는 상징어 자체가 우방국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몇몇 신문은 “이번 조사 작업에 블루랜턴이라는 코드명이 붙었다”고 보도한 바 있지만, 국방부 정책실 소관인 이번 사안은 국무부 업무인 블루랜턴과는 관계가 없다는 게 전·현직 워싱턴 당국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미군 측도 한국 공군에 혐의가 없음을 확인했다”는 방사청의 해명도 사실과 다르다고 미국 측 인사들은 말한다. 한국 측의 증거 제시 요구에 DTSA 조사단이 “한국 측이 봉인 확인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 추후 이를 피할 수 있으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반박했을 따름이라는 것. 물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어서 한국 측 ‘실토’를 받아내지 못한 것일 뿐, 절대로 양해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한국군이나 관련 기관의 누군가가 미국 측에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한국 공군이 고장 난 장비 수리를 미국 제조업체에 의뢰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이라며 부인했다. 수리 과정에서 봉인 이상을 보고받은 미 국방부는 FBI에 의뢰해 과학수사기법까지 동원해가며 파손의 고의성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9월 합동조사과정에서 DTSA 측이 증거제시를 거부한 것은 FBI 고유의 수사기법을 외국 정부에 노출할 권리가 국방부에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DTSA 측이 봉인해제를 주도한 당사자로 공군이 아닌 국방과학연구소(ADD·이하 국과연)를 지목한다는 점이다. 국산 무기체계의 기술개발과 시험평가를 책임진 국과연이 사건에 관여했다면 이는 단순 실수일 수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이 수출용 무기 개발을 위해 타이거아이의 기술을 ‘훔쳐보려’ 한 것 아니냐는 미국 측 의심이 어디서 나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측은 대잠(對潛)어뢰인 홍상어와 청상어, 다연장로켓(MLRS), K1A1 전차 사격통제장비 등 그간 국과연과 국내 방산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고 홍보해온 상당수 무기체계가 미국 무기의 원천기술을 유용해 만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잠어뢰만 해도 미국산 대함(對艦) 미사일 하푼과 외형이 비슷할뿐더러 핵심기술이나 운용방식도 지나칠 만큼 흡사하다는 것. 이는 그간 한미 양국이 체결한 다양한 기술보안각서를 위반한 행위라는 게 미국 측 시각이다. 한 국내 방산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간 미국 정부가 이러한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던 것은 자국 무기를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판매하려는 차원이었다고 본다.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경우 미국 국내법상 무기 수출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술 유출은 해당 무기 제조업체의 이익을 침해한 것일 뿐, 미국 정부와 직접 연결된 사안은 아니다. 동맹국인 한국이 기술을 도용했다 해도 이를 국내에서만 활용하는 한 자국안보에 위협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국과연이 개발한 백곰 미사일의 경우 당시 개발자들이 공공연히 미국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참조해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이를 문제 삼은 일은 없었을 정도다.”
한국식과 중국식의 차이
실제로 최근 수년 사이 미국 정부가 기술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행보에 공식적으로 제동을 건 것은 전파방해장비 ALQ-200의 경우뿐이다. 2009년 무렵 한국이 이 장비를 파키스탄에 수출하려고 하자 미국 측은 “파키스탄은 중국제 전투기를 운용하므로 중국에 기술이 넘어갈 수 있다”는 취지로 수출에 반대한 바 있다. 이 경우는 국가안보와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남는 의문은 한 가지다. 문제의 봉인 훼손 같은 경우 기술을 적성국에 유출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미국이 이렇듯 강력히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당수 전문가는 이를 우리 정부가 2013년부터 본격화할 예정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과 연결해 해석한다. 이를 통해 한국이 전투기 독자 개발에 성공할 경우 앞으로 미국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가에 수출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것. 한 걸음 나아가면 세계 전투기 시장을 장악한 미국 주요 방산업체의 경쟁상대로 떠오르는 상황도 경계한다는 견해다.
국과연은 최근 이 사업의 탐지장비 개발 부분을 직접 주도하는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봉인 훼손 사건 역시 KFX를 위한 원천기술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 아니냐는 게 워싱턴의 시각인 셈이다.
반면 강한 문제제기로 기선제압에 나섰던 미국 측이 최근 조기 진화로 방향을 튼 것은 한국이 내년에 줄줄이 예정한 수조 원 규모의 무기도입사업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 미국의 ‘깐깐한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나 분위기가 확산되어 이들 사업에서 미국업체가 불리해지는 일을 막으려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단기적 이익만 생각하면 미국 기술을 기반으로 국산 무기를 개발한대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법률적 문제나 동맹의 신뢰를 놓고 보면 쉽게만 볼 일이 아닌 것 역시 사실이다. 오히려 문제는 수많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면서도 기술협력 조건을 충분히 얻어내지 못한 그간의 패턴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언제나 미국산 구입에 우선순위를 두는 바람에 ‘구매자의 지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함께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한미 양국이 봉합수순에 들어간 11월 21일, 한 일간지는 공교롭게도 국과연에서 미사일 개발업무에 종사한 바 있는 정동석 인하대 IT공과대학장의 글을 실었다. 2011년 여름과 가을, 한미 군사당국을 뜨겁게 달궜던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 음미할 가치가 있는 이 칼럼의 주요 대목을 옮긴다.
“중국은 비록 투박하지만 자체 제작한 실험장비를 갖고 우주선을 띄우고 대륙간탄도탄도 만든다. 한국의 기술개발이 다 자란 나무를 사다 옮겨 싣는 식이라면, 중국은 직접 씨를 뿌리거나 묘목을 키우는 식이다. 한국식은 결과는 빨리 나오지만 병이 들어도 고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중국식은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문제를 자체 해결할 능력을 키워준다. 국가안보에 관한 기술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발해 ‘우리 것’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건의 시작은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투기에 장착하는 고성능 항법·표적식별장비 ‘타이거아이’의 일부 봉인이 손상됐다는 사실을 발견한 미국 측이 국방부 채널을 통해 “부품 해체를 하다 훼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 문제의 봉인지는 미국산 무기를 수입한 국가가 특수 군사장비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려고 장비를 임의로 뜯어보는 일을 막기 위해 납품 당시 붙여놓은 것. 9월 들어 국내의 한 공군비행장에서 진행된 한미 공동조사 과정에서 운용 당사자인 공군은 장착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손상된 것일 뿐, 기술 확보를 위한 임의 해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초기의 요란했던 보도와 달리, 11월 하순 들어 관계당국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상대로 “미국 CIA(중앙정보국), FBI(연방수사국) 관계자가 방한해 방위사업청과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미국 군사기술 도용 의혹을 조사 중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봉인지 훼손은 실수였고 이후 벌어진 논란 또한 해프닝에 불과했는데, 언론이 부풀리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는 취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기류가 당초 주장대로라면 ‘기술 도용 피해자’에 해당하는 미국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안을 더는 공개 거론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해진 것. 한마디로 ‘어느 쪽도 확전(擴戰)을 원치 않는 일’이 된 셈이다.
이 사건은 정말 단순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일까. 당국자들 말대로 미국 조사단은 실수일 뿐이었다는 우리 측 설명에 납득하고 돌아간 것일까. ‘주간동아’는 한미 양측의 다양한 관계자들을 통해 이러한 최근의 ‘해명’이 사실과 사뭇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살펴볼 내용은 이번 사안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 측 인사들의 면면. 그간 이를 담당하는 워싱턴 주무부처가 어디인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복수의 미국 현지 당국자들은 미 국방부 산하 국방기술보안청(DTSA)을 지목했다. 9월 한미 공동조사를 위해 우리 측 공군기지를 찾은 이들이 바로 제임스 허시 DTSA 청장을 비롯한 9명의 관련 전문가였다는 것. 함께 방한한 피터 버거 부차관보 등은 모두 미 국방부 정책실 소속으로 미셸 플러노이 정책담당 차관 휘하다. 미국산 무기 수입 국가의 방산기술 유출 문제는 국방부 정책실의 고유 업무라는 설명이다.
미 고위 관계자 줄줄이 방한 처음
문제는 한국의 기술 유출 의혹 때문에 미국 측 고위관계자들이 이렇듯 줄줄이 방한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사실. 이전에도 다소간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지만 방한한 인사는 통상 대령급 장교 수준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 국방부가 이번 일을 이전의 어떤 경우보다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셈이다.
또한 이는 ‘블루랜턴(Blue Lantern)’이라 부르는 미국 정부의 통상적인 무기거래 확인 절차와도 구별된다. 자국 무기가 위협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미 국무부가 운용하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한 국가의 현지 미 대사관 상무과 담당자가 당초의 계약자에게 물건이 제대로 인도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무기거래에 관여하는 우방국가 중개업자의 신원 확인도 블루랜턴 프로그램 소관. ‘블루’라는 상징어 자체가 우방국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몇몇 신문은 “이번 조사 작업에 블루랜턴이라는 코드명이 붙었다”고 보도한 바 있지만, 국방부 정책실 소관인 이번 사안은 국무부 업무인 블루랜턴과는 관계가 없다는 게 전·현직 워싱턴 당국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미군 측도 한국 공군에 혐의가 없음을 확인했다”는 방사청의 해명도 사실과 다르다고 미국 측 인사들은 말한다. 한국 측의 증거 제시 요구에 DTSA 조사단이 “한국 측이 봉인 확인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 추후 이를 피할 수 있으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반박했을 따름이라는 것. 물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어서 한국 측 ‘실토’를 받아내지 못한 것일 뿐, 절대로 양해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한국군이나 관련 기관의 누군가가 미국 측에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한국 공군이 고장 난 장비 수리를 미국 제조업체에 의뢰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이라며 부인했다. 수리 과정에서 봉인 이상을 보고받은 미 국방부는 FBI에 의뢰해 과학수사기법까지 동원해가며 파손의 고의성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9월 합동조사과정에서 DTSA 측이 증거제시를 거부한 것은 FBI 고유의 수사기법을 외국 정부에 노출할 권리가 국방부에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DTSA 측이 봉인해제를 주도한 당사자로 공군이 아닌 국방과학연구소(ADD·이하 국과연)를 지목한다는 점이다. 국산 무기체계의 기술개발과 시험평가를 책임진 국과연이 사건에 관여했다면 이는 단순 실수일 수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이 수출용 무기 개발을 위해 타이거아이의 기술을 ‘훔쳐보려’ 한 것 아니냐는 미국 측 의심이 어디서 나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측은 대잠(對潛)어뢰인 홍상어와 청상어, 다연장로켓(MLRS), K1A1 전차 사격통제장비 등 그간 국과연과 국내 방산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고 홍보해온 상당수 무기체계가 미국 무기의 원천기술을 유용해 만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잠어뢰만 해도 미국산 대함(對艦) 미사일 하푼과 외형이 비슷할뿐더러 핵심기술이나 운용방식도 지나칠 만큼 흡사하다는 것. 이는 그간 한미 양국이 체결한 다양한 기술보안각서를 위반한 행위라는 게 미국 측 시각이다. 한 국내 방산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간 미국 정부가 이러한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던 것은 자국 무기를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판매하려는 차원이었다고 본다.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경우 미국 국내법상 무기 수출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술 유출은 해당 무기 제조업체의 이익을 침해한 것일 뿐, 미국 정부와 직접 연결된 사안은 아니다. 동맹국인 한국이 기술을 도용했다 해도 이를 국내에서만 활용하는 한 자국안보에 위협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국과연이 개발한 백곰 미사일의 경우 당시 개발자들이 공공연히 미국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참조해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이를 문제 삼은 일은 없었을 정도다.”
한국식과 중국식의 차이
2009년 2월 경북 구미시에 있는 LIG넥스원의 전자파 무반향 시험장에서 연구원들이 외장형 전파방해장비 ALQ-200을 점검하고 있다. 전투기에 장착돼 미사일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무기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남는 의문은 한 가지다. 문제의 봉인 훼손 같은 경우 기술을 적성국에 유출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미국이 이렇듯 강력히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당수 전문가는 이를 우리 정부가 2013년부터 본격화할 예정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과 연결해 해석한다. 이를 통해 한국이 전투기 독자 개발에 성공할 경우 앞으로 미국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가에 수출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것. 한 걸음 나아가면 세계 전투기 시장을 장악한 미국 주요 방산업체의 경쟁상대로 떠오르는 상황도 경계한다는 견해다.
국과연은 최근 이 사업의 탐지장비 개발 부분을 직접 주도하는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봉인 훼손 사건 역시 KFX를 위한 원천기술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 아니냐는 게 워싱턴의 시각인 셈이다.
반면 강한 문제제기로 기선제압에 나섰던 미국 측이 최근 조기 진화로 방향을 튼 것은 한국이 내년에 줄줄이 예정한 수조 원 규모의 무기도입사업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 미국의 ‘깐깐한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나 분위기가 확산되어 이들 사업에서 미국업체가 불리해지는 일을 막으려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단기적 이익만 생각하면 미국 기술을 기반으로 국산 무기를 개발한대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법률적 문제나 동맹의 신뢰를 놓고 보면 쉽게만 볼 일이 아닌 것 역시 사실이다. 오히려 문제는 수많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면서도 기술협력 조건을 충분히 얻어내지 못한 그간의 패턴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언제나 미국산 구입에 우선순위를 두는 바람에 ‘구매자의 지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함께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한미 양국이 봉합수순에 들어간 11월 21일, 한 일간지는 공교롭게도 국과연에서 미사일 개발업무에 종사한 바 있는 정동석 인하대 IT공과대학장의 글을 실었다. 2011년 여름과 가을, 한미 군사당국을 뜨겁게 달궜던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 음미할 가치가 있는 이 칼럼의 주요 대목을 옮긴다.
“중국은 비록 투박하지만 자체 제작한 실험장비를 갖고 우주선을 띄우고 대륙간탄도탄도 만든다. 한국의 기술개발이 다 자란 나무를 사다 옮겨 싣는 식이라면, 중국은 직접 씨를 뿌리거나 묘목을 키우는 식이다. 한국식은 결과는 빨리 나오지만 병이 들어도 고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중국식은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문제를 자체 해결할 능력을 키워준다. 국가안보에 관한 기술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발해 ‘우리 것’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