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가 점점 팍팍해진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기회복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각 기관은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느라 바쁘다. 월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물가만 자꾸 오르다 보니 대출을 받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경기가 둔화했고 주택 가격도 안정적인 상황이니 대출 증가세가 꺾여야 맞지만, 정부까지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섰음에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여전하다. 최근에는 특히 저소득층 가계에서 주택 구입 같은 고정비 성격의 대출보다 생계비 같은 경상지출을 위한 대출이 늘고 있다. 가계대출의 구조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과연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부실채권이 증가한 금융기관이 대출을 기피하는 등 거시경제에 충격을 미치는 상황을 정부는 먼저 걱정하는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금융기관이 파산할 정도로 가계부채 부실이 늘어난다면 그에 앞서 채무자, 즉 수많은 저소득층 가계의 대규모 파산이 먼저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 더 민감하게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정부는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가 거시경제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금리 인상보다는 개별 은행의 대출총량 규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일으킨 풍선효과로 제2금융권 대출이 증가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내신용 총액은 올 상반기에도 여전히 증가세를 기록했다. 풍선효과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대출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고, 특히 저소득·저신용 계층의 제2금융권 거래가 늘어나 가계의 재무건전성과 소비 여력을 점점 더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억제 정책 써도 가계부채 증가세
최근의 대출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9년 상반기까지 42.1%에 머물던 ‘주택 구입 이외’ 목적의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이후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해 2010년 상반기 44.2%까지 증가했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는 48.4%에 이를 정도. 과거에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 중 ‘더 큰 집’을 구입하려고 대출을 받는 사람의 비율이 높았으므로 해당 대출금이 비교적 안전한 주택이라는 자산으로 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절반 가까운 사람이 주택 구입과 상관없는 목적, 즉 사업 운영자금이나 생계비 조달 등을 위해 돈을 빌렸다. 부실화의 위험이 훨씬 커졌으리라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이런 경향은 저소득층에서 더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늘어난 가계대출 총액을 대출자의 소득수준별로 살펴보면, 연소득 2000만 원 미만 계층의 비중이 37%로 가장 높았고 6000만 원 이상 계층의 비중은 3%에 그쳤다. 이처럼 저소득층의 대출이 늘어난 것은 경기 둔화로 소득이 줄어든 데다 전세금이나 임대료 같은 각종 가계지출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1년 2분기까지의 가계수지 변화는 이런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소득보다 가계지출이 적어 18~20% 수준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소득 하위 1분위에 해당하는 계층은 소득보다 가계지출이 20% 이상 많았고,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지출이 소득을 35%나 초과했다. 결국 이와 같은 저소득층의 가계수지 적자 확대가 생계형 대출의 증가로 이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금 상환 능력이 부족해 은행 같은 제1금융권에서 새로운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일수록 대출만기나 거치기간 종료시점이 다가오면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다. 소득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높은 금리에 대한 부담은 가계의 대출 구조를 악화시켜 연체와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부채상환능력 취약 대출’의 만기 도래가 집중된 2012년에 대출부실 비율이 급증할 것을 우려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결과적으로 가계대출 구조의 악화와 이에 따른 부실 심화가 저소득층의 구매력 약화 및 소비 위축은 물론, 파산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반면 세간의 우려와 달리 은행 같은 제1금융권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계부채 총액이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많은 편이긴 해도 은행 연체율 수준은 0.7%에 불과해 미국의 우량대출 연체율(2% 내외)보다 훨씬 낮고, 그동안 은행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부실화 여파를 견뎌낼 만큼의 체력도 길렀기 때문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도 적잖은 구실을 했다. DTI 규제는 고소득 우량대출 채무자를 선별함으로써 대출 안전성을 높였고, LTV 규제는 대출 대비 담보의 가치를 높여 은행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더욱이 최근까지 DTI와 LTV가 미국, 일본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므로 향후 가계대출이 다소 부실해진다 해도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2금융권의 경우는 안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대출 부실화의 여파로 위험 프리미엄이 증가하면 제1금융권부터 고신용 계층에 대한 대출이나 담보대출 같은 안정적인 대출에만 집중하려는 쏠림 현상이 심해지게 마련이고, 이는 곧 저신용 계층이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대출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일부나마 이미 현실화해 최근 가계대출에서 비은행 예금기관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보다 가계 파산 우려가 먼저
다행히 저축은행을 제외한 제2금융권은 가계대출 부실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위험이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제2금융권의 대표격인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의 예대율은 은행보다 낮은 80% 이하로 유지되고, 대출 가운데 담보대출 비중이 높아 가계수지 악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는 한발 비켜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관리감독과 대비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가계대출의 질 악화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보다는 실물 부문에 미치는 영향에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가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 계층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원리금이나 소비를 위해 지출해야 하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월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이 지난 2분기 총소득과 소비에서 차지한 비중은 각각 6.2%와 10.2%였다. 2분위 계층 역시 13.1%와 15.7%로 소득비중이 소비비중보다 더 낮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계층의 경우 앞으로도 저축보다 대출이 증가해 파산을 신청하거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돌발변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거시경제와 금융기관의 안정성에 대한 관심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수 때문에 자칫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가계부실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대출구조 악화에 따른 원리금 부담 증가가 소비 위축과 경기회복세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먼저 신경 써야 할 쪽은 채권자가 아니라 채무자인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과연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부실채권이 증가한 금융기관이 대출을 기피하는 등 거시경제에 충격을 미치는 상황을 정부는 먼저 걱정하는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금융기관이 파산할 정도로 가계부채 부실이 늘어난다면 그에 앞서 채무자, 즉 수많은 저소득층 가계의 대규모 파산이 먼저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 더 민감하게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정부는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가 거시경제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금리 인상보다는 개별 은행의 대출총량 규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일으킨 풍선효과로 제2금융권 대출이 증가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내신용 총액은 올 상반기에도 여전히 증가세를 기록했다. 풍선효과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대출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고, 특히 저소득·저신용 계층의 제2금융권 거래가 늘어나 가계의 재무건전성과 소비 여력을 점점 더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억제 정책 써도 가계부채 증가세
최근의 대출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9년 상반기까지 42.1%에 머물던 ‘주택 구입 이외’ 목적의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이후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해 2010년 상반기 44.2%까지 증가했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는 48.4%에 이를 정도. 과거에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 중 ‘더 큰 집’을 구입하려고 대출을 받는 사람의 비율이 높았으므로 해당 대출금이 비교적 안전한 주택이라는 자산으로 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절반 가까운 사람이 주택 구입과 상관없는 목적, 즉 사업 운영자금이나 생계비 조달 등을 위해 돈을 빌렸다. 부실화의 위험이 훨씬 커졌으리라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이런 경향은 저소득층에서 더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늘어난 가계대출 총액을 대출자의 소득수준별로 살펴보면, 연소득 2000만 원 미만 계층의 비중이 37%로 가장 높았고 6000만 원 이상 계층의 비중은 3%에 그쳤다. 이처럼 저소득층의 대출이 늘어난 것은 경기 둔화로 소득이 줄어든 데다 전세금이나 임대료 같은 각종 가계지출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1년 2분기까지의 가계수지 변화는 이런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소득보다 가계지출이 적어 18~20% 수준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소득 하위 1분위에 해당하는 계층은 소득보다 가계지출이 20% 이상 많았고,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지출이 소득을 35%나 초과했다. 결국 이와 같은 저소득층의 가계수지 적자 확대가 생계형 대출의 증가로 이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금 상환 능력이 부족해 은행 같은 제1금융권에서 새로운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일수록 대출만기나 거치기간 종료시점이 다가오면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다. 소득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높은 금리에 대한 부담은 가계의 대출 구조를 악화시켜 연체와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부채상환능력 취약 대출’의 만기 도래가 집중된 2012년에 대출부실 비율이 급증할 것을 우려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결과적으로 가계대출 구조의 악화와 이에 따른 부실 심화가 저소득층의 구매력 약화 및 소비 위축은 물론, 파산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9월 21일 오후 영업정지 결정이 내려진 토마토저축은행의 경기 성남시 본점. 가지급금 대기표를 받으려고 전날부터 밤새울 각오를 하고 몰려든 예금자로 북적였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도 적잖은 구실을 했다. DTI 규제는 고소득 우량대출 채무자를 선별함으로써 대출 안전성을 높였고, LTV 규제는 대출 대비 담보의 가치를 높여 은행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더욱이 최근까지 DTI와 LTV가 미국, 일본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므로 향후 가계대출이 다소 부실해진다 해도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2금융권의 경우는 안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대출 부실화의 여파로 위험 프리미엄이 증가하면 제1금융권부터 고신용 계층에 대한 대출이나 담보대출 같은 안정적인 대출에만 집중하려는 쏠림 현상이 심해지게 마련이고, 이는 곧 저신용 계층이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대출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일부나마 이미 현실화해 최근 가계대출에서 비은행 예금기관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보다 가계 파산 우려가 먼저
다행히 저축은행을 제외한 제2금융권은 가계대출 부실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위험이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제2금융권의 대표격인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의 예대율은 은행보다 낮은 80% 이하로 유지되고, 대출 가운데 담보대출 비중이 높아 가계수지 악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는 한발 비켜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관리감독과 대비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가계대출의 질 악화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보다는 실물 부문에 미치는 영향에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가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 계층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원리금이나 소비를 위해 지출해야 하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월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이 지난 2분기 총소득과 소비에서 차지한 비중은 각각 6.2%와 10.2%였다. 2분위 계층 역시 13.1%와 15.7%로 소득비중이 소비비중보다 더 낮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계층의 경우 앞으로도 저축보다 대출이 증가해 파산을 신청하거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돌발변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거시경제와 금융기관의 안정성에 대한 관심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수 때문에 자칫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가계부실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대출구조 악화에 따른 원리금 부담 증가가 소비 위축과 경기회복세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먼저 신경 써야 할 쪽은 채권자가 아니라 채무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