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反日로 反北 세력을 누른다?

문재인 반일노선, 박근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9-01-21 11: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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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가을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한국은 일본 함정 측에 욱일기(일본 해군기)를 떼고 오라 해 일본 함정의 참가를 제한했다. [사진 제공 해군본부]

    지난가을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한국은 일본 함정 측에 욱일기(일본 해군기)를 떼고 오라 해 일본 함정의 참가를 제한했다. [사진 제공 해군본부]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이 거세던 2014년. 1980년부터 서울에서 생활해온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공주 콤플렉스와 함께 아버지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지만 박정희는 청년 시절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했고 1년간 일본 육사를 유학한 만주군 중위 출신이기에 박근혜는 일본을 멀리할 것이라 예측한 것이었다. 

    요즘 미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을 한 후 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으리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 단속적으로 했던 한일국교정상화협상은 박정희 정부 시절 급물살을 타, 1965년 양국은 평화협정에 해당하는 ‘기본조약’을 맺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5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받아 산업국가로 도약할 자금의 일부를 확보했다.

    폭탄 돌리기를 했던 역대 대통령

    그때 일본은 징용자에 대한 개별 보상을 주장했으나 한국은 한국 정부가 일괄 수령해 지급하겠다고 해 관철시켰다. 일제가 종군위안부를 운영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에 그들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보고, 신고를 받았는데 신고자가 없었다. 그리고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당시)의 노력으로 36년이 지난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1993년 정부가 ‘일제하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위안부 피해자 지원법)을 만들자 신고자는 더 늘어나 239명(2017년 기준)이 됐다. 

    그런데도 대통령들은 외면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고 일갈한 김영삼은 물론이고, 일본 대중문화 수입을 허용한 김대중, 자주노선을 고집한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은 한일기본조약 제2조 1항이 ‘재산·권리·이익 등 청구권에 관한 모든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돼 있다는 것만 의식해 일본 측에 ‘요구’를 하지 않았다. 국민을 대신하는 ‘공직자 임무’를 방기한 것인데, 이는 한일기본조약을 맺은 박정희에게 친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을 의식한 ‘폭탄 돌리기’이기도 했다.

    박근혜의 2중 플레이

    2015년에야 만난 박근혜와 아베(왼쪽). 일제의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고 개인 배상을 판결한 한국 대법원. [청와대사진기자단, 뉴스1]

    2015년에야 만난 박근혜와 아베(왼쪽). 일제의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고 개인 배상을 판결한 한국 대법원. [청와대사진기자단, 뉴스1]

    여성인 박근혜만 달랐다. 그는 세계적으로 종군위안부 여론을 일으키며 일본에 해결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주장하고자 난징대학살을 강조하던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 6·25전쟁 때 중국이 연 60만 명의 인민지원군을 투입해 전세를 역전시켰음에도, 중국군 열병식(전승절)에 참석했다. 이에 중국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수리한 것은 물론,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고 노무현 때부터 한국이 추진해온 한중 핫라인을 개설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피했던 박근혜는 한일기본조약 체결 50주년인 2015년 11월에야 한중일 정상회담 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났다. 주일 한국대사와 국가정보원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은 이병기와 외무성 차관을 거쳐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장국장을 맡은 야치 쇼타로로 하여금 비공개로 위안부 협상을 하게 한 후, 2015년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을 통해 그 결과를 발표하게 했다. 여기에 박근혜가 요구해온 사과가 들어 있었다. 

    이 합의문은 △제1조에 아베 총리는 많은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은 위안부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 △제2조에 일본은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한다 △제3조에 이 조치로 이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으니 국제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해 상호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중국을 활용해 일본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는 이 성과는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자 박근혜가 다섯 차례 이상 건 핫라인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받아주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박근혜가 한국과 주한미군 방위를 위해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허용하자, 중국은 박근혜가 2중 플레이를 해왔다 보고, 바로 박근혜와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그리고 촛불집회와 최순실 사건까지 일어나 박근혜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이에 대해 구로다 전 지국장은 일본 ‘문예춘추’에 ‘한국 보수파들은 박정희를 보고 박근혜를 뽑아줬는데,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른 식으로 애국하려 했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을 위해 노력한 것인데, 그들로부터 어떠한 찬사도 받지 못하고 탄핵됐다. 한국의 전통 보수 세력도 함께 붕괴됐다. 이는 유업 달성을 이유로 세습을 정당화해 정권 유지에 성공하는 북한 지도자와 다른 선택’이라는 요지의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지적도 했다. 

    ‘위안부 사례처럼 과거 한일관계는 항상 한국이 피해자였으나 지금은 반대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때 한국은 일본 함정 측에 욱일기(일본 해군기)를 떼고 오라 했고 일본은 불참했다. 한국 대법원은 징용과 관련해 한일기본조약과 다른 판결을 했다. 한국은 레이더 사건에 대해 조용하나, 일본은 왜 우방국이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를 겨눴느냐고 난리다. 위안부합의에 대해 조사했던 문재인 정부는 파기하거나 재협상할 수 없다고 해놓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통해 전시의 성폭력에 대한 국제회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금 일본은 피해자 의식에 싸여 있다.’ 

    대화퇴 어장에서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삼봉함이 구조하고 있는 북한 선박(오른쪽). [국방부 영상 캡처]

    대화퇴 어장에서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삼봉함이 구조하고 있는 북한 선박(오른쪽). [국방부 영상 캡처]

    납치 일본인 구명 운동가인 니시오카 쓰토무 씨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일본이 레이더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를 “그 배에는 시신 1구와 함께 세 사람이 있었는데, 한국은 사흘 뒤 판문점을 통해 시신과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일본의 의심은 그들이 김만철 씨처럼 탈북한 것인데,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의식해 바로 돌려보낸 것은 아니냐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보수 세력의 의심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백대현 통일부 대변인은 “그들은 탈북자가 아닌 어민이었고 돌아가기를 희망해 돌려보냈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이제는 일본이 피해자”

    일본의 진짜 불만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에 있다. 이 문제는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봐야 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근대를 ‘조약(條約)시대’로 본다. 1648년 유럽은 30년간 이어진 종교전쟁을 끝내면서 각국은 로마 교황으로부터 독립하고, 대소(大小)에 관계없이 주권을 가진 동등한 국가가 되기로 했다. 전쟁 결정권을 각국에게 준 것인데,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조약을 통해 타국과 관계를 ‘자주적’으로 맺으면 된다. 그런데 조약 가운데는 그 내용이 불평등한 것이 있다. 

    한미는 유사시 미군 대장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한미연합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한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라는 중요한 주권을 미국에 넘겨줌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북한의 위협을 막고 경제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인데, 이 위임은 미국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가 하자고 해 한 것이니 불평등 시비는 있을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대미(對美) 자주를 내세우며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다. 전작권을 환수한다면 북핵 문제는 한국이 해결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게 미루고 있다.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이 양국 정부의 조약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소련, 중국을 제외한 연합국과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평화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으로 한일병합조약이 실효됐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을 위한 협상에서도 배상금이란 이름으로는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해, 양국은 청구권 자금으로 타협을 했다. 일본은 ‘근대는 조약체제’라는 점을 내세워 성공한 것인데, 이를 한국 대법원이 깨뜨렸다. 

    한국 학계에서는 한일병합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달리 일본의 강요로 이뤄졌다 보고, 이를 입증하고자 노력해왔다. 한일합방에 앞서 1905년 대한제국은 외교권 등을 일본 측에 넘기는 보호조약을 맺었는데, 1907년 고종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냈다. 대한제국은 을사조약과 다른 행동을 한 것인데,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사례 등을 토대로 한일합방은 강압으로 이뤄진 것이니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을 해왔다.

    대법원은 이를 수용해 일본 기업은 징용된 개인에게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조약이라고 하는 국제법과 한국 대법원 판결이라는 국내법이 충돌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은 ‘국제법 우선’이다. 이는 국내법을 관철하려면 싸워서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에서 나왔다. 한국은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하는 것으로 대법원 판결을 집행할 수 있는데, 이에 일본이 맞불을 놓는다면 한일관계는 최악이 된다.

    널뛰기 하는 反北과 反日

    최근 한일 간 경제력 차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비율은 10 대 9 정도로 줄었고, 구매력평가(PPP)는 거의 대등하다. 그러한 한국이 일본을 무시하고 남북관계에 전념하는데, 그에 반대하는 한국 보수 세력은 와해 상태다. 이 때문에 일본은 2016년 중국처럼 한국 때리기에 나섰고, 문재인 정부는 일본 무시하기로 일본과 한국 보수 세력을 동시에 제압하고 있다. 반일(反日)을 내걸어 반북(反北) 세력을 누른 것이다. 

    반일과 반북은 널뛰기를 한다. 문제는 두 가지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양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해법을 찾지 못하면 위기가 왔을 때 약한 쪽이 당한다. 일본 때리기에 앞장섰던 김영삼 정부가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일본이 만기 연장을 거부함으로써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원로 언론인은 “아버지에 반대하는 세력을 지원했던 박근혜가 맥없이 무너졌듯이, 북한을 위한 세력도 덧없이 무너질 수 있다. 북한은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다시 점검하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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