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7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이 7·30 재·보궐선거(재보선) 승패 기준에 대해 묻자 ‘5석+α(알파)’를 제시했다. 새정치연합이 당초 차지했던 5곳만 이번 선거에서 되가져와도 선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호남 4곳에서 재보선을 치르는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수도권이나 충청권에서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안 대표의 발언이 알려지자 새정치연합은 술렁거렸다. 안 대표 발언에 대한 진위 파악이 있은 뒤 개별 의원의 의견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쏟아졌다. “대표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우원식 최고위원)는 비판부터 “7석 이상은 얻어야 승리라 볼 수 있다”(설훈 의원)는 목표 수정 의견까지 다양했다.
비주류 측은 “선거 승리를 지휘해야 할 지도부가 시작부터 패배주의에 빠졌다”며 못마땅한 반응을 나타냈다. 특히 안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가 7·30 재보선 이후 제기될 ‘지도부 책임론’을 조기에 차단하려고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다. 수도권의 한 비주류 의원은 “이번 재보선은 사실상 6·4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연장전이다. 실질적으로 당 지도부의 신임을 묻는 선거”라고 지적했다.
“야권에 유리하던 선거 판세를 납득할 수 없는 공천으로 현 지도부가 다 망쳐났다. 수도권은 물론 충청권까지 선거가 어려워지자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5석이란 최저 목표를 제시하고 이보다 한두 석이라도 더 얻으면 사실상 승리했다고 둘러대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주류는 안 대표를 엄호하고 나섰다. 주승용 사무총장은 “15곳 중 5곳 이상 승리하는 것이 목표”라며 힘을 보탰다. 비주류 측 주장과 달리 처음부터 새정치연합에게 유리했던 선거 판세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당 핵심 관계자는 “재보선 지역 15곳 중 9곳이 애초 새누리당이 차지했던 곳으로, 새누리당 세가 강한 곳에서 선거를 치른다”며 “재보선 특성상 가뜩이나 투표율이 낮은데 투표일이 여름휴가 정점에 있다는 점에서 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선거”라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 신임을 묻는 선거”
주류 측에선 앞으로 제대로 된 정치 혁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공동대표의 임기가 보장된 내년 3월까지는 현 체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미 안 대표는 7·30 재보선 이후 대대적인 당내 혁신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안 대표 측은 선거 전 호기롭게 높은 목표치를 내세웠다가 결과가 그에 미치지 못해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안 대표 측 관계자는 “그동안 큰 선거가 많아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치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다. 선거 책임론에 휩쓸려 안 대표가 조기 낙마하면 새정치연합은 또다시 ‘도로 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을 혁신하고 정치를 혁신할 수 있는 인물이 지금 당내에 누가 있나. 친노(친노무현)가 할 수 있느냐, 486이 할 수 있느냐. 결국 안 대표밖에 없다. 안 대표 처지에서도 조기 낙마하면 통합 이후 보여온 여러 시행착오를 만회할 기회를 잃게 된다. 선거 후 지도부 퇴진은 당과 안 대표 모두에게 손해다.”
7·30 재·보궐선거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 대권주자들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손학규 경기 수원병 후보, 박원순 서울시장(왼쪽부터).
실제 당 안팎에선 몇몇 당권주자가 조기 전대를 겨냥해 일찌감치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흘러나온다. A의원 측에서 캠프 사무실로 쓰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다닌다거나 B의원 측에서 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최근 호남에 당내 중진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진 것도 당원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호남에서 어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무너지더라도 단기간에 전대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현재의 단일지도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과거 집단체제로 돌아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뿐 아니라, ‘당권과 대권의 분리’ 조항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계파들이 룰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벌여 당이 내홍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권주자들 행보에도 큰 영향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
반면 친노 좌장인 문재인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특별한 소임을 맡지 않았고 공천 과정에서도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안 대표가 선거 결과의 직격탄을 맞을 경우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친노 일각에선 7·30 재보선 이후 당내 리더십 공백이 발생할 때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기 수원병(팔달)에 출마한 손학규 상임고문은 이번 선거가 정치 생명을 결정짓는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6·4 지방선거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새롭게 당내 대권주자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번 선거 패배는 당내 입지를 극도로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팔달에서뿐 아니라 수원을(권선), 수원정(영통) 등 수원벨트 3곳 가운데 최소 2곳은 이겨야 다음 행보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새누리당 강세지역인 김포에 출마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역시 생환 여부에 따라 다시금 대선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