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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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백’아, 에코는 어디 갔니?

환경과 생태보다 하나의 패션 트렌드…무조건 높은 가격 붙여 팔기도

  • 맹서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졸업

    입력2014-07-28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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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백’아, 에코는 어디 갔니?

    서울 가회동 한 공방에 전시된 에코백(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올해 초 배우 유아인이 한 패션 브랜드의 에코백을 직접 디자인해 화제를 모았다. 5월 중순 출시한 이 3만 원대의 에코백은 매장에 나오자마자 완판됐다. TV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서 여자 연예인이 들고 나왔다는 에코백도 품절 행진을 이어간다. 이들은 제품번호나 고유 명칭 대신 ‘이효리 에코백’ ‘김연아 에코백’처럼 해당 유명인 이름으로 불린다. 10만 원을 훌쩍 넘는 해외 브랜드 제품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는 게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른 생명 해치지 않는 천 가방

    지난해 10월 배우 공효진의 이른바 ‘공항패션’ 아이템으로 유명해진 스웨덴 패션 브랜드 A사의 가방 역시 소비자 사이에선 ‘공효진 에코백’으로 불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제품은 에코백이 아니다. 100% 이탈리아산(産) 양가죽으로 만든 70만 원대 명품 가죽가방일 뿐이다. 독일 브랜드 D사가 최근 출시한 에코백은 20만 원대. 이 제품 역시 재질은 천이지만 어깨끈은 소가죽으로 만들었다. 오직 캔버스로만 만든 일본 브랜드 M사의 에코백은 13만 원대다. 그 밖에도 국내 여러 브랜드가 판매하는 에코백도 대부분 4만 원이 넘는다.

    어느새 거리를 점령한 에코백 열풍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사실 ‘에코백 운동’은 1990년대 일회용 비닐봉지(plastic bag)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됐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한 번 물건을 담고 버리는 비닐봉지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소재로 만든 장바구니를 쓰자는 의도였다. 이름에 환경친화성을 강조하는 ‘에코(eco)’가 붙은 이유다. 물론 이 환경친화적 성격에는 동물 보호도 포함된다. 양이나 소, 심지어 특수피혁이라 부르는 악어, 뱀, 타조 등의 동물 가죽으로 만드는 제품과는 상극이다. 한마디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천 가방’이라는 뜻.

    눈여겨볼 것은 요즘 품절대란을 일으키는 에코백은 환경과 생태보다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서의 의미가 강하다는 사실이다.‘재사용 쇼핑백’(reusable shopping bag)에서 출발한 아이템이 패션업계로 넘어온 후 하나의 초대형 유행상품으로 자리 잡은 셈. 업계 관계자들은 에코백 유행의 시작으로 2007년 영국 디자이너 애냐 하인드마치를 꼽는다. 그가 디자인한 ‘I’m not a plastic bag’이라는 로고가 찍힌 천 가방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게 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사회혁신 컨설팅기업 MYSC의 권영진 수석컨설턴트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사각형 모양에 끈이 달린 천 가방을 에코백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재사용 장바구니가 아니라 패션 용도로 사용하는 천 가방을 분류하는 카테고리로 에코백이라는 말을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에코’의 의미가 무색해졌음은 물론이다.

    통상적으로 에코 제품은 그렇지 않은 제품보다 비싸다. 특히 재활용제품의 경우 거둬 모은 재료 가운데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을 선별하는 과정이 대부분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기계화가 어려워 가내수공업 방식의 작업을 거치다 보니 불량률도 높고 인건비 부담 때문에 단가를 낮추기도 어렵다. 에코 제품의 근원적 한계지만,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재활용제품은 가격이 다소 비싸도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점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온 게 사실이다.

    문제는 ‘에코’라는 단어를 무기 삼아 무조건 비싼 가격을 붙이고 보는 이른바 ‘에코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성의 없이 제작해 공산품으로도 매력 없는 제품을 환경마케팅으로 포장해 파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환경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김대호 씨는 “흰색 티에 초록색 잉크로 ‘green’이라 적어놓았다고 친환경제품일 수는 없다. 화석연료를 사용해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에코백이 어떻게 친환경적일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천으로 제작하는 100% 핸드메이드 에코백의 원가는 4000원. 화려한 색감의 디자인 무늬를 새겨넣는다 해도 5000원을 넘기 힘들다. 대학생 문채울(24) 씨와 유정완(24) 씨는 직접 에코백을 제작해 판매한다. 문씨는 “디자인도 촌스러운데 비싸기만한 브랜드 에코백 대신 세련되고 가격 부담도 없는 에코백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옥스퍼드나 광목, 캔버스 등 천 소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 쇼핑몰이나 서울 동대문 전문매장에서 마(100×90cm)당 3000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고. 대량으로 구매하면 값은 더 내려간다.

    ‘에코백’아, 에코는 어디 갔니?

    가격 부담이 적은 진짜 에코백을 제작, 판매하는 대학생 문채울 씨(왼쪽). 2012년 6월 한 국제구호단체가 개최한 청소년 자원봉사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에코백을 만들고 있다.

    실용성보다 브랜드 가치만 따져

    이들이 재료를 사다 재봉틀로 직접 만들 수 있는 에코백은 보통 하루 5개. 이렇게 제작한 에코백은 배송비를 포함해 1만5000원에 팔린다. 명품 브랜드 에코백의 2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지난해 영국 등 유럽 각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걸 봤다는 유정완 씨는 “언제 어느 장소에 들고 가도 센스 있어 보일 만큼 독특하고 예쁜 디자인이었지만 가격은 1파운드(약 1755원)도 안 됐다. 3파운드 안팎의 에코백이 대부분이고, 상점에서 파는 물건도 10파운드 이상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에코백 시장과는 전혀 다른 ‘진짜 에코백 열풍’이다.

    권영진 수석컨설턴트는 명품 브랜드들의 에코백 가격정책에 대해 “제작비를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평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에코백 본래의 의미나 실용성보다 브랜드 가치만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 의식이라는 게 그의 지적. 15만 원대 에코백을 구매한 한 소비자(ID sgenuisy)는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가격 대비 성능 10점 만점에 2점을 주겠다. 다음부터는 차라리 특이한 디자인에 가격도 적당한 에코백을 사겠다’는 의견을 남겼다. A사의 50만 원대 에코백을 구매한 또 다른 소비자 정은하(24) 씨는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일종의 ‘밴드웨건(bandwagon·따라 하기)’ 효과라고 생각한다. 비싸다고 성능이 뛰어나거나 재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진정한 에코백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에코백이라는 단어가 ‘의식 있는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동물을 덜 죽이고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환경친화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방’이라는 뜻으로 남기 바란다.” 어느새 패션 트렌드로 변모한 에코백 열풍에 대해 권 수석컨설턴트가 남긴 말이다.

    김대호 칼럼니스트는 “에코백이 진정한 의미를 되찾으려면 너무 많은 물건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소비 세태부터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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