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의 테라스와 함께 드레스덴 국립음대, 호프 교회, 젬퍼 오페라하우스까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는 일명 드레스덴 포토존.
구시가지를 뜻하는 알트슈타트(Altstadt)에서 시작한 여행은 음악·예술의 도시에 가득한 박물관과 극장을 만나고, 신도시 노이슈타트(Neustadt)에서 생동하는 젊은 드레스덴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영혼을 물들이는 엘베 강의 노을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글뤼바인(끓인 와인·뱅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추억을 간직하기 충분한 곳이 드레스덴이다.
알트슈타트에서 시작한 여행
드레스덴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다. 중앙역 앞 보행자 전용도로인 프라거 거리(Prager StraBe)로 가보자. 거리 양옆으로 쇼핑몰과 각종 상점이 늘어선 신시가지를 지나 이 거리가 끝나는 곳에서 중세의 드레스덴이 시작된다.
잠시 걷다 보면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우뚝 선 프라우엔 교회를 만난다. 이 교회는 북구의 피렌체라 부르는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1만t이 넘는 사암으로 만든 돔은 7년전쟁에서 프로이센 군대가 쏘아 올린 포탄 100여 발에도 무너지지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드레스덴 시민들이 11년간 헌신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 모습으로 재건축됐다. 교회가 파괴된 후 시민들은 언젠가 다시 지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폐허가 된 돌들을 모아 하나하나 번호를 매겨 보관했다. 그러다 독일 태생의 미국인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이 원래 모습을 떠올리며 1994년부터 재건을 시작했다. 그는 99년 노벨의학상으로 받은 상금을 모두 기부하면서까지 프라우엔 교회의 재건을 위해 헌신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시작한 복원운동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 알려져 여러 단체의 성금과 이곳을 찾은 여행자의 기부로 이어졌고, 그 결과 2005년 바로크의 보석이라 불리던 교회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시가지의 중심은 슐로스 광장이다. 거의 모든 볼거리가 모여 있어 그야말로 명소가 ‘압축된’ 곳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각 명소가 하나의 그림처럼 어우러진 풍경이다. 그 어울림은 드레스덴을 알리는 엽서마다 담겨 있다.
그곳에 자리 잡은 궁정 교회(Hofkirche·호프 교회)는 레지덴츠 궁전에 딸린 왕실 교회로, 1751년 아우구스트가 당시 개신교 세력이 커진 드레스덴을 다시 가톨릭화하려고 세운 것이다. 오늘날에도 작센 지역에 있는 가톨릭 교회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 대성당이라고도 부른다.
르네상스와 고전주의가 혼합된 젬퍼 오페라하우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등 당대 유명 음악가들의 공연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왼쪽). 시민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복구된 ‘바로크의 보석’ 프라우엔 교회.
교회 내부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조화를 이뤄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오르간 제작의 대가인 고트프리트 질베르만이 만든 오르간이 이곳을 찾은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열린다는 연주회가 방금 전 끝났다는 말을 듣고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오래전 엘베 강변에 드레스덴 구시가지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가 있었고, 이 요새의 중심이 레지덴츠 궁전이었다. 1701년 대화재로 성이 소실되자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크게 파손됐고, 아직도 복구가 진행 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녹색 돔이라 부르는 화려한 방들과 터키 오스만제국의 보물들을 수집해둔 터키의 방, 동전 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자리한다. 특히 탑에서 내려다보는 엘베 강과 드레스덴 전경이 아름답다.
세계적인 음악당인 젬퍼 오페라하우스는 아름다운 극장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1841년 당대 최고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가 완공했지만 1869년 화재로 소실됐고, 1878년 젬퍼가 재건축했다. 그러다 1945년 연합군 공습으로 건물이 파괴돼 85년 복구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등 당대 유명 작곡가의 음악이 공연된 곳이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대표작 ‘탄호이저’도 이곳에서 초연했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우리에겐 가수 비가 드레스덴 음악제 기간에 이곳에서 ‘아시아 팝, 유럽 클래식을 만나다’란 타이틀로 독일 출신 첼리스트 얀 포글러와 합동 공연을 펼친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젬퍼 오페라하우스는 지금도 매일 밤 수준 높은 공연이 열려 여행자들이 큰 기대를 갖고 찾는 곳이다. 극장 앞 광장에 서면 광장 중앙의 작센 왕 요한의 동상과 함께 츠빙거 궁전, 궁정 교회가 늘어선 중세의 독일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츠빙거 궁전은 아우구스트가 궁정 건축가 마테우스 다니엘 푀펠만에게 지시해 1722년 완공한 곳으로 ‘축제의 장소’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지금도 드레스덴 음악제를 비롯한 많은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드레스덴 구시가지의 중심인 슐로스 광장에는 궁정 교회를 비롯한 거의 모든 볼거리가 모여 있다(위). 101m 길이에 2만5000여 장의 마이센 자기 타일을 사용한 ‘군주들의 행렬’ 벽화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곳은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넓은 직사각형 사면에 건물을 대칭적으로 둘러 세우고 그 안을 정원으로 꾸몄다. 또 건물 옥상에도 바로크 양식의 조각과 연못을 만드는 등 건물 아래와 위가 모두 정원으로 채워진 궁전이다. 사면의 궁전 건물들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데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등의 회화 작품을 모아 둔 회화관과 중국, 동양 등지에서 수집한 도자기 박물관이 특히 인기다.
‘왕관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크로넨 문을 통해 올라가면 옥상정원을 만난다. 그곳에서 넓은 정원에 꾸며놓은 고풍스럽고 우아한 바로크식 조각과 분수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를 내려다보면 어느 궁에서도 누릴 수 없던 여유가 느껴진다.
슐로스 광장에서 이어지는 아우구스트 거리. 이곳에는 12세기부터 역대 왕들이 살던 궁전의 한쪽 벽에 ‘군주들의 행렬’이라는 제목의 벽화가 있다. 작센공국을 다스린 베틴 가문의 역대 군주들을 연대기 식으로 표현해놓은 것이다. 1876년 베틴 가문의 800주년을 기념해 처음에는 그림으로 그렸다가 이것이 손상되자 1907년 마이센의 자기 타일에 그림을 그려 벽에 박았다. 타일 2만5000여 장이 사용된, 101m 길이에 8m 높이의 이 벽화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벽화 속에는 역대 군주 35명과 함께 과학자, 예술가, 농부 등 59명이 함께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린 화가 빌헬름 발터도 행렬 가장 끝부분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림 속 행렬을 따라 인파에 밀려 걸어가다 보니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석양빛에 물든 엘베 강변과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드레스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