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제 이름값에 어울릴 만한 화려한 성공을 하겠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성공’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2014년은 ‘인터넷 국내 도입 20주년’인 해다. 초창기 학술 용도로 고안된 인터넷은 금세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들의 무대가 됐다. 한국에서도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을 비롯해 인터넷 벤처가 잇달아 탄생하며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도 1998년부터 2001년 무렵은 ‘벤처 황금기’로 기억된다.
표철민(29) 위자드웍스 대표는 바로 이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국내 벤처 1세대로 모바일 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도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는 중견 기업인이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은 ‘15년 차 기업인’이라는 이력에 잠시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실제 그는 국내 최연소 창업가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15세에 창업한 벤처 1세대
1999년 중학교 2학년이던 그는 한창 뜨겁던 인터넷 주소(도메인) 대행 및 판매 사업에 뛰어들어 ‘최연소 벤처사업가’로 데뷔했다. 당시 알아보기 쉬운 도메인은 수십억 원에 거래될 정도로 신기한 가상재화였다. 200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당시 도메인 사업을 벌이던 표 대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서울 윤중중 3년 표철민(15) 군이 사이버 공간에서 독도 주권 수호 운동을 펼치고 있는 ‘독도사랑동호회’에 최근 독도 관련 도메인(홈페이지 주소) ‘tokdo.co.kr’를 무상 기증했다. (중략) 그는 현재 인터넷 도메인 등록과 매매 경매 감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드림 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는 ‘10대 벤처 기업가’. 독도사랑동호회는 표군으로부터 기증받은 이 도메인을 이용해 독도 관련 홈페이지를 열었다.”
표 대표는 이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고 졸업 후 잠시 유명 컨설팅 회사에 몸담기도 했지만, 2006년 위자드웍스를 창업해 다시금 벤처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웹 2.0’ ‘위젯’ ‘소셜게임’ 등 신사업 개척에 나선 그를 언론은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저커버그’로 묘사하며 젊은 스타로 대우하기도 했다. 그 덕에 2009년 ‘비즈니스위크’ 선정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가 25인’, 2012년 ‘동아일보’ 선정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지나치게 어린 시절 창업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사업에는 큰 도움이 안 됐어요. ‘학생 창업자’ ‘학생 벤처사업가’를 아직 준비 안 된 애송이로 받아들이는 분이 많더군요.”
그는 국내 벤처업계에서 ‘창업’ 역사의 산증인이자 ‘청년 창업’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이제는 이런 타이틀이 적잖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스스로도 ‘소리만 요란했지 실제 성공 근처에서만 맴맴 돈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 표 대표는 수백억, 수천억 원대 ‘대박’ 사업을 일군 스타 최고경영자(CEO)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끈기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골라 갔지만 행운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기지 않은 것이다.
“때론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창업 관련 강연에서는 주로 제가 실패한 사례를 주제로 얘기합니다. 기왕이면 선배의 실패를 피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인터넷 산업은 복잡 미묘한 네트워크 기술과 새로운 수익모델이 결합하기 때문에 유행 변화가 빠른 편이다. 성공한 인터넷 사업가를 ‘천재’나 ‘구루’로 존경하는 이유도 기술과 사회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앞서 준비했음을 사회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보니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성공한 인터넷 벤처사업가는 공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업체 네이버(이해진)와 다음카카오(김범수, 이재웅), 게임기업 엔씨소프트(김택진)와 넥슨(김정주)을 비롯해 개인용 컴퓨터(PC) 및 모바일 업체는 대부분 컴퓨터공학과나 이공계 출신 CEO가 포진해 있다. 문과 출신은 전자상거래나 벤처투자자 쪽이 많다. 그런데 표 대표는 공대 출신이 아니면서도 우직하게 제품 및 서비스 개발로 승부를 건 독특한 CEO에 속한다. 현재 그는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웹 2.0 콘셉트인 위젯(widget)으로 개인화 포털 시장을 개척하고, 2010년에는 모바일 시대를 앞서 예견해 소셜게임 서비스에 도전하기도 했다. 위젯은 PC와 모바일 등에서 웹브라우저 없이 뉴스나 게임 등을 보고 즐기는 미니 응용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PC)과 애플리케이션(모바일·앱)의 중간 단계인 셈이다.
아기자기한 디자인 여성에 인기
그러나 표 대표의 위젯은 발 빠른 국내 포털사이트 업체의 대응과 모바일 시장의 급성장으로 위축됐고,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뛰어든 소셜게임은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2012년 ‘카카오 게임하기’가 출범하기 두 달 전 와해돼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한눈팔지 않고 제품 개발에 매진했다.
“2006년 이후 PC에 최적화한 위젯 서비스와 2010년 이후 만든 모바일 앱만 수백 종류입니다. 상거래나 부동산 투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세계적인 유틸리티 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2011년 그가 주목한 것은 ‘클라우드 노트’ 시장이다. 과거 PC 앞에서만 문서 작성을 하던 환경이 아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각종 모바일 기기로 문서를 다룰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사용자들은 에버노트와 구글 등 주로 글로벌 기업의 노트서비스를 사용했다. 편리했지만 비싸거나 사용이 어렵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제품이 클라우드 노트서비스인 ‘솜노트’다. 아시아 여성의 눈높이에 맞춰 쓰기 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한국을 넘어 일본과 여러 아시아 국가 여성에게 특히 인기를 끌어 현재 300만 명이 솜노트를 쓰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메모장’에 이은 2위 앱이지만 수치상 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3년간 솜노트에 매진한 표 대표는 “최근 모바일 게임을 제외하고 유틸리티 앱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돼 사용자가 크게 늘지 않는다”며 “완성도 높은 솜노트마저 세계적인 제품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창업 열기가 불면서 그를 찾는 후배도 부쩍 늘었다. 그런데 그는 “후배들에게 창업을 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토로한다. 15년 가까이 밤낮없이 일하며 관련 인재를 끌어모아 수차례 창업에 나섰지만, 자신이 꿈꾼 것들을 실제로 얻었는지에 대한 회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창업을 꿈꾸는 후배에게는 기왕이면 제 나이에 맞는 단계를 거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창업은 최대한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창업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예술의 끝이 어디인지 저도 아직은 실험 중이지만, 결국 그 목적지에 다다를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아직 젊은 사업가이니까요.”
2014년은 ‘인터넷 국내 도입 20주년’인 해다. 초창기 학술 용도로 고안된 인터넷은 금세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들의 무대가 됐다. 한국에서도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을 비롯해 인터넷 벤처가 잇달아 탄생하며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도 1998년부터 2001년 무렵은 ‘벤처 황금기’로 기억된다.
표철민(29) 위자드웍스 대표는 바로 이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국내 벤처 1세대로 모바일 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도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는 중견 기업인이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은 ‘15년 차 기업인’이라는 이력에 잠시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실제 그는 국내 최연소 창업가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15세에 창업한 벤처 1세대
1999년 중학교 2학년이던 그는 한창 뜨겁던 인터넷 주소(도메인) 대행 및 판매 사업에 뛰어들어 ‘최연소 벤처사업가’로 데뷔했다. 당시 알아보기 쉬운 도메인은 수십억 원에 거래될 정도로 신기한 가상재화였다. 200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당시 도메인 사업을 벌이던 표 대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서울 윤중중 3년 표철민(15) 군이 사이버 공간에서 독도 주권 수호 운동을 펼치고 있는 ‘독도사랑동호회’에 최근 독도 관련 도메인(홈페이지 주소) ‘tokdo.co.kr’를 무상 기증했다. (중략) 그는 현재 인터넷 도메인 등록과 매매 경매 감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드림 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는 ‘10대 벤처 기업가’. 독도사랑동호회는 표군으로부터 기증받은 이 도메인을 이용해 독도 관련 홈페이지를 열었다.”
표 대표는 이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고 졸업 후 잠시 유명 컨설팅 회사에 몸담기도 했지만, 2006년 위자드웍스를 창업해 다시금 벤처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웹 2.0’ ‘위젯’ ‘소셜게임’ 등 신사업 개척에 나선 그를 언론은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저커버그’로 묘사하며 젊은 스타로 대우하기도 했다. 그 덕에 2009년 ‘비즈니스위크’ 선정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가 25인’, 2012년 ‘동아일보’ 선정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지나치게 어린 시절 창업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사업에는 큰 도움이 안 됐어요. ‘학생 창업자’ ‘학생 벤처사업가’를 아직 준비 안 된 애송이로 받아들이는 분이 많더군요.”
그는 국내 벤처업계에서 ‘창업’ 역사의 산증인이자 ‘청년 창업’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이제는 이런 타이틀이 적잖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스스로도 ‘소리만 요란했지 실제 성공 근처에서만 맴맴 돈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 표 대표는 수백억, 수천억 원대 ‘대박’ 사업을 일군 스타 최고경영자(CEO)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끈기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골라 갔지만 행운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기지 않은 것이다.
“때론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창업 관련 강연에서는 주로 제가 실패한 사례를 주제로 얘기합니다. 기왕이면 선배의 실패를 피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인터넷 산업은 복잡 미묘한 네트워크 기술과 새로운 수익모델이 결합하기 때문에 유행 변화가 빠른 편이다. 성공한 인터넷 사업가를 ‘천재’나 ‘구루’로 존경하는 이유도 기술과 사회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앞서 준비했음을 사회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보니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성공한 인터넷 벤처사업가는 공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업체 네이버(이해진)와 다음카카오(김범수, 이재웅), 게임기업 엔씨소프트(김택진)와 넥슨(김정주)을 비롯해 개인용 컴퓨터(PC) 및 모바일 업체는 대부분 컴퓨터공학과나 이공계 출신 CEO가 포진해 있다. 문과 출신은 전자상거래나 벤처투자자 쪽이 많다. 그런데 표 대표는 공대 출신이 아니면서도 우직하게 제품 및 서비스 개발로 승부를 건 독특한 CEO에 속한다. 현재 그는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웹 2.0 콘셉트인 위젯(widget)으로 개인화 포털 시장을 개척하고, 2010년에는 모바일 시대를 앞서 예견해 소셜게임 서비스에 도전하기도 했다. 위젯은 PC와 모바일 등에서 웹브라우저 없이 뉴스나 게임 등을 보고 즐기는 미니 응용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PC)과 애플리케이션(모바일·앱)의 중간 단계인 셈이다.
아기자기한 디자인 여성에 인기
중학교 2학년이던 표철민 대표(왼쪽)가 도메인을 무상 기증한 독도사랑동호회 홈페이지.
“2006년 이후 PC에 최적화한 위젯 서비스와 2010년 이후 만든 모바일 앱만 수백 종류입니다. 상거래나 부동산 투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세계적인 유틸리티 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2011년 그가 주목한 것은 ‘클라우드 노트’ 시장이다. 과거 PC 앞에서만 문서 작성을 하던 환경이 아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각종 모바일 기기로 문서를 다룰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사용자들은 에버노트와 구글 등 주로 글로벌 기업의 노트서비스를 사용했다. 편리했지만 비싸거나 사용이 어렵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제품이 클라우드 노트서비스인 ‘솜노트’다. 아시아 여성의 눈높이에 맞춰 쓰기 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한국을 넘어 일본과 여러 아시아 국가 여성에게 특히 인기를 끌어 현재 300만 명이 솜노트를 쓰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메모장’에 이은 2위 앱이지만 수치상 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3년간 솜노트에 매진한 표 대표는 “최근 모바일 게임을 제외하고 유틸리티 앱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돼 사용자가 크게 늘지 않는다”며 “완성도 높은 솜노트마저 세계적인 제품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창업 열기가 불면서 그를 찾는 후배도 부쩍 늘었다. 그런데 그는 “후배들에게 창업을 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토로한다. 15년 가까이 밤낮없이 일하며 관련 인재를 끌어모아 수차례 창업에 나섰지만, 자신이 꿈꾼 것들을 실제로 얻었는지에 대한 회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창업을 꿈꾸는 후배에게는 기왕이면 제 나이에 맞는 단계를 거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창업은 최대한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창업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예술의 끝이 어디인지 저도 아직은 실험 중이지만, 결국 그 목적지에 다다를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아직 젊은 사업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