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공동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공동의장은 12월 들어 충청도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한나라당은 박의장이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충북 옥천 출신인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박의장은 12월6일 대전 시내를 돌았다. “시민들이 굉장히 반가워하더라”는 게 박의장 말이다. 대구-경북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최근 당 지도부에 전해졌다. 당장 박의장을 TK지역에 긴급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박의장은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남북문제, 정치개혁 문제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의장은 지난 5월11일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면담을 갖고 동해선 등 남북철도 연결사업 시행,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남북 축구대표팀 간의 친선경기, 금강산댐 공동조사 등에 합의했다. 이후 김위원장은 박의장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북한측은 김위원장 전용기를 박의장에게 보냈고 ‘로동신문’은 북한에 체류중인 박의장의 동정을 연일 따뜻하게 보도했다. 김위원장이 박의장에게 이례적인 신뢰감을 보였다는 게 대북문제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박의장은 “북한 핵 문제로 인해 남북한 긴장이 고조된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 이후보가 집권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이후보 집권시 내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김위원장과의 신뢰관계를 토대로 이후보의 대북 평화정책을 적극 돕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북한이 추진중인 철도 실크로드 사업은 러시아가 2000년 북한으로부터 남북한 철도연결 동의를 받아내면서 가시화됐다. 박의장은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북한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해 성사시킨 주역이었다. 박의장은 “이후보가 집권한다면 민족 공동번영을 위해 남북한 철도연결이 성사되도록 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러시아와 신뢰관계를 맺고 있는 박의장이 대북문제를 돕겠다고 나선 셈이다. 박의장을 ‘띄우면’ 이회창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한 개혁성향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기대다.
충청 등 중부권 누비며 득표 활동
이후보는 12월8일 오전 발표한 ‘정치개혁 7대 방안’에서 ‘정치개혁 국민위원회’를 구성해 정치개혁을 위한 실천방안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위원회의 구성은 한나라당 복당을 앞두고 이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박의장이 요구했던 사안이었다. 이후보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고 박의장은 복당 성명서에서도 이 부분을 명기했다. 이후보가 ‘정치개혁 7대 방안’을 발표한 8일 밤 박의장은 TV찬조연설에서 이후보의 정치개혁안의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면서 “이후보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이후보는 정치개혁안 발표로 대선 국면 전환을 시도했고, 박의장은 이후보에게서 바로 바통을 이어받아 효과 극대화에 나선 것이다. 박의장의 이날 찬조연설은 방영 하루 전인 7일 녹화됐다. 이후보측은 정치개혁안 발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박의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미리 세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박의장은 “총리를 맡을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의장은 “내가 이후보에게 요구한 정치개혁 국민위원회에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것이 좋으며 정치권 외부의 명망 있는 인사들을 다수 참여시킨 뒤 위원회에서 내놓은 개혁안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대통령이 보장한다는 등 구체적 사안도 제시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박의장은 개혁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이후보의 감표 요인이 될 수 있는 남북관계, 정치개혁 문제에 있어서 보완재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
12월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자택으로 난 화분과 케이크 하나가 배달됐다. 상존하는 대선 최대의 변수인 노풍(盧風)과 정풍(鄭風)의 연대를 기원하는 노무현 후보의 생일선물이었다. 그래서일까. 노-정 연대가 가시권에 들었다. 국민통합21 김행 대변인도 “원칙은 합의, 각론은 이견”이라고 말한다. 민주당도 “정책 합의문 작성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대표의 지원 유세가 대세를 가르는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9회말 구원투수라는 인식이다. 민주당은 이미 두 인사의 포장마차 러브샷 사진을 광고에 싣고 있다. 부동층 속에 숨어 있는 ‘1인치 유권자’를 찾자는 의도다. 민주당은 정대표 지원 유세에 초·재선급 민주당 의원 3, 4명을 선정, 수행조로 배려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50대 투톱의 새로운 정치’라는 메시지가 낡은 정치 청산과 세대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이 정대표에게 기대하는 것은 전략 요충지인 부산·경남(PK)과 충청의 표심을 잡아 노후보의 상승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 기획본부 한 관계자는 “정대표가 가세하면 유권자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후보 지지표에 정대표 지지표가 모두 흡수됐다고 말하지만 노-정풍이 결합할 경우 3~4% 정도의 시너지가 더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거전문가들은 “역대 선거에 늘 있었던 30% 가량의 부동층이 정대표에게 갔다가 다시 부동층으로 이동했다며 노-정풍이 이들을 견인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대표는 12월 초부터 많은 고민을 했다. 한 측근은 “정대표가 흔쾌하게 (지원 유세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의 준비과정 등에 대해 요즘도 아쉬움을 토로한다는 것. 통합21측은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작업을 맡았던 여론조사기관에 전화를 걸어 “여론조사 데이터를 달라”며 검증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끝난 싸움이지만 남는 미련을 어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통합21 내부의 설명이다. 요즘 정대표는 ‘현대 패밀리’로부터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인들 대다수도 ‘대선 중립’을 요구한다고 한다. 김대변인은 “사람 만나기를 꺼려할 정도”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일부 측근들은 공조의 조건으로 ‘지분’을 내걸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못마땅했던 정대표는 12월6일 “일부 언론이 나를 총리후보로 거론하는데 해명 논평을 내라”고 김대변인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언론에 등장할수록 좋은 것”이라며 이를 만류했다.
부동층 속 ‘1인치 유권자’ 찾기
정책과 노선에 있어서의 노후보와의 차이점도 정대표로서는 괴로운 부분. 대북정책과 경제문제 등에 대해 ‘눈높이’를 맞추자고 제의했지만 내부에서는 “본질이 다른데 좌우로 한발씩 물러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비아냥거림도 터져 나온다. 한나라당은 이런 양자의 다른 색깔을 물고 늘어질 기세다. 재벌 지향적인 정대표와 급진적인 노후보의 이미지는 물과 기름이라고 평가한다. 정대표가 8일 “물과 기름이 합쳐지면 폭발적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하자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물과 기름을 섞으면 가짜 휘발유가 될 뿐”이라고 빈정거렸다. 한나라당은 노-정의 시너지는 이미 피크타임을 지났다고 보고 있다. 이제 역풍이 불 차례라고 말한다. 노-정 단일화는 권력 나눠 먹기라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정책과 이념이 전혀 다른 노-정 단일화는 5년 전 DJP 연대의 재판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킬 방침이다. 국정 협력 또는 공동정부 구성 등은 권력 나눠 먹기임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정대표가 움직이면 한나라당 지지층 내부에 위기감이 고조된다. 이는 이후보 지지표가 응집하는 현상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노후보의 대리전사로 나선 정대표의 ‘힘’이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