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7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취화선’의 시사회 팸플릿
11월27일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프랑스 전역 40여개 극장에서 개봉됐다. ‘취화선’ 개봉에 맞춰 프랑스 주요 신문과 방송, 잡지 등은 한꺼번에 임감독의 영화 인생과 ‘취화선’의 작품세계를 크게 다룬 기사를 쏟아냈다.
특히 르몽드는 문화면은 물론이고 1면까지 할애해 임감독과 ‘취화선’을 극찬했다. “국산영화 쿼터나 채우려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던 임감독이 98번째 작품이자 칸 영화제 수상작인 ‘취화선’에서 화가 오원 장승업의 생애를 통해 마음껏 창작의 자유를 구가했다.”
프랑스 최고의 권위지이자 유럽 정상의 신문인 르몽드에 한국 예술가, 아니 한국 관련 기사가 1면에 실리는 것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먼 탓이겠지만, 어쩌다 눈에 띄는 기사도 씁쓸한 내용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르몽드 11월18일자는 프랑스와 미국이 한국 인공위성 제작사 결정을 둘러싸고 불꽃 튀는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한 뒤 “한국은 아무나 사냥할 수 없는 사냥터”라고 꼬집었다.
할리우드에 맞서는 ‘문화 게릴라’
“한국 최초의 군사위성인 무궁화 5호 위성의 수주를 위한 프랑스 알카텔, 미국 록히드 마틴, 영국 독일 프랑스 합작사인 아스트리엄 3사의 경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러나 각각 2억 달러(약 2400억원)에 달하는 무궁화 위성의 위성체와 발사체의 수주는 기술상의 문제에만 달려 있지 않다. 한국에서의 군수산업은 한국전이 끝난 이래 특권을 누리는 파트너 국가 미국이 도맡아놓은 분야다. 한국은 아무나 사냥할 수 없는 사냥터다.”
서울에서는 반미 시위가 벌어져도 한국은 좋게 말하면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나라, 나쁘게 말하면 속국 수준이라는 게 프랑스 언론의 일반적 시각이다. 그런 시각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정치적 고려’로 프랑스의 라팔 기종이 미국의 F-15기에 밀려 탈락한 이후 더욱 강해졌다.
프랑스 언론이 임감독을 대서특필한 저변에는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문화 게릴라’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미국에 맞서 정치 문화적 독자성을 지키려는 프랑스인의 시각이 임권택을 보는 눈에도 투사됐다고나 할까.
임감독의 영향 때문인지 르몽드는 부산국제영화제 르포의 제목을 “프랑스와 한국은 미국에 맞서 문화적 예외성을 수호한다”고 뽑아 한국과의 연대의식까지 드러냈다. 손우현 주 프랑스 한국 문화원장은 “임감독이 프랑스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프랑스제=고급품’이라는 장삿속으로 연결시켜 톡톡히 재미를 보는 나라다. 유럽에서도 ‘Made in France’ 딱지만 붙으면 가격이 두 배로 뛰는 물건이 많다. 그런 프랑스에서의 ‘임권택 바람’은 여러 가지를 생각케 했다.
‘예술가 한 사람이 국가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예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예술가와 예술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