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를 살펴보면 주중대사관이 얼마나 교민 보호와 거리가 멀었는지 좀더 확연해진다. 먼저 현재 베이징대 법대 4학년에 재학중인 김모씨의 경우다. 여고 때부터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닌 김씨는 지난 1999년 봄 역시 중국 유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도중 택시 강도를 당했다. 그나마 여성으로서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 김씨는 일단 놀란 가슴을 달래고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답은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는, 다소 귀찮아하는 투의 대답뿐이었다.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신고한 지 정확히 10분 만에 7대의 차량을 출동시킨 중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대사관의 무성의에 한 번, 중국 경찰의 책임감에 한 번, 모두 두 번 울었다고 한다.

현재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40대 초반의 김모씨 사례도 교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는 4년 전 중국 고위층 자제가 소유한 최고급 승용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냈다. 괘씸죄까지 더해진 그에 대한 처벌은 구속 수사 후 3년 징역. 그가 이 과정에서 대사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은 물어보나마나 한 일이다. 김씨의 아내가 당시 “공관원들이 면회 한번 와달라는 요청까지 거절했다”면서 울고 다닌 일화는 지금도 교민 사회에서 잊히지 않고 있다.
이 밖에 대사관 본연의 업무라 해도 좋을 교민 보호와 무관한 피해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요즘도 하루 최소 3∼4명 정도의 교민이 베이징 싼리툰(三里屯)의 대사관이나 영사부 정문 앞에서 외교관이나 영사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수위와 실랑이 벌이는 광경이 목격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교민들은 말썽 많은 ‘트러블 메이커’이므로 만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공관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어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보호받기 위한 첫번째 조건인 접근조차 아예 안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교민들이 최근 한결같이 “대사관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아야 하지만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대사관 무용론까지 주장하는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