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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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전쟁 1라운드 빈 라덴 ‘판정승’

美 CIA 공작금 날리고 그림자만 쫓아 … 파키스탄 ISI 협조도 미적지근

  • < 김문혁 / 테러리즘 전문기자 > aporiak@hotmail.com

    입력2004-11-19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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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전쟁 1라운드 빈 라덴 ‘판정승’
    미 중앙정보국(CIA)과 오사마 빈 라덴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정보전쟁이 한창이다. CIA가 미국 9·11 테러사건의 총연출자로 꼽는 빈 라덴의 체포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정보전쟁이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빈 라덴의 생존경기’(survival gam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지금까지는 빈 라덴이 이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보인다.

    CIA는 지금까지 빈 라덴의 그림자만 쫓는 형국이다. 달러 뭉치를 안기며 빈 라덴 사살을 꾀하려 잠입시킨 압둘 하크 장군도 지난 10월 말 탈레반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하크는 반(反)탈레반 세력의 용장으로 꼽혔다. 그런 하크가 죽었다는 소식에 CIA를 도와 한밑천 잡을 생각을 한 지원자들도 주춤한다는 소식이다. 오늘의 빈 라덴을 미 CIA가 키웠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양자의 연결고리는 파키스탄 정보부 ISI다. 빈 라덴과 오랫동안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ISI로선 CIA를 돕기가 껄끄럽다. CIA의 ‘더러운 전쟁’이 잘 풀리지 않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지난 9월 조시 W. 부시 미 대통령은 한 문서에 서명했다. 이름하여 CIA의 ‘더러운 전쟁’을 공식화한 문서다. 부시 대통령은 CIA의 비밀작전 수행을 위해 10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 예산은 빈 라덴 사살을 위해 아프간 현지에 투입되는 특수부대와 현지 정보원 고용, 탈레반 내부 이탈자 매수 관리 등 비밀공작을 위해 쓸 몫이었다.

    그러나 CIA의 첫 작품이라 할 압둘 하크 장군 잠입공작이 실패함에 따라 그의 배낭에 가득 들려보낸 달러 뭉치만 날렸다. 그 돈은 현지인 매수에 쓸 공작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CIA는 초조하다. 부시 대통령은 조지 테닛 CIA 국장 경질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흘러나온다. 테닛 국장으로선 부시의 말대로 ‘죽이든 생포하든’ 빈 라덴을 처리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이다.

    CIA가 믿을 곳은 파키스탄 정보부인 ISI다. ISI는 빈 라덴과의 오랜 거래관계로 그에 관한 한 지구상의 어느 나라 정보기관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반 파키스탄 민중의 반미·친(親)라덴 정서를 반영하듯, ISI의 협조는 뜨뜻미지근하다. 군정 실력자인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서슬 푸른 독촉에 CIA를 돕는 흉내만 내는 모습이다. 하크 장군이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아프간으로 잠입했다는 정보를 흘린 것도 ISI라는 설이 유력하다. 9·11 테러사건 훨씬 전부터 ISI 내부에 빈 라덴이 심어놓은 정보원이 빈 라덴과 탈레반 정보당국에 흘렸을 것이란 의혹이다.



    ISI와 빈 라덴의 관계는 아프간 내전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1979년 아프간 내전 초기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손잡고 아프간 내전에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을 지원했다. 사우디는 돈을 대고 파키스탄은 이들을 훈련시키는 협조관계였다. 아울러 많은 사우디 젊은이들이 무자헤딘으로 자원했다. 아메드 라시드의 책 ‘탈레반’(상자기사 참조)에 따르면 ISI는 사우디의 정보기관 이스타크바라트(Istakhbarat) 책임자 투르키 빈 파이잘 왕자에게 “사우디 왕조의 귀족 가운데 누군가가 아프간 지하드(성전)에 직접 나서서 아프간의 사우디 출신자들을 이끌어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사우디 왕족이 나서서 이슬람 지하드를 이끌어간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파이잘 왕자가 왕족 대신 내세운 인물이 빈 라덴이었다. 왕족은 아니지만, 빈 라덴 집안은 사우디 왕가와 밀접한 사이였다. 빈 라덴 가문은 사우디 건설업을 주무르는 명문가였다. 따라서 빈 라덴은 사우디 왕족에 버금가는 상징성이 있었다. 빈 라덴이 80년 처음 파키스탄에 발을 디딘 것은 이렇듯 사우디-파키스탄 두 정보기관의 주선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96년 빈 라덴이 미 정부의 압력으로 아프리카 수단을 떠나 아프간으로 근거지를 옮길 때 도움을 준 것도 ISI다. 그때 ISI는 아프간 칸다하르의 탈레반 정권 실력자들에게 빈 라덴을 소개해 주었다(ISI는 지난 94년 탈레반이 파키스탄에서 조직될 때부터 적극 뒤를 밀어주었다). 그 반대급부로 ISI는 빈 라덴이 연고권을 가진 파키스탄 접경 코스트 훈련기지를 카슈미르(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오랜 분쟁지역) 게릴라 훈련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다.

    CIA가 80년대 아프간전에 개입해 빈 라덴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알려진 바다. 물론 빈 라덴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CIA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빈 라덴이 서방 기자들과 했던 인터뷰를 비롯한 여러 경로를 통해 양자 사이의 접촉은 사실로 확인된다. 카터 대통령 시절 CIA 국장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그의 회고록 ‘그림자들로부터’(From The Shadows)에서 CIA가 아프간 무자헤딘을 돕기 시작한 것은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기 6개월 전인 79년 여름부터라고 밝히고 있다. CIA가 아프간 내전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86년부터다. 79년부터 내전이 시작됐으니 한참 뒤의 일이다. 당시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는 미 의회를 설득해 미제 스팅어 미사일을 아프간 무자헤딘들에게 제공해 소련 항공기를 격추하도록 했다. CIA는 ISI와 함께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아프간전 참전 지원자들을 파키스탄에 모아 훈련시킨 다음 아프간 전선에 내보내는 공작을 함께 폈다.

    82년부터 대략 10년 동안 아프간 내전에 참전한 아랍 지원자는 3만5000명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빈 라덴이다. 86년 빈 라덴이 코스트 터널이라 알려진,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에 대규모 무기저장소 건설공사를 지휘할 때 CIA는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곳에 저장될 무기들은 CIA가 원조한 미국산 최신 무기들이었다. 빈 라덴은 그곳에 자신의 훈련 캠프를 설치했고 CIA측 주선으로 파견된 특수요원들이 아랍 각국에서 몰려든 무자헤딘들의 군사훈련을 맡았다. 이를 바탕으로 빈 라덴이 자신의 직할조직인 알 카에다(근거지)를 결성한 것은 89년의 일이다. 이런저런 배경으로 미뤄볼 때 빈 라덴은 CIA 요원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ISI에 심어놓은 정보원을 통해 미 CIA의 움직임을 보고받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오늘의 빈 라덴을 키운 것은 CIA다”고 입을 모은다. ‘빈 라덴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9·11 테러사건 뒤 미 정치학계 관련 세미나가 열리면, 미국의 근시안적인 대(對)아프간 정책이 도마에 오르기 일쑤다. 장기적인 전망에서 빈 라덴이 미국을 향해 비수를 들이댈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냉전시대 흑백논리에 따라, 무자헤딘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대소(對蘇) 항쟁에 활용한 까닭에 오늘 같은 화(禍)를 불러온 씨앗을 뿌리고 키웠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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