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에 게시한 사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서 대형 성조기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합성한 것이다. 트루스소셜 캡처
미국 역사상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포크 전 대통령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이념의 신봉자였다.
트럼프의 ‘명백한 운명’?
이 이념은 미국이 대륙 전체로의 영토 확장을 ‘신이 내려준 사명’으로 정당화하며 추진한 팽창주의를 뜻한다. 포크 전 대통령은 이에 따라 텍사스와 합병해 미국 영토로 만들었고, 멕시코와 전쟁도 벌여 캘리포니아·애리조나·네바다·유타·뉴멕시코 등도 차지했다. 영국과 협상해 오리건·워싱턴·아이다호·몬태나 등도 미국 영토로 만들었다. 포크 전 대통령은 4년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에 미국 영토를 기존의 2배인 110만 제곱마일(약 286만㎢)이나 확장했다. 포크 전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미국 영토를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연결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만들려는 야심을 보이는 이유도 포크 전 대통령이 강조한 ‘명백한 운명’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이하 현지 시간) 2기 취임사에서 “미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지평선을 향해 성조기를 들 것”이라면서 “화성에 우주비행사를 보낼 것이고 별을 향해 우리의 ‘명백한 운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팽창주의 어젠다를 제시하면서 역사적으로 미국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문구를 언급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명백한 운명’을 미국의 화성 탐사와 함께 말했지만 실제로 이 문구는 그린란드, 캐나다, 파나마 운하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에 대한 집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집권 1기 시절인 2019년 8월 초 그린란드 매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터무니없다면서 일축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9월로 예정된 덴마크 국빈 방문을 전격 취소해버렸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1월 17일 열린 트럼프 대통령 반대 시위. 뉴시스
‘골든 돔’은 명분일 뿐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그린란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와 달리 그린란드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9일 백악관에서 미국 석유회사 대표들과 함께 베네수엘라 석유 인프라 투자 문제를 논의한 간담회에서 “미국이 그린란드를 확보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나 중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할 것”이라며 “만약 쉬운 방법으로 할 수 없다면 어려운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군사 행동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 협상이나 매입을 검토했다면 이번에는 안보 논리를 앞세워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그 이유는 그린란드가 모스크바~워싱턴DC 직선 경로의 중간 지점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해상 전진 기지가 자리한 전략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경우 그린란드 상공을 통과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차세대 미사일 방공망인 ‘골든 돔’을 그린란드에 배치해야 러시아·중국의 미국 본토 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1년 옛 소련 견제를 위해 덴마크와 ‘그린란드 방위협정’을 체결했고, 이 협정에 따라 현재도 그린란드 북서쪽에 피투피크 우주기지(옛 툴레 공군기지)를 두고 있다.
이 기지는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북쪽으로 1500㎞, 북극 한계선에서 1207㎞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미군 150여 명이 배치된 이 기지는 레이더로 미사일 조기 경보와 우주 감시를 담당하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 시설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기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말인 2029년 1월까지 1750억 달러(약 249조5000억 원)를 들여 구축하겠다는 골든 돔의 핵심 시설이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공체계인 아이언 돔과 유사한 골든 돔은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미국 전역을 방어하고자 관측·추적용 인공위성 400∼1000기와 공격용 인공위성 200기를 띄우겠다는 구상을 가리킨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든 돔을 완성하는 데 그린란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각도와 범위 등을 고려할 때 그린란드가 포함돼야만 골든 돔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골든 돔 구축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린란드를 사실상 자국 영토로 만들려는 ‘교묘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6일 북극 안보 훈련을 위해 그린란드에 군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8개국에 2월 1일부터 10%, 6월 1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를 무력으로 병합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도 철회했다. 이는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을 ‘겁박’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키프로스 내 영국 영토 아크로티리 기지에서 2024년 1월 22일 영국 전투기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제공
영국‐키프로스 모델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은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에서 그린란드 미래에 대한 ‘기본 틀(framework)’에 합의했다. 그 내용을 보면 그린란드에 설치하는 △미군기지들에 대해 미국이 주권을 행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잠재적 적국이 그린란드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채굴하는 것을 차단하며 △북극에서 나토군 존재를 강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이런 내용을 볼 때 이 합의는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상 상당한 영토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기본 틀’은 미국과 덴마크가 1951년 맺은 그린란드 방위협정에서 크게 진전된 것이다. 그린란드 방위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그린란드 내에 사실상 원하는 대로 미군기지를 설치할 수 있지만, 기지에 대한 영토 주권은 여전히 덴마크에 있다.트럼프 대통령과 뤼터 사무총장이 동의한 ‘기본 틀’은 영국과 키프로스가 과거 합의한 모델을 본뜬 것이다. 영국은 1960년 식민지였던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를 독립시키면서 이 섬에 설치한 영국 공군과 육군기지에 대한 주권은 자국에 속하도록 하는 내용의 ‘주권기지’(Sovereign Base Areas·SBA) 협정을 키프로스와 맺었다. 영국은 이 협정에 따라 이 섬 남서부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와 남동부 데켈리아 육군기지를 각각 소유·운영하고 있다. 두 기지 면적은 259㎢로 서울 면적의 42%다. 두 기지에선 영국 법률만 적용되며, 키프로스나 유럽연합(EU)에 속하지 않는다. 두 기지는 버뮤다, 포클랜드 제도 같은 영국의 해외 영토라고 볼 수 있다.
서방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부터 이 모델을 염두에 두고 골든 돔 구축과 북극 안보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그린란드 확보를 주장한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대한 전면적인 접근권(total access)을 영구히 확보하되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스타스 콘스탄티누 키프로스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미국이 그린란드 전체를 장악하면 행정·정치·사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비용을 피하면서도 일부 영토를 완전히 미국 통제하에 둘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주권기지 지역’은 현재 치외법권만 인정되는 대사관 부지보다도 더욱 강력하다. 국제법적으로 군대를 배치한 파견국(이 경우 미국)의 영토가 되며, 주둔국(그린란드나 덴마크)의 주권은 배제된다. 말 그대로 미국의 해외 영토인 셈이다. 주권기지 지역은 미국이 그린란드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고 희토류 등 북극 광물자원을 개발하는 발판도 될 수 있다.

그린란드에 있는 미군 피투피크 우주기지의 레이더 돔. 미국 우주군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