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낭만적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재이의 여행블루스] 중심엔 나폴레옹이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6-02-01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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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GETTYIMAGES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GETTYIMAGES

    잔잔한 아드리아해 물결 위에 떠 있는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길 대신 운하가 흐르고, 자동차 대신 배가 오가는 이곳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놓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도시 전체가 물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도시를 방문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베네치아를 조금만 걸어도 이 도시가 왜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를 붙잡았는지 금세 알게 된다. 

    베네치아로 가는 길은 언제나 특별하다. 기차를 타고 산타루치아역에 내리면 역 앞에 펼쳐진 대운하가 여행자를 맞는다. 운하 위로 반사되는 햇빛과 낡은 건물의 파스텔빛 외벽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그 순간, 여행자는 땅에서 내려 물 위로 건너온 존재가 된다. 이 도시는 처음부터 발보다 눈과 마음을 먼저 움직인다. 천천히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이미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길을 잃는 순간 시작되는 여행

    베네치아 중심은 단연 산마르코 광장이다. 나폴레옹(1769~1821)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던 이 광장은 지금도 그 이름에 걸맞은 풍경을 지니고 있다. 비둘기들이 광장을 가로지르고, 대리석 바닥 위로 사람들 발걸음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광장 옆 산마르코 대성당의 황금빛 모자이크는 햇살을 머금은 채 빛나며, 동방과 서방의 시간이 이곳에서 조용히 포개진다. 

    종탑에 오르면 붉은 지붕과 수로가 얽힌 베네치아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라기보다 정교하게 짜인 한 장의 지도, 혹은 오래된 기억의 단면처럼 보인다. 광장을 벗어나면 베네치아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골목은 갑자기 좁아지고, 길은 예고 없이 끊긴다. 방향 감각은 무력해지고, 여행자는 자연스레 길을 잃는다. 

    그러나 이 도시의 진정한 여행은 그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이름 모를 광장이 나타나고, 그 옆에는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로컬 카페와 술집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두고 신문을 읽는 노인의 모습, 창가에 걸린 화분과 빨래들. 베네치아는 화려한 관광지이면서도 누군가의 하루가 이어지는 생활의 도시라는 것이 더욱 찬란하게 다가온다. 



    대운하를 따라 이동하는 수상버스 바포레토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보편화된 교통수단이다. 물살을 가르며 이동하는 동안 궁전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연속해서 지나간다. 한때 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공화국의 흔적이다. 물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옆모습은 정면보다 솔직하다. 벗겨진 벽면과 오래된 창틀, 그 사이로 이어지는 고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가 기울 무렵, 아카데미아 다리에 서면 대운하가 천천히 색을 바꾼다. 낮의 소란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수면에는 저녁의 침묵이 내려앉는다. 곤돌라는 더 느린 속도로 운하를 가로지르며, 물결은 낮보다 깊은 색을 띤다. 이 도시는 밤이 되면 더 고요해진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골목에는 주민들의 발소리만 남고, 베네치아는 다시 자신만의 호흡을 되찾는다.

                                                            베네치아의 수상버스 바포레토. GETTYIMAGES

    베네치아의 수상버스 바포레토. GETTYIMAGES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베네치아는 화려한 축제 도시이기도 하다. 해마다 1~2월에 열리는 베네치아 카니발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익명의 시간을 살아가고, 현실의 경계는 잠시 흐려진다. 그러다 축제가 끝나면 도시는 다시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베네치아 음식은 의외로 화려하지 않다. 물 위에 세워진 도시답게 해산물이 중심이다. 시장이 서는 리알토 다리 주변에는 새벽에 잡아 올린 생선들이 진열되고, 상인들 목소리가 물안개 사이로 퍼진다. 술과 간단한 안주를 파는 선술집 오스테리아에서 맛보는 치케티와 와인 한 잔은 하루를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또 소박한 접시에 담긴 정어리와 문어, 그리고 올리브오일. 짠맛과 기름기, 물 냄새가 섞인 이 도시의 맛은 과하지 않아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곳을 걷다 보면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처럼 돌고, 머물고, 다시 되돌아온다. 베네치아 건물과 운하, 사람들의 삶은 그 순환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여행자는 그 흐름에 잠시 몸을 맡길 뿐이다.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는 하나의 의미나 해답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욕망·두려움·시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했다. 베네치아가 바로 그런 도시다. 무엇을 봤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물 위에 쌓인 시간 속에서 여행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나왔는가. 그 질문은 베네치아를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언젠가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오게 만드는 잔잔한 파문이 된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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