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주말 호주에서는 연방 총선을 실시했다. 호주 역사상 44차 총선이었고 28대 총리를 선출하는 선택의 장이었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호주에서는 하원의원 150석 가운데 매직 넘버인 76석(과반+1석)을 얻는 정당의 당수가 총리로 취임한다. 하원 임기는 3년이다.
개표 결과 토니 애벗(55) 야당 당수가 이끈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국민 연립당(연립당)이 압승했다. 개표 78.1%가 진행된 9월 10일 오후 현재 연립당은 84석을 얻어 총선 승리를 확정지었다. 반면 집권당인 노동당은 5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최종 예상 의석수는 연립당 89석, 노동당 57석이다. 우선투표선호제 방식의 특성상 개표 완료까지 1주일 정도 걸린다.
‘경제 위기론’ 부각해 집권 성공
노동당 집권 6년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했던 이번 총선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패배가 예상되는 가운데 치러졌다.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은 호주의 주력 산업인 광산기업들에게 광산세와 탄소세 등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광물자원 붐’에서 비롯된 호황 국면의 탄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당 집권 6년 동안의 경제 성적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로부터 ‘호주는 역시 운이 좋은 나라(lucky country)’라는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노동당 정부의 발 빠른 경기부양정책으로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호주는 중국, 인도 등에서 불거진‘광물자원 붐’ 덕에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4~5%대의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주요 광물자원 수입 국가들의 성장 둔화로 호주의 경제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인력이 부족해 힘겨워하던 광산기업들이 올해부터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소비심리도 빠르게 위축됐다. 연립당은 이런 경기 하강 국면을 노동당 책임으로 돌리면서‘경제 위기론’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 집권에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 현상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지난 몇 년 사이 경제우선정책을 선호하는 보수정당들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를 석권했다. 한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에 이어 호주가 막차를 탄 형국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보수 회귀 현상’이 세계적 추세라는 걸 확인해준 셈이다. 그렇다면 애벗 총리 내정자는 누구이며, 그는 과연 호주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호주에서 정치인 애벗을 소개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가 서사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호주 태생이 아니다. 부인도 뉴질랜드 출신으로‘이민자 부부’인 셈이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4세 때 부모와 함께 호주로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 정부가 적극 추진한‘영국인 대상 정부 보조 이민 계획’에 힘입어 이민선을 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애벗이 내건 2대 핵심 공약은‘친(親)기업정책을 펼쳐 위기 국면의 호주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과‘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난민 선박의 호주 국경선 진입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특히 난민 정책은‘배가 출발한 국가(인도네시아 지칭)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강경책과 함께 ‘난민 선박으로 사용될 개연성이 있는 배를 전부 사버리겠다’는 기상천외한 공약을 발표해 인도네시아로부터 ‘내정간섭’이라는 항의를 받았다.
참다못한 일부 난민구호단체는“해외 원조금 대폭 삭감 공약에 이어 난민 선박을 호주 근해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토니 애벗은 본인과 부모가 호주 정부 보조 이민선‘오론세이호’를 타고 입국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느냐”고 쏘아붙였다. 이와 관련해 유엔과 국제구호단체들도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호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직업외교관 출신인 케빈 러드 전 총리는“국제무대 경험이 전혀 없는 토니 애벗 당수의 거친 공약이 국제사회의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고 공박했다. G20 국가인 호주는 그동안 한국과 함께 미들파워 국가로서 경제선진국과 신흥공업국 사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그 임무는 국익에도 큰 보탬이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호주 언론은 28대 총리가 된 애벗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관망 분위기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에 돌입한 것. 그러나 ‘광물자원 붐’은 이미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리는 중이어서‘경제 시험대’에 오른 새 총리의 앞날이 순조로워 보이진 않는다. 총선 다음 날부터 계속 밀려오는 난민 선박의 처리 과정도 초미의 관심사다.
의사당에서 자주 쫓겨나기도
애벗 총리 내정자는 호주 정가에서 ‘최악의 험담’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결과 의사당에서 1~5시간 퇴장당한 기록이 부지기수다. 그중에서 상당수가 성(性)에 관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여성 의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대형사고’를 치곤 했다. 그중에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그가 보건부 장관으로 일하던 시절 낙태용으로 폭넓게 사용하던 사후 피임약 ‘RU486’의 판매를 금지했고, 여성 상원의원들이 ‘내 난소에서 묵주를 치워달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등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피임약 판매 허용 권한이 보건부에서 호주식약청으로 넘어가면서 사태가 수습됐다.
2010년에는 모 여성잡지와의 인터뷰에서“처녀성은 소중한 것이니 아무에게나 주지 마라”고 발언해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혼전 동거 비율이 70%가 넘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 방송에 출연한 한 여성은“아직도 첫날밤에 첫 섹스를 하는 커플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축복을 빌어주자”면서 비아냥거렸다. 애벗 총리 내정자가 혼전순결을 강하게 주장한 배경에는 그의 젊은 시절 비화가 숨어 있다.
애벗 총리 내정자는 학창 시절 수재로 유명했다. 그는 가톨릭예수회가 설립한 사립 명문 리버뷰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시드니대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 당시 많은 젊은이가 선망하던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했다. 그러나 그의 오랜 정신적 방황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다.
졸업과 동시에 귀국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학력에 걸맞지 않게 트럭운전사, 콘크리트공장 관리인 등으로 일했다. 또한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세인트패트릭 신학교에 입학해 평생 따라다니는 별명 ‘미친 수도사’를 얻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웠던 트라우마가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 19세에 초등학교 동창과 동거해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들은 아이를 입양시킨 다음 헤어졌다.
개인사로 묻힐 수 있던 내용이지만, 그가 야당 당수로 선출된 2009년 연말에‘친자 확인 DNA 테스트’ 소동이 벌어지면서 자세히 공개됐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내 아버지 같다”며 애벗 총리 내정자를 닮은 젊은이가 나타났던 것. 젊은이는 호주 국영 ABC-TV 소속으로 의사당을 담당하는 녹음 기사였다. 당시 지척에서 애벗 당수의 TV 인터뷰를 헤아릴 수 없이 녹음한 인물이기도 했다.
애벗 총리 내정자는 감격했고 언론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 “그 청년이 내 아들 같다”고 주장하는 제3 인물이 등장해 친자 확인 DNA 테스트를 실시했고, 결국 제3 인물의 아들로 판명됐다. 애벗 총리 내정자는 허탈해했지만 20년 넘게 시달리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그의 오랜 기행도 그 해프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는 공개적으로 “더는 나의 기행은 없다. 야당 당수에 어울리는 품위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3년 남짓 동안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총선 TV토론에서 러드 전 총리에게 “그 입 좀 닥쳐라!” 같은 거친 말을 퍼붓고, 같은 당 소속 여성 출마자에게 “섹스어필하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해 악재로 작용했다. 운 좋게 그 고비를 넘긴 애벗은 결국 28대 호주 총리가 됐다.
개표 결과 토니 애벗(55) 야당 당수가 이끈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국민 연립당(연립당)이 압승했다. 개표 78.1%가 진행된 9월 10일 오후 현재 연립당은 84석을 얻어 총선 승리를 확정지었다. 반면 집권당인 노동당은 5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최종 예상 의석수는 연립당 89석, 노동당 57석이다. 우선투표선호제 방식의 특성상 개표 완료까지 1주일 정도 걸린다.
‘경제 위기론’ 부각해 집권 성공
노동당 집권 6년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했던 이번 총선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패배가 예상되는 가운데 치러졌다.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은 호주의 주력 산업인 광산기업들에게 광산세와 탄소세 등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광물자원 붐’에서 비롯된 호황 국면의 탄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당 집권 6년 동안의 경제 성적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로부터 ‘호주는 역시 운이 좋은 나라(lucky country)’라는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노동당 정부의 발 빠른 경기부양정책으로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호주는 중국, 인도 등에서 불거진‘광물자원 붐’ 덕에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4~5%대의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주요 광물자원 수입 국가들의 성장 둔화로 호주의 경제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인력이 부족해 힘겨워하던 광산기업들이 올해부터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소비심리도 빠르게 위축됐다. 연립당은 이런 경기 하강 국면을 노동당 책임으로 돌리면서‘경제 위기론’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 집권에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 현상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지난 몇 년 사이 경제우선정책을 선호하는 보수정당들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를 석권했다. 한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에 이어 호주가 막차를 탄 형국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보수 회귀 현상’이 세계적 추세라는 걸 확인해준 셈이다. 그렇다면 애벗 총리 내정자는 누구이며, 그는 과연 호주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호주에서 정치인 애벗을 소개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가 서사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호주 태생이 아니다. 부인도 뉴질랜드 출신으로‘이민자 부부’인 셈이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4세 때 부모와 함께 호주로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 정부가 적극 추진한‘영국인 대상 정부 보조 이민 계획’에 힘입어 이민선을 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애벗이 내건 2대 핵심 공약은‘친(親)기업정책을 펼쳐 위기 국면의 호주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과‘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난민 선박의 호주 국경선 진입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특히 난민 정책은‘배가 출발한 국가(인도네시아 지칭)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강경책과 함께 ‘난민 선박으로 사용될 개연성이 있는 배를 전부 사버리겠다’는 기상천외한 공약을 발표해 인도네시아로부터 ‘내정간섭’이라는 항의를 받았다.
참다못한 일부 난민구호단체는“해외 원조금 대폭 삭감 공약에 이어 난민 선박을 호주 근해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토니 애벗은 본인과 부모가 호주 정부 보조 이민선‘오론세이호’를 타고 입국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느냐”고 쏘아붙였다. 이와 관련해 유엔과 국제구호단체들도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호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직업외교관 출신인 케빈 러드 전 총리는“국제무대 경험이 전혀 없는 토니 애벗 당수의 거친 공약이 국제사회의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고 공박했다. G20 국가인 호주는 그동안 한국과 함께 미들파워 국가로서 경제선진국과 신흥공업국 사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그 임무는 국익에도 큰 보탬이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호주 언론은 28대 총리가 된 애벗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관망 분위기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에 돌입한 것. 그러나 ‘광물자원 붐’은 이미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리는 중이어서‘경제 시험대’에 오른 새 총리의 앞날이 순조로워 보이진 않는다. 총선 다음 날부터 계속 밀려오는 난민 선박의 처리 과정도 초미의 관심사다.
의사당에서 자주 쫓겨나기도
애벗 총리 내정자는 호주 정가에서 ‘최악의 험담’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결과 의사당에서 1~5시간 퇴장당한 기록이 부지기수다. 그중에서 상당수가 성(性)에 관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여성 의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대형사고’를 치곤 했다. 그중에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그가 보건부 장관으로 일하던 시절 낙태용으로 폭넓게 사용하던 사후 피임약 ‘RU486’의 판매를 금지했고, 여성 상원의원들이 ‘내 난소에서 묵주를 치워달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등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피임약 판매 허용 권한이 보건부에서 호주식약청으로 넘어가면서 사태가 수습됐다.
2010년에는 모 여성잡지와의 인터뷰에서“처녀성은 소중한 것이니 아무에게나 주지 마라”고 발언해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혼전 동거 비율이 70%가 넘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 방송에 출연한 한 여성은“아직도 첫날밤에 첫 섹스를 하는 커플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축복을 빌어주자”면서 비아냥거렸다. 애벗 총리 내정자가 혼전순결을 강하게 주장한 배경에는 그의 젊은 시절 비화가 숨어 있다.
애벗 총리 내정자는 학창 시절 수재로 유명했다. 그는 가톨릭예수회가 설립한 사립 명문 리버뷰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시드니대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 당시 많은 젊은이가 선망하던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했다. 그러나 그의 오랜 정신적 방황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다.
졸업과 동시에 귀국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학력에 걸맞지 않게 트럭운전사, 콘크리트공장 관리인 등으로 일했다. 또한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세인트패트릭 신학교에 입학해 평생 따라다니는 별명 ‘미친 수도사’를 얻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웠던 트라우마가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 19세에 초등학교 동창과 동거해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들은 아이를 입양시킨 다음 헤어졌다.
개인사로 묻힐 수 있던 내용이지만, 그가 야당 당수로 선출된 2009년 연말에‘친자 확인 DNA 테스트’ 소동이 벌어지면서 자세히 공개됐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내 아버지 같다”며 애벗 총리 내정자를 닮은 젊은이가 나타났던 것. 젊은이는 호주 국영 ABC-TV 소속으로 의사당을 담당하는 녹음 기사였다. 당시 지척에서 애벗 당수의 TV 인터뷰를 헤아릴 수 없이 녹음한 인물이기도 했다.
애벗 총리 내정자는 감격했고 언론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 “그 청년이 내 아들 같다”고 주장하는 제3 인물이 등장해 친자 확인 DNA 테스트를 실시했고, 결국 제3 인물의 아들로 판명됐다. 애벗 총리 내정자는 허탈해했지만 20년 넘게 시달리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그의 오랜 기행도 그 해프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는 공개적으로 “더는 나의 기행은 없다. 야당 당수에 어울리는 품위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3년 남짓 동안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총선 TV토론에서 러드 전 총리에게 “그 입 좀 닥쳐라!” 같은 거친 말을 퍼붓고, 같은 당 소속 여성 출마자에게 “섹스어필하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해 악재로 작용했다. 운 좋게 그 고비를 넘긴 애벗은 결국 28대 호주 총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