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 상차림 때 음식을 배치하는 자리다. 생선, 육류, 과일, 포, 식혜, 면, 떡 등 언급된 음식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상차림의 푸짐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평소 비만이나 소화 문제가 고민인 사람의 경우 이러한 음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칼로리 섭취와 소화불량이 걱정이다. 기름에 지지고 볶거나 튀기는 조리 과정을 떠올려보면 속이 더부룩해지고 살이 찌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명절 음식은 유난히 기름을 많이 쓴다. 식용유를 통째 쓰는 경우도 흔하다. 전류, 고기류, 잡채 등 종류도 다양하다. 평소 먹지 않던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소화기 질환 증상이 갑작스레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추석 연휴에 음식 섭취로 탈이 나는 경우가 흔한데, 2010년 추석 연휴 사흘 동안 한 대학병원 응급진료센터를 찾은 환자 6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화기 질환인 급성위장염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칼로리 섭취는 평소 2배
일시적인 소화불량이나 복통 같은 증상은 음식 섭취를 줄이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2~3일 안에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복통, 구토, 발열, 설사 같은 증상이 2~3일 이상 지속되거나 탈수나 혈변 같은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추석 연휴에 기름진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섭취하다 보면 연휴 후 반드시 체중이 늘어난다. 이는 추석 음식으로 섭취하는 칼로리가 평소보다 2~3배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토란국 1인분, 갈비찜 2점, 생선전 2~3쪽, 호박전 3쪽, 꼬치전 2쪽, 잡채 3분의1접시, 삼색나물, 김치, 그리고 과일 2~3쪽과 식혜 1컵 정도를 한 끼에 먹으면 1200~1500kcal를 섭취하게 된다(추석 음식 칼로리표 참조).
평소 하루 세끼의 총열량이 2000kcal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추석 연휴 평소보다 2배 정도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셈. 게다가 연휴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체중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추석 연휴에는 에너지 섭취와 소비에 불균형이 발생해 체중 증가의 위험이 높아진다. 평소 당뇨나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은 질환이 악화될 위험이 있으며, 평소 체중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명절을 고비로 요요현상이 시작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에 소화기 질환과 체중 증가의 주범은 단연 과식이다. 명절 연휴에는 음식을 섭취하는 횟수가 많은 만큼 평소보다 약간 덜 먹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먹는 게 좋다. 특히 기름을 사용해 튀기거나 볶은 음식,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고기류, 떡처럼 탄수화물이 다량으로 함유된 음식은 과하게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조리 때 기름 사용을 줄이고 음식을 낼 때도 식사 인원에 맞춰 약간 적은 듯 담아내는 것이 과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평소 칼로리에 신경 써야 할 당뇨 환자에게 추석 음식은 지뢰밭이라 할 수 있다. 칼로리를 음식별로 살펴보면 밥 한 공기(300kcal)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인절미 6조각, 떡산적 3개, 동태전 4개가 각각 300kcal로 밥 한 공기에 해당되며, 추석 대표 음식인 송편은 4개가 200kcal로 밥 3분의 2 공기를 먹는 것만큼의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식혜는 한 잔만 마셔도 250kcal로, 거의 밥 한 공기를 먹는 셈이다(추석 음식 칼로리표 참조).
당뇨는 비만과 관련 깊은 대표적 만성질환으로, 비만 여부와 그 정도가 발병과 합병증 예방뿐 아니라, 약물치료 효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뚱뚱하면 치료제의 효과도 떨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동서양 당뇨 환자 1만8328명에 대한 DPP-4 억제제의 치료 효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비만도가 낮을수록 당화혈색소(Hb1Ac) 수치가 더 잘 떨어졌으며, 상대적으로 비만도가 낮은 동양인에게서 DPP-4 억제제의 효과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당뇨 환자의 경우 추석 연휴에 과식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음식별로 칼로리를 따져 총칼로리가 본인에게 맞도록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조 교수는 “당뇨 환자는 체중, 활동량 등에 따라 하루 필요 칼로리 처방을 받는데, 추석 같은 명절에는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하루 필요 칼로리를 넘어설 수 있다. 추석 별미 중에서도 설탕이나 꿀 같은 단순 당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혈당을 급격히 높일 수 있고, 기름진 음식은 칼로리가 특히 높은 만큼 먹을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당뇨 환자는 특히 조심
당뇨 환자에게 필요한 하루 섭취 칼로리를 처방할 땐 활동량도 고려해야 한다. 활동량이 많을 경우 열량 섭취가 부족하면 오히려 혈당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혈당은 인슐린 주사제나 설폰요소제 같은 경구 혈당강하제 투여를 받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심한 경우 의식을 잃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135쪽 참조). 따라서 당뇨 환자는 장거리 운전이나 성묘 등 평소보다 활동량이 늘어날 경우 저혈당 예방을 위해 사전 혈당 체크는 물론, 평소보다 열량을 10~20% 더 섭취하거나 필요한 경우 혈당을 빠르게 높여줄 수 있는 사탕, 초콜릿 같은 응급 간식을 구비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추석 상차림에서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적은 고기나 부침개에 곁들여 나오는 소금, 간장 등 각종 소스다. 습관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 소스를 곁들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방과 함께 염분을 과다 섭취하게 된다. 예를 들면 구운 고기를 소금이 더해진 기름장이나 쌈장에 찍어 먹는 식인데, 이러한 습관은 특히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저염식 식습관을 유지해야 하는 고혈압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고혈압 환자는 염분에 민감해 똑같이 짜게 먹어도 일반인에 비해 혈압이 훨씬 더 많이 상승하며, 과도한 염분 섭취는 뇌중풍과 심혈관 질환 같은 합병증 발병 위험을 높인다. 반대로 싱겁게 먹으면 치료제 용량을 줄일 수 있고, 골다공증과 신장결석 예방에 도움이 된다. 특히 가족 가운데 고혈압 환자가 있다면 명절 음식 자체를 싱겁게 만드는 것이 좋다. 환자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고혈압도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고혈압은 유전적 소인도 있지만 생활 습관병 가운데 하나로, 짜게 먹는 식습관을 공유할 경우 가족 구성원에게서 후천적으로 발병할 위험이 크다. 고혈압 가족력 유무에 상관없이 짜게 먹는 잘못된 습관을 가졌다면 가족 구성원이 함께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염분 섭취를 줄이려면 먼저 음식을 조리할 때 소금이나 간장 등을 최소 양만 사용하고, 싱거운 맛을 덜고 싶은 경우에는 후추, 마늘, 레몬즙 등을 첨가한다. 생선, 육류, 김 등을 구울 때도 소금을 뿌리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추가로 소금이나 소스를 넣지 말고, 찌개나 국은 가급적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구운 고기는 기름장이나 쌈장에 찍어 먹는 대신 구운 마늘이나 김치를 얹어 먹으면 염분 섭취를 줄이면서도 느끼한 맛을 덜 수 있다. 그리고 음식이 싱겁더라도 많이 먹으면 결국 염분 섭취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적당량만 먹는 것이 중요하다.
추석 연휴 칼로리와의 전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술은 영양소가 포함돼 있지 않으면서 열량만 높다. 일반적으로 소주 4잔, 막걸리 3잔, 맥주 1잔(500cc) 반 정도를 마시면 거의 밥 한 공기를 먹는 수준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된다. 이는 순수하게 술만 마셨을 경우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 자체는 지방으로 잘 전환되지 않아 술만 마셨을 경우 직접적으로 체중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술이 식욕을 자극해 기름진 추석 음식을 안주로 많이 먹게 된다는 점이다(술 칼로리표 참조).
추석 연휴에는 모임이 잦아 술자리가 늘고 음주로 인한 사고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과음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 등도 문제지만, 일부 사람의 경우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당뇨나 고혈압 환자의 지나친 알코올 섭취는 합병증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당뇨나 고혈압 환자는 가급적 음주를 피해야 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순수 알코올 12~14g을 한 잔 기준으로 삼을 경우, 성인 남성은 1회 4잔 이하, 1주일에 14잔 이하, 성인 여성과 65세 이상 남성은 1회 3잔 이하, 1주일에 7잔 이하, 노인 여성의 경우 1주일에 3잔 이하가 의학적 의미에서 적절한 음주 범위에 해당한다. 음주 시 이를 참고하고 본인 주량이나 몸 상태에 따라 사전에 음주량을 정해놓고 마시는 습관이 필요하다.
당뇨 환자는 추석 명절에도 혈당을 관리해야 한다. 당뇨 합병증 예방을 위해서는 혈압과 콜레스테롤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건강하게 술을 즐기려면 무엇보다 빈속에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급적 천천히 여러 번 나눠서 마시고, ‘술 한 잔 물 두 잔’ 원칙을 챙겨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또한 대화를 많이 해야 호흡을 통해 알코올이 배출되기 때문에 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식체와 질식 대처법
추석 음식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 과식 후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울거나 구토, 메스꺼움, 미열, 설사 증세를 보인다면 식체를 의심할 수 있다. 아이를 바닥에 누인 후 배를 살살 만졌을 때 배꼽과 명치 사이가 단단하게 굳어 있거나 조금만 눌러도 아파하면 체한 것이다. 또한 대변에서 시큼한 냄새나 썩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음식 찌꺼기와 묽은 변이 섞여 나오기도 하며, 손과 발이 차가워진다.
아이 상태가 심하지 않다면 유아용 소화제를 먹이고 장운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따뜻한 손으로 배꼽을 중심으로 마사지를 해준다. 만약 구토를 했다면 탈수가 올 수 있으므로 따뜻한 물을 먹여 수분을 보충해준다. 심하게 체해 이 같은 방법으로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변에 피나 누런 점액질이 섞여 있다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한편, 해마다 추석 때만 되면 음식이 기도를 막아 호흡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 꼭 생긴다. 어린아이가 특히 많다. 따라서 떡, 포도, 방울토마토, 사탕, 견과류와 같이 기도를 막을 위험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땐 반드시 어른이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 만일 목에 이물질이 걸렸다면 1~2분 안에 꼭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식을 잃고 생명까지 위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입안에 음식물이 보인다면 아이의 고개를 옆으로 돌린 뒤 뱉게 한다. 입에 손을 넣어 빼내는 방법은 아이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으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대신 아이를 뒤에서 껴안고 선 다음, 한 손은 주먹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주먹을 감싼 뒤 아이의 배를 쓸어 올리듯 아래에서 위쪽으로 당기는 응급처치를 하면 음식물이 빠져나온다.
이옥엽 지샘병원 소아청소년센터장 과장은 “아동의 경우 과식뿐 아니라 신체적 미숙, 정신적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소화불량이 올 수 있다. 과식은 면역력을 약화해 감염질환에도 취약해지게 하므로 세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응급실 내 소아를 위한 특별진료구역을 설치한 병원도 있으니, 이상 증세가 보이면 즉시 병원을 찾아 치료받게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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