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가 많은 시절이다. 1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TV 채널은 많고, IPTV의 가세로 시간을 초월해 방송을 시청하는 것은 물론 손쉽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귀경 차량 안에서 시달리고, 명절 음식 장만으로 지쳤을 때 가장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오락거리는 여전히 TV다. 특별히 추석맞이 행사가 없는 경우라도 모처럼의 연휴로 긴장이 풀어진 마음에 가장 적당한 휴식 역시 TV라 할 수 있다. 수요일부터 이어지는 황금연휴, 놓치기 아까운 TV 프로그램을 정리해봤다. 다양해진 명절 세태에 맞춰, 추석을 보내는 가족 스타일별로 추천 프로그램을 달리했다.
◆3대가 함께 모여 ‘하하호호’
‘스타 베이비시터 날 보러와요’
- KBS 2TV 9월 18일
오랜만에 만난 손주와 조카가 반가운 것도 잠시. 귀엽다고만 하기에는 통제 불능이고, 진지하게 야단치자니 즐거운 명절 분위기가 망가질 것 같아 고민이라면 ‘스타 베이비시터 날 보러와요’는 유쾌한 참고서가 될 듯하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연예인 조영남, 김국진, 정준영이 직접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체험기를 다룬다. 막무가내로 유아와 연예인의 충돌을 유도하거나 편협한 시각에서 양육의 어려움을 전하지 않는다. 소아정신과 의사로 MBC 라디오 ‘서천석의 마음연구소’를 진행하며 다수의 육아서적을 집필한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의 특별 강연을 통해 출연자들이 아이 눈높이에서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
하지만 집에 초대한 말괄량이 자매가 자신이 아끼는 그림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목격한 조영남이나 기저귀 가방까지 챙겨야 하는 어린아이에 쌍둥이 형제까지 도맡은 정준영에게 육아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제도까지 내려가 동생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6세 소녀를 만나는 김국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이 함께 자라는 법을 보여주니, 이만큼 온가족이 한자리에서 확인하기에 좋은 메시지도 없다.
‘이장과 군수’
- SBS 9월 19, 20일
모처럼 찾은 고향이 한적한 시골이라면 ‘이장과 군수’는 몰입하기 좋은 이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연예인들이 이장 선거에 출마해 선거 유세를 하고 경쟁도 하는 이 프로그램은 해당 지역의 특색과 특산물을 홍보하고 지역 주민과의 단합을 도모하는 새로운 농촌 예능 파일럿이다. 기존 농촌 예능 프로그램이 주민들의 순박한 모습과 농촌의 생활환경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농촌을 배경으로 정치를 풍자하고 다양한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형태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한다.
시골의 정겨운 모습이 그리운 장년층은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젊은이까지 아우르는 재미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그맨 이수근과 배우 윤다훈이 각각 당수를 맡아 선거 참모로 활약하고, 전 씨름 선수 이만기를 비롯해 씨스타 보라, 배우 이도영과 이민호, 개그맨 장동혁, 한민관, 신봉선, 트로트 가수 홍진영이 이장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다. 충남 아산시 역촌리에서 탄생할 첫 번째 명예 이장은 과연 누가 될까.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
- 채널A 9월 20일
명절에 만난 가족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 가장 많이 챙기는 부분은 아무래도 음식에 관한 일일 것이다.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무엇이 몸에 해로운지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명절 대화의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은 가족의 화두를 하나로 모으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해당 방송이 고발한 식품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큰 파급력을 발휘하며, 방송이 선정한 ‘착한식당’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은 수준. 가족 단합에 유용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쿨한 장년 부부 낭만과 감동
‘나는 가수다 명곡 BEST 10’
- MBC 9월 18일
명절 연휴에 주말이 연결된 때문인지 올해 추석 연휴에 떠나는 해외여행 상품은 7~8월 조기 매진된 상태다.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추석날 아침 차례를 일찌감치 지내고 온천이나 국내 명소로 여행을 떠나는 새로운 풍속도가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기도 하다. 자녀의 여행을 흔쾌히 허락한 뒤 긴 연휴를 조용히 보내는 장년 부부는 오붓하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나는 가수다 명곡 BEST 10’은 이들이 외로울 겨를 없이 낭만과 감동에 빠져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8월 진행한 온라인 투표를 통해 역대 ‘나는 가수다’ 무대 가운데 가장 사랑받은 10개를 선정한 제작진은 최고의 순간을 한자리에서 재연하는 특집 방송을 마련했다. 진행은 윤도현이 맡았으며 500명의 청중 평가단이 가장 마음에 드는 무대 3개를 뽑는 방식은 기존 ‘나는 가수다’와 유사하다.
‘투혼-대국민 닭싸움 대회’
- KBS 2TV 9월 19, 20일
명절의 의미가 희석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왁자지껄한 잔치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노래보다 더 강력하게 명절의 활기를 되살려줄 프로그램을 찾는다면, 닭싸움 토너먼트 ‘투혼-대국민 닭싸움 대회’를 추천한다. 운동선수 출신 최홍만과 유상철, 배우 김보성, 가수 이정, 아이돌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 개그맨 윤형빈과 지상렬이 각각 태권도 선수 혹은 이종격투기 선수와 2인 1조로 짝을 이뤄 닭싸움 최강자를 가리는 이 프로그램은 전통놀이인 닭싸움에 상상을 초월한 힘과 기술을 불어넣는다.
특히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의 출전 소식에 참가자들이 승부욕을 불태우며 특수훈련에 돌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소식은 스포츠 수준으로 진화한 새로운 닭싸움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최종 우승팀은 상금 1000만 원을 받는다. 단순한 친목게임 이상의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제작진의 각오가 엿보인다. MC 손범수, 김구라가 노련한 진행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중계를 이끌 예정. 닭싸움이 오랫동안 명절 단골 스포츠였던 씨름을 제치고 대표적인 추석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우승자의 정체만큼이나 이 판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0대 자녀와 유쾌한 시간
‘아이돌 스타 육상 양궁 풋살 선수권 대회’
- MBC 9월 19, 20일
처음에는 한 번 하고 마는 특별 이벤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명절마다 돌아오는 연례행사가 됐다. 가수들이 노래 한 곡 부르지 않고 운동장에 모여 미니올림픽을 하는 광경이 어른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10대에게 이 프로그램은 이제 빠뜨릴 수 없는 명절 방송으로 자리 잡았다. 똑같은 노래를 수십 번 부르는 무대에선 미처 볼 수 없었던 아이돌의 색다른 표정이나 몰랐던 성격을 발견할 수 있기에 승부 결과보다 사소한 장면이 더 소중하다는 것 역시 부모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지점일 터.
하지만 공부나 하라며 핀잔을 주는 대신 자녀가 열광하는 미지의 세계를 함께 관람하는 것은 틀림없이 추석의 넉넉함에 어울리는 어른의 선물이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비난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자존심은 회복되게 마련인 까닭이다. 그리고 편견을 버리고 방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100m 달리기에서 우승하거나 높이뛰기에서 아쉽게 탈락한 아이돌 이름을 외우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올해 신설된 풋살 경기는 부상자가 속출할 정도로 격렬했다고 하니, 부녀가 나란히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
- MBC 9월 19일
명절마다 제작하는 특집 단막극은 대부분 사전 제작을 통해 완성도를 담보하게 마련이지만, 세대 화합이라는 주제 때문에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MBC가 선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추석 특집극으로선 의외의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다. 호주로 입양된 젊은이가 친부모를 만나는 이야기와 철없는 10대 미혼 부부의 이야기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드라마는 밝고 경쾌한 시선으로 전개된다.
이런 콘셉트를 위해 연출을 맡은 이은규 감독은 이상엽, 최윤영, 맹세창, 김희정, 샘 해밍턴 등 젊은 연기자들에게 자유롭게 연기할 것을 주문했고, 배우들의 동선에 제작진이 호흡을 맞춰 긴장감을 해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쾌한 분위기와 달리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존귀함과 그에 대한 책임이라고 하니, 부모와 자녀가 유대를 다지고 함께 감상을 나누기에 이 이상 좋은 프로그램도 없을 듯싶다.
◆꿀맛 휴식 싱글도 괜찮아
‘추석특집 스타 애정촌’
- SBS 9월 19일
시끌시끌한 가족의 웃음소리도, 집 안팎으로 넘치는 명절 음식 냄새도 없다. 운이 나쁘면 집 근처에서 제대로 영업하는 음식점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 명절 연휴를 보내는 사람은 외로운 대신 자유롭다. 안부 묻기가 무섭게 취직과 결혼에 대한 훈수를 들어야 하는 싱글이라면 더더욱 자유롭고 평화로운 휴일을 위해 고독을 감내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스타 애정촌’은 잔소리 들을까 눈치 볼 필요 없이 타인의 남녀상열지사를 관망하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가 아닐 수 없다.
진짜로 관심이 있는 건지, 방송이 끝난 후 얼마나 연락을 주고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선남선녀가 서로의 관심을 끌려고 애 태우면서 조바심 내는 광경은 사람들이 대부분 질리지 않고 집중하는 이야기의 원형이다. 이번엔 신화의 앤디, 주얼리의 김예원 등 아이돌 멤버부터 배우 최은주, 방송인 노희지 등 반가운 얼굴, 가수 손진영과 SBS 아나운서 조정식처럼 숨겨진 매력을 발산할 다크호스까지 연예인 11명이 강화도를 배경으로 전쟁 같은 사랑에 뛰어든다. 특히 신화 팬이라면 설날에 이어 또다시 ‘스타 애정촌’을 찾은 앤디의 남다른 각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미녀와 야수’
- 채널CGV 9월 18일
며칠간 이어지는 휴일은 미뤄뒀던 시리즈물을 섭렵하기에 적합한 때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 애니메이션, 책 목록을 잘 작성해둔 사람이라면 방에서만 보내는 휴일이 꿀맛이겠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그 시간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채널CGV에서 방영하는 ‘미녀와 야수’를 권한다. 1987년 론 펄먼이 야수로 출연했던 드라마 작품을 리메이크한 이 시리즈는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경찰인 미녀와 레지던트 출신인 야수가 만들어내는 미스터리한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 내용에 야수인 빈센트가 군사 작전에 휘말려 초인적인 힘과 감각을 갖게 됐지만 흥분 상태에선 헐크처럼 통제력을 잃는다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수사물의 긴장감까지 노린다. ‘스몰빌’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틴 크룩이 미녀 캐서린으로 출연하며 뉴질랜드 출신의 제이 라이언이 빈센트 역을 맡았다. 미국에선 10월 중 2번째 시즌이 방영 예정인 인기 시리즈다.
‘멋진 녀석들’
- SBS 9월 18일
연예인에게 명절 특집 프로그램은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시험대다. 가수들이 다른 가수의 노래를 하는 무대나 아이돌이 준비한 댄스는 물론, 아나운서나 배우가 선보이는 코미디 역시 명절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다. 올 추석 가장 파격적 변신을 선보일 사람은 배우 김민종이 될 것 같다. 멀티 캐릭터쇼 ‘멋진 녀석들’에 출연하는 김민종은 단정하고 말쑥한 기존 모습과는 전혀 다른 허세 가득한 백수 분장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데뷔 후 처음 여장을 선보이며 ‘1인 다역 캐릭터쇼’라는 방송 취지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출연하는 임창정과 김수로 역시 각각 스파이더맨과 울버린, 사모님과 못된 시어머니로 분장해 새로운 코미디 연기에 도전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먹는 명절도 좋지만 결국 많이 웃는 명절이 가장 좋다. 그런 점에서 코미디는 명절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그러나 귀경 차량 안에서 시달리고, 명절 음식 장만으로 지쳤을 때 가장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오락거리는 여전히 TV다. 특별히 추석맞이 행사가 없는 경우라도 모처럼의 연휴로 긴장이 풀어진 마음에 가장 적당한 휴식 역시 TV라 할 수 있다. 수요일부터 이어지는 황금연휴, 놓치기 아까운 TV 프로그램을 정리해봤다. 다양해진 명절 세태에 맞춰, 추석을 보내는 가족 스타일별로 추천 프로그램을 달리했다.
◆3대가 함께 모여 ‘하하호호’
‘스타 베이비시터 날 보러와요’
- KBS 2TV 9월 18일
오랜만에 만난 손주와 조카가 반가운 것도 잠시. 귀엽다고만 하기에는 통제 불능이고, 진지하게 야단치자니 즐거운 명절 분위기가 망가질 것 같아 고민이라면 ‘스타 베이비시터 날 보러와요’는 유쾌한 참고서가 될 듯하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연예인 조영남, 김국진, 정준영이 직접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체험기를 다룬다. 막무가내로 유아와 연예인의 충돌을 유도하거나 편협한 시각에서 양육의 어려움을 전하지 않는다. 소아정신과 의사로 MBC 라디오 ‘서천석의 마음연구소’를 진행하며 다수의 육아서적을 집필한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의 특별 강연을 통해 출연자들이 아이 눈높이에서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
하지만 집에 초대한 말괄량이 자매가 자신이 아끼는 그림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목격한 조영남이나 기저귀 가방까지 챙겨야 하는 어린아이에 쌍둥이 형제까지 도맡은 정준영에게 육아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제도까지 내려가 동생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6세 소녀를 만나는 김국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이 함께 자라는 법을 보여주니, 이만큼 온가족이 한자리에서 확인하기에 좋은 메시지도 없다.
‘이장과 군수’
- SBS 9월 19, 20일
모처럼 찾은 고향이 한적한 시골이라면 ‘이장과 군수’는 몰입하기 좋은 이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연예인들이 이장 선거에 출마해 선거 유세를 하고 경쟁도 하는 이 프로그램은 해당 지역의 특색과 특산물을 홍보하고 지역 주민과의 단합을 도모하는 새로운 농촌 예능 파일럿이다. 기존 농촌 예능 프로그램이 주민들의 순박한 모습과 농촌의 생활환경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농촌을 배경으로 정치를 풍자하고 다양한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형태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한다.
시골의 정겨운 모습이 그리운 장년층은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젊은이까지 아우르는 재미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그맨 이수근과 배우 윤다훈이 각각 당수를 맡아 선거 참모로 활약하고, 전 씨름 선수 이만기를 비롯해 씨스타 보라, 배우 이도영과 이민호, 개그맨 장동혁, 한민관, 신봉선, 트로트 가수 홍진영이 이장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다. 충남 아산시 역촌리에서 탄생할 첫 번째 명예 이장은 과연 누가 될까.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
- 채널A 9월 20일
명절에 만난 가족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 가장 많이 챙기는 부분은 아무래도 음식에 관한 일일 것이다.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무엇이 몸에 해로운지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명절 대화의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은 가족의 화두를 하나로 모으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해당 방송이 고발한 식품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큰 파급력을 발휘하며, 방송이 선정한 ‘착한식당’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은 수준. 가족 단합에 유용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쿨한 장년 부부 낭만과 감동
‘나는 가수다 명곡 BEST 10’
- MBC 9월 18일
명절 연휴에 주말이 연결된 때문인지 올해 추석 연휴에 떠나는 해외여행 상품은 7~8월 조기 매진된 상태다.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추석날 아침 차례를 일찌감치 지내고 온천이나 국내 명소로 여행을 떠나는 새로운 풍속도가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기도 하다. 자녀의 여행을 흔쾌히 허락한 뒤 긴 연휴를 조용히 보내는 장년 부부는 오붓하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나는 가수다 명곡 BEST 10’은 이들이 외로울 겨를 없이 낭만과 감동에 빠져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8월 진행한 온라인 투표를 통해 역대 ‘나는 가수다’ 무대 가운데 가장 사랑받은 10개를 선정한 제작진은 최고의 순간을 한자리에서 재연하는 특집 방송을 마련했다. 진행은 윤도현이 맡았으며 500명의 청중 평가단이 가장 마음에 드는 무대 3개를 뽑는 방식은 기존 ‘나는 가수다’와 유사하다.
‘투혼-대국민 닭싸움 대회’
- KBS 2TV 9월 19, 20일
명절의 의미가 희석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왁자지껄한 잔치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노래보다 더 강력하게 명절의 활기를 되살려줄 프로그램을 찾는다면, 닭싸움 토너먼트 ‘투혼-대국민 닭싸움 대회’를 추천한다. 운동선수 출신 최홍만과 유상철, 배우 김보성, 가수 이정, 아이돌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 개그맨 윤형빈과 지상렬이 각각 태권도 선수 혹은 이종격투기 선수와 2인 1조로 짝을 이뤄 닭싸움 최강자를 가리는 이 프로그램은 전통놀이인 닭싸움에 상상을 초월한 힘과 기술을 불어넣는다.
특히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의 출전 소식에 참가자들이 승부욕을 불태우며 특수훈련에 돌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소식은 스포츠 수준으로 진화한 새로운 닭싸움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최종 우승팀은 상금 1000만 원을 받는다. 단순한 친목게임 이상의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제작진의 각오가 엿보인다. MC 손범수, 김구라가 노련한 진행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중계를 이끌 예정. 닭싸움이 오랫동안 명절 단골 스포츠였던 씨름을 제치고 대표적인 추석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우승자의 정체만큼이나 이 판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0대 자녀와 유쾌한 시간
‘아이돌 스타 육상 양궁 풋살 선수권 대회’
- MBC 9월 19, 20일
처음에는 한 번 하고 마는 특별 이벤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명절마다 돌아오는 연례행사가 됐다. 가수들이 노래 한 곡 부르지 않고 운동장에 모여 미니올림픽을 하는 광경이 어른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10대에게 이 프로그램은 이제 빠뜨릴 수 없는 명절 방송으로 자리 잡았다. 똑같은 노래를 수십 번 부르는 무대에선 미처 볼 수 없었던 아이돌의 색다른 표정이나 몰랐던 성격을 발견할 수 있기에 승부 결과보다 사소한 장면이 더 소중하다는 것 역시 부모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지점일 터.
하지만 공부나 하라며 핀잔을 주는 대신 자녀가 열광하는 미지의 세계를 함께 관람하는 것은 틀림없이 추석의 넉넉함에 어울리는 어른의 선물이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비난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자존심은 회복되게 마련인 까닭이다. 그리고 편견을 버리고 방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100m 달리기에서 우승하거나 높이뛰기에서 아쉽게 탈락한 아이돌 이름을 외우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올해 신설된 풋살 경기는 부상자가 속출할 정도로 격렬했다고 하니, 부녀가 나란히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
- MBC 9월 19일
명절마다 제작하는 특집 단막극은 대부분 사전 제작을 통해 완성도를 담보하게 마련이지만, 세대 화합이라는 주제 때문에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MBC가 선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추석 특집극으로선 의외의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다. 호주로 입양된 젊은이가 친부모를 만나는 이야기와 철없는 10대 미혼 부부의 이야기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드라마는 밝고 경쾌한 시선으로 전개된다.
이런 콘셉트를 위해 연출을 맡은 이은규 감독은 이상엽, 최윤영, 맹세창, 김희정, 샘 해밍턴 등 젊은 연기자들에게 자유롭게 연기할 것을 주문했고, 배우들의 동선에 제작진이 호흡을 맞춰 긴장감을 해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쾌한 분위기와 달리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존귀함과 그에 대한 책임이라고 하니, 부모와 자녀가 유대를 다지고 함께 감상을 나누기에 이 이상 좋은 프로그램도 없을 듯싶다.
◆꿀맛 휴식 싱글도 괜찮아
‘추석특집 스타 애정촌’
- SBS 9월 19일
시끌시끌한 가족의 웃음소리도, 집 안팎으로 넘치는 명절 음식 냄새도 없다. 운이 나쁘면 집 근처에서 제대로 영업하는 음식점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 명절 연휴를 보내는 사람은 외로운 대신 자유롭다. 안부 묻기가 무섭게 취직과 결혼에 대한 훈수를 들어야 하는 싱글이라면 더더욱 자유롭고 평화로운 휴일을 위해 고독을 감내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스타 애정촌’은 잔소리 들을까 눈치 볼 필요 없이 타인의 남녀상열지사를 관망하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가 아닐 수 없다.
진짜로 관심이 있는 건지, 방송이 끝난 후 얼마나 연락을 주고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선남선녀가 서로의 관심을 끌려고 애 태우면서 조바심 내는 광경은 사람들이 대부분 질리지 않고 집중하는 이야기의 원형이다. 이번엔 신화의 앤디, 주얼리의 김예원 등 아이돌 멤버부터 배우 최은주, 방송인 노희지 등 반가운 얼굴, 가수 손진영과 SBS 아나운서 조정식처럼 숨겨진 매력을 발산할 다크호스까지 연예인 11명이 강화도를 배경으로 전쟁 같은 사랑에 뛰어든다. 특히 신화 팬이라면 설날에 이어 또다시 ‘스타 애정촌’을 찾은 앤디의 남다른 각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미녀와 야수’
- 채널CGV 9월 18일
며칠간 이어지는 휴일은 미뤄뒀던 시리즈물을 섭렵하기에 적합한 때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 애니메이션, 책 목록을 잘 작성해둔 사람이라면 방에서만 보내는 휴일이 꿀맛이겠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그 시간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채널CGV에서 방영하는 ‘미녀와 야수’를 권한다. 1987년 론 펄먼이 야수로 출연했던 드라마 작품을 리메이크한 이 시리즈는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경찰인 미녀와 레지던트 출신인 야수가 만들어내는 미스터리한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 내용에 야수인 빈센트가 군사 작전에 휘말려 초인적인 힘과 감각을 갖게 됐지만 흥분 상태에선 헐크처럼 통제력을 잃는다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수사물의 긴장감까지 노린다. ‘스몰빌’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틴 크룩이 미녀 캐서린으로 출연하며 뉴질랜드 출신의 제이 라이언이 빈센트 역을 맡았다. 미국에선 10월 중 2번째 시즌이 방영 예정인 인기 시리즈다.
‘멋진 녀석들’
- SBS 9월 18일
연예인에게 명절 특집 프로그램은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시험대다. 가수들이 다른 가수의 노래를 하는 무대나 아이돌이 준비한 댄스는 물론, 아나운서나 배우가 선보이는 코미디 역시 명절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다. 올 추석 가장 파격적 변신을 선보일 사람은 배우 김민종이 될 것 같다. 멀티 캐릭터쇼 ‘멋진 녀석들’에 출연하는 김민종은 단정하고 말쑥한 기존 모습과는 전혀 다른 허세 가득한 백수 분장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데뷔 후 처음 여장을 선보이며 ‘1인 다역 캐릭터쇼’라는 방송 취지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출연하는 임창정과 김수로 역시 각각 스파이더맨과 울버린, 사모님과 못된 시어머니로 분장해 새로운 코미디 연기에 도전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먹는 명절도 좋지만 결국 많이 웃는 명절이 가장 좋다. 그런 점에서 코미디는 명절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