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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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납부 1703억 원 싹 받아낼까?

전두환 일가 백기투항 후 5대 쟁점…그간 이자·정상참작 수사 등도 관심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3-09-16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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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진 납부 1703억 원 싹 받아낼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9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카메라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18년 전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호기롭게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던 아버지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97년 대법원 선고 이후 16년 만에 추징금 납부가 사실상 마무리되던 순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의 모습이다. 그가 2분가량 읽어 내려간 글의 제목은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검찰이 전담팀을 구성한 지 110일,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 압수수색을 개시한 지 50여 일이 지난 9월 10일이었다.

    그간 검사 9명과 수사관 30여명 등 총 52명으로 구성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두환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은 90회에 걸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이 확보했다고 밝힌 전두환 일가의 재산은 이미 압류한 900억 원대 재산을 포함해 총 1703억 원 규모. 재국 씨는 경기 연천 허브빌리지와 서울 서초동 시공사 사옥 등 부동산과 미술품 400여 점, ㈜북플러스 주식 20만 주 등 재산 총 558억 원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차남 재용 씨는 전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으로 지목됐던 경기 오산시 땅 5필지와 서울 이태원 빌라 등 560억 원대 재산이, 삼남 재만 씨의 경우 서울 한남동 빌딩과 연희동 사저 별채 등 200억 원대 부동산이 검찰 목록에 포함됐다. 재만 씨의 장인인 이희상 동아원 회장도 금융자산 275억 원을 자진 납부하기로 약속했고, 딸 효선 씨는 20억 원 내외로 평가된 경기 안양시 관양동 땅을 내놓기로 했다.

    상황 급반전에도 갈 길은 아직 멀다. 먼저 납부 의사를 밝힌 재산에 대해 추징을 집행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 현행법상 추징금은 현금으로만 납부할 수 있는데, 검찰이 압류했거나 자진 납부하기로 한 재산이 대부분 비현금 자산이기 때문. 공매에서 평가액보다 가격이 떨어질 개연성이 적지 않고, 일부 부동산에는 근저당까지 설정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재산을 처분하는 동안 돌발변수가 불거질 소지도 크다는 것이다.

    # 쟁점 1. 평가액대로 추징 가능한가

    세금 문제가 가장 큰 복병이다. 대부분 구매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자녀들 명의의 부동산은 그간 가격이 크게 올랐고, 당시 구매가격과 공매 낙찰가격 사이의 차익은 당연히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이다. 이 경우 세율은 38%. 간단히 계산해도 수백억 원대다.



    엄밀히 말해 추징금 납부는 자녀들이 재산을 일단 부친 명의로 이전한 다음 전 전 대통령 본인이 납부하는 형태로 집행된다. 공식적인 자기 재산은 29만 원뿐이라던 전 전 대통령에게는 증여세 납부의무가 발생한다. 예상 세율은 무려 50%. 1700억 원대의 절반이 증여세로 날아간다. 전 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차명재산이었다고 인정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거꾸로 그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재산을 넘겨받아 활용해온 자녀들의 탈세 논란은 피할 수 없다.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미로다.

    # 쟁점 2. 남은 은닉재산과 그간의 이자는?

    16년간 미납한 1672억 원에 법정이자율 5%만 적용해도 이미 원금보다 많은 1700억 원 내외에 달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듯 현행 법 체계는 형사 추징금에 대해 이자를 징수하지 않는다. 이들 재산을 긴 시간 운용하며 벌어들였을 투자 수익이나 사업 이익은 손댈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전두환 일가가 지금껏 추징금 납부를 미뤄온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더욱이 1995년 검찰이 내란죄 혐의 등을 수사할 때 전 전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받았다고 추정한 정치자금 규모는 9500억 원에 달한다는 게 당시 수사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때 전 전 대통령은 대부분 통치자금으로 썼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2205억 원 정도만 남았을 것이라고 판단해 추징금을 결정했다. 그러나 썼다고 주장한 자금 중 상당액이 여전히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 쟁점 3. 향후 수사는?

    전격적인 자진 납부 발표에도 여론은 싸늘하다. 한국갤럽이 9월 9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징금을 완납한 이후에도 검찰의 은닉재산 수사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견해가 68%에 달했다. ‘중단돼야 된다’는 견해는 25%에 그쳤고, 7%는 의견을 유보했다. 모든 연령층에서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으나, 특히 40대 이하에서는 10명 중 8명이 계속 수사를 지지했다.

    검찰의 공식 견해도 확고하다. 추징금 납부와 관계 없이 “현재까지 드러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것. 아들들과 처남 이창석 씨의 조세포탈 및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한 수사는 물론, 이들의 해외 재산도피 의혹도 마찬가지다. 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재용 씨의 경우 처가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 샀다는 고급 빌라, 재만 씨가 장인 이희상 회장과 미국에서 운영 중인 와이너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수사가 지금까지처럼 강도 높게 이어질지는 회의적이다. 이미 검찰 측은 9월 10일 당일 “자진 납부 결정 등 여러 정황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것. 사법처리가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을 공산이 커 보이는 이유다. 향후 재판이 열리게 돼도 자진 납부 사실이 주요 정상참작 사유가 되리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전망. ‘관행’이 그렇다는 것이다.

    # 쟁점 4. 국립묘지 안장과 경호문제

    전 전 대통령 측의 자진 납부 발표에 9월 4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납부 발표가 결정적 구실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2002년 전립샘암 수술을 받은 후 계속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은 국립묘지 안장을 희망해왔고, 이를 위해 추징금 납부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현행법상 이들의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국민 여론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그간의 중론. 자진 납부로 이들이 과연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을지가 다음 쟁점으로 떠오른 이유다.

    현재 국회에는 이와 관련해 법률안 두 개가 제출돼 있다. 7월 27일 김영환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일정 금액 이상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묻히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6월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현재까지 계류 중인 개정안은 아예 내란죄 등의 경우에는 사면·복권 후에도 묻힐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징금 납부를 완료하면 김영환 의원의 개정안은 효력이 없어지지만, 진성준 의원 개정안은 여전히 이들의 ‘영면’을 막아 설 수 있다.

    이와 함께 국회에는 추징금을 미납한 전직 대통령의 경찰 경호 중단을 골자로 하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개정안도 올라와 있다. 두 사람은 1997년 대법원 선고 이후 비서관과 운전기사, 사무실 같은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됐지만, 경찰 경호만은 예외로 하는 조항에 따라 1년에 10억 원가량 비용이 드는 경호를 계속 받아왔다. 역시 두 사람이 추징금을 완납하면 이 개정안도 효과를 상실하게 되지만, 김영환 의원 측은 “국민 정서와 국립묘지의 명예를 생각해 두 사안 모두 관련 법률의 새 개정안 마련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 쟁점 5. 다른 추징금 미납자들

    전 전 대통령 측의 자진 납부 발표 이후 검찰은 다른 고액 추징금 미납자에 대한 환수작업에 본격 임한다는 각오를 불태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7월 말 기준으로 미납 추징금 총액은 25조3558억9500만 원으로, 최근 5년간 환수한 추징금은 4747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8월 20일 미납 추징금 집행을 강화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미납 추징금이 가장 많은 사람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전 회장과 임원 5명은 2002년 분식회계 혐의로 23조300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현재까지 납부한 금액은 900억 원 미만이다. 해외 재산도피 혐의로 연대 추징금 1964억 원을 선고받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그의 비자금 관리인이었던 김종은 전 신아원 사장이 낸 돈은 불과 2억 원. 검찰 시선이 이들의 재산 은닉 여부에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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