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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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새 남편 가족과 동거 중

이탈리아, 혈연 벗어난 ‘제3 부모’ 등장 … 자녀 중심 가족법이 현대판 대가족 만들어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1-01-28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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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새 남편 가족과 동거 중
    #1 마르티나는 조부모가 모두 6명이다. 엄마 줄리아가 새 남편 파올로와 재혼하자, 파올로의 부모는 마르티나를 ‘손녀’로 맞아들였다. 마르티나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여동생 라우라와 같이 엄마와 살았다. 파올로도 초혼에서 낳은 남매 사라, 루카와 여전히 부자·부녀의 정을 나누고 있다. 사라와 루카는 엄마와 살지만 2주일에 한 번씩 주말을 아버지 파올로의 집에서 보낸다. 마르티나는 엄마의 새 남편뿐 아니라 주변에 딸린 친척 덕분에 가족의 테두리가 넓어졌다. 갑자기 가족이 된 사라, 루카와 함께 보내는 주말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츰 ‘남매’와 사이가 좋아졌다. 여름휴가 일부와 크리스마스 같은 가족 모임도 같이 보냈다. 아빠 조르조도 이혼 후 안나와 결혼해 새 가정을 꾸렸는데 몇 달 뒤면 둘 사이에 아기가 태어날 예정. 마르티나는 새 동생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계속 늘어나는 ‘확장된 가족’

    #2 안토넬라는 12년 전 이혼 후 외동딸 엘레나를 혼자 키웠다. 전남편 마리오는 재혼해 딸 페데리카를 얻었지만 몇 년 안 가 이 결혼도 파경을 맞았다. 엘레나는 열 살 아래인 이복동생 페데리카를 친동생 이상으로 다독거린다. 아빠가 새장가 갔을 때 배신감을 느끼던 딸을 지혜롭게 성숙시킨 건 안토넬라였다. 이제 열 살인 페데리카가 무용발표회에 나가면 안토넬라는 선물을 준비해 엘레나와 꼭 참석한다. 페데리카의 친엄마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3 초등학생, 중학생 남매를 둔 안젤라는 5년 전 이혼하면서 전남편과 완벽한 50대 50 공동양육을 선택했다. 엄마 집과 아빠 집에서 각각 일주일씩 번갈아 지낸다. 전남편 세르조는 재혼했는데, 새 아내에게 ‘아이들 아빠’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둘째가 요즘 들어 두 집을 번갈아 다니는 생활에 지친다고 짜증을 낸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안젤라는 찡한 마음을 거둘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유형의 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보통 이를 ‘확장된 가족(famiglia allargata)’이라 부른다. 이혼이 빈번해지면서 아이 딸린 이혼녀와 이혼남이 자연스레 동거, 재혼하는 일이 많아졌고, 가족 구성원 역시 늘어나게 됐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결혼-이혼-재혼-삼혼으로 이루어진 확장된 가족은 연예계에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저 가십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 형태가 됐다. 사회적 편견도 전혀 없다.



    확장된 가족이 많아진 것은 이혼이 늘어난 상황과, 이혼하더라도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사고가 복합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 가족법도 한몫한다. 이혼하면 부부가 완전히 연을 끊는 우리와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으면 좋든 싫든 평생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이탈리아 가정법원은 ‘부모가 이혼을 해도 부모 의무는 변함이 없다’는 원칙을 통해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기 때문. 통상 엄마와 살더라도 이혼한 아빠는 일주일에 몇 번, 시간을 정해 자녀를 방문해야 한다. 한 달에 몇 번은 주말을 같이 보내야 하며, 여름방학 중 일정 기간 바캉스를 함께 보내야 하는 등 만남 횟수를 가정법원 판사가 결정한다.

    엄마의 새 남편 가족과 동거 중

    이탈리아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드라마 ‘의사네 가족’의 등장인물들.

    자녀에 관한 결정도 부모가 공동으로 한다. 이런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재혼해도, 초혼에서 낳은 자녀와 지속적으로 만난다. 이뿐 아니라 친가, 외가 조부모와 손자 손녀의 관계도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즉, 부모가 이혼한 뒤에도 자녀의 모든 혈육관계는 불변한다. 엄마의 새 남편이나 아빠의 새 아내는 ‘제3의 부모’라는 어려운 자리를 맡게 된다. 그뿐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제3 고모, 이모, 삼촌, 사촌 등의 이름으로 새 가족 구성원이 된다. 호칭과 역할이 모호한 경우도 있는데, 보통 자연스레 서로 이름을 부른다.

    이런 사회 트렌드를 타고 최근 이탈리아 TV 드라마에서 ‘확장된 가족’을 다뤘는데,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 시청률 43%를 기록하며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드라마는 바로 ‘의사네 가족’. 6시즌에서 의사 마르티니는 재혼에 실패한 후 딸 하나를 둔 비앙카와 사랑에 빠진다. 현재 치네치타에서 촬영 중인 7시즌은 비앙카와 딸이 이미 5명의 자녀를 가진 닥터 마르티니 가정에 들어와 ‘확장된 가족’을 이루는 스토리로 전개될 예정. 1998년 첫 시즌에서 1남 2녀를 둔 홀아비 의사 마르티니가 등장했고, 2시즌에서 재혼해 쌍둥이를 얻은 바 있다. ‘확장된 가족’으로 대변되는 변화무쌍한 이탈리아 가족상을 시대감 있게 조명하는 7시즌은 2011년 3월 국영방송 ‘RaiUno’에서 방영된다.

    하지만 확장된 가족이 늘 핑크빛인 것은 아니다. 로마 국립대 안나 올리비에로 페라리스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제3 부모’에서 “복잡하게 확장된 가족관계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재혼한 부부의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확장된 가족이 형성된 직후부터 부부보다는 자녀 중심으로 새 가족에 적응하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의 기대감과 환상이 가족 분쟁으로 역전하지 않으려면 재혼 부부의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자녀의 연령대와 성격에 따라 적응의 난이도는 달라진다. 중요한 사실은 누구라도 새 가족에게서 소외감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가족 내 규율과 규칙, 역할 분담은 처음부터 명백히 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원칙은 없지만 친부모는 보통 자녀를 꾸중하거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제3 부모는 삼촌이나 고모, 이모처럼 한발 물러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즉 친아빠, 친엄마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편 또는 아내의 자녀에게 신뢰를 받는 것이다.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확장된 가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포용력 있는 열린 마음이 혈연보다 더 진정한 가족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 가톨릭계는 확장된 가족에 대한 지지를 두고 “결혼 실패에 대한 잘못을 덮으면서 마음 편히 재혼해 살려는 변명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확장된 가정이 자녀들을 망친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또 이혼과 사실혼은 전통 가정에 대한 위협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바티칸’의 이런 견해에 대해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전통 가정의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답한다.

    초혼은 줄고 이혼과 재혼은 급증

    하지만 실제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가톨릭계 보수 정치인들조차 확장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회의장을 지낸 현 민주가톨릭 연합당(UDC) 당수 피에르 페르디난도 카지니인데 그는 이혼 후 동거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얻어 가톨릭계의 큰 비난을 받았다. 특히 카지니가 ‘사실혼을 정식혼과 같이 법적으로 동등화하자’는 정책이 거론됐을 때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던 전력이 있어 여론의 질책이 더욱 거셌다. 현 하원 의장인 장프랑코 피니도 이혼 후 사실혼 관계에 있을 때 두 딸을 얻었다.

    이런 가톨릭계의 우려에도 초혼은 줄고 이혼과 재혼은 급성장세다. 2011년 1월 20일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2010년 초혼은 제2차 세계대전 폭격 속에 있던 1944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21만5000쌍이 결혼해 최근 100년간 가장 낮은 결혼율을 기록한 반면, 재혼은 13.8%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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