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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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자연사 박물관’ 겨울 철새 날아가고…

경남 창녕 우포늪 생태탐방로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1-28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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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자연사 박물관’ 겨울 철새 날아가고…
    겨울엔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밖에 나가 걷다 보면 귀와 코끝이 시려 빨리 실내로 들어가고 싶다. 올겨울은 더 추웠다. 영하 20℃ 가까이 내려가는 기온과 칼바람, 폭설 때문에 5분 이상 걸어본 적이 있는지 가물거릴 정도다. 어느덧 몸 여기저기에서 두툼하게 살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가벼운 걷기 등으로 몸을 움직여야 살찌는 것을 예방하고 유연성과 근력을 기르며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꽁꽁 언 것은 몇십 년 만의 일

    그런데 겨울철 걷기는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 많다. 추위로 몸이 굳어진 상태라 너무 오래 거친 길을 걸으면 관절과 근육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겨울철 걷기 코스로 추천을 받은 곳이 경남 창녕 우포늪 생태탐방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우포늪의 둘레를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면 되는 코스이기 때문. 게다가 우포늪은 대표적인 겨울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아이고예. 와 요즘 같을 때 왔노. 우포늪이 꽁꽁 얼어붙었다카이.”

    1월 21일 어스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녘, 우포늪을 찾았다. 그런데 ‘늪’ 하면 떠오르는 짙푸른 수생식물도 보이지 않고, 곤충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겨울이면 거대한 군락을 이룬다던 철새도 자그마한 무리로만 눈에 띄었다. 눈앞에 펼쳐진 우포늪은 맑고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스케이트장 같았다. 얼음 두께만 15cm에 이른다고 했다. 장대 조각배를 타며 우포의 생물을 채취하고 더러운 이물질도 치운다는 ‘우포지킴이’ 주영학 씨는 “이렇게 우포늪이 꽁꽁 얼어붙은 건 몇십 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우포늪에는 겨울철 눈이 별로 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기자가 찾았을 때는 늪 주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우포늪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몇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풍경을 본다는 사실도 가히 나쁘진 않았다(한파가 지속되는 올겨울 내내 이런 모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코스 돌아보려면 3시간 필요

    창녕군 유어면과 이방면, 대합면과 대지면 일대에 우포늪은 낙동강 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생성된 자연 늪지로 약 2313㎢에 펼쳐져 있다. 여기서 잠깐. ‘늪’이란 과연 뭘까. 영화 등을 통해 각인된 늪은 어둡고 칙칙하며, 어디선가 악어가 튀어나올 것 같은 음침한 이미지다. 하지만 늪은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니기에 생물의 서식지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인 것은 물론 홍수를 막아주고, 물을 깨끗하게 하며, 지구 온난화를 예방한다. 일반적으로 물의 깊이가 6m 이하인 지역을 늪이라 부른다.

    1억4000만 년 전 한반도가 생성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포늪은 우포와 사지포, 쪽지벌, 목포 등 4개로 나뉜다. 현지인들은 우포를 ‘소벌’이라 부른다. 하늘에서 보면 모양새가 소를 닮았다는 설도 있고, 예전에 소가 이곳으로 와 풀을 많이 뜯어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1997년 환경부에 의해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1998년 람사르 협약(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각국의 협력으로 맺어진 조약)에 등록됐다. 2008년 한국에서 개최된 ‘람사르 총회’ 당시 우포늪은 공식 방문지로 지정돼 전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얼어붙은 ‘자연사 박물관’ 겨울 철새 날아가고…
    우포늪은 이른바 ‘자연사 박물관’으로 불린다. 태고부터 지금까지 명멸을 거듭하며 이어온 수많은 생물이 숨 쉬고 있는 ‘자궁’ 같은 공간이기 때문. 잎의 길이만 2~3m인 가시연꽃을 비롯해 부들, 마름, 창포 등 수생식물(水生植物)과 수서곤충(水棲昆蟲·성충 또는 유충의 상태에서 물속에 사는 곤충), 어류, 조류 등을 합쳐 총 1500여 종의 동식물이 이곳에 서식한다.

    우포늪 생태탐방로에 들어서기 전 우포늪 생태관(www.upo.or.kr)에 들러 사전지식을 쌓는 게 좋다. 늪에 대한 설명과 늪에서 사는 동식물 표본, 모형 등이 전시돼 있고, 우포늪의 사계를 3D 영상으로 체험하는 공간도 있다. 안내 데스크에 요청하면, 해설사가 우포늪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탐방로는 생태관에서 시작된다. 코스는 도보 30분, 도보 1시간, 도보 2시간, 도보 3시간 4가지가 있는데, 기자는 우포늪을 전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3시간 코스를 걷기로 했다. 생태해설사이자 시인인 김군자 씨가 함께했다. 생태관에 요청하면 누구나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로를 걸을 수 있다. 창녕의 한 병원에서 15년 동안 일하며 온갖 만성질환을 앓았다는 김씨는 “하루에 한 번씩 우포늪을 걷기 시작한 후, 모든 질환이 눈 녹듯 사라졌다”며 방긋 웃었다.

    생태관에서 나와 탐방로를 따라 내려가면 정면에 우포가 보이고 두 갈래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대대제방이, 왼쪽으로 가면 우포전망대가 있다. 기자는 왼쪽 길로 갔지만, 어느 쪽으로 돌든 큰 차이는 없다.

    우포늪은 겨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따오기,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같은 천연기념물과 댕기물떼세, 큰부리큰기러기, 가창오리 등이 이곳을 찾는데, 수만 마리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진작가들이 겨울에 이곳을 찾는 이유는 화려한 새의 군무(群舞)를 보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철새가 많지 않았다. 김씨는 “우포늪이 두껍게 얼어붙으니, 늪의 수면 위에서 먹을거리를 찾던 새들이 낙동강 등 다른 곳으로 떠났다”며 “그래도 물살이 세 얼음이 얼지 않거나 얇게 언 곳은 새들이 무리 지어 있다”고 전했다.

    길을 따라 20여 분 걷자 따오기 복원센터가 나왔다. 따오기를 복원해 100여 마리를 자연에 방사하는 것이 이곳의 목표다. 동요에도 나올 만큼 우리에게 친숙했던 따오기가 멸종 위기에 처한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따오기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 주로 농지 근처에서 먹을 것을 찾았는데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농약을 친 것이 화근이었다. 엄청난 수의 따오기가 그 농약을 먹고 죽어버린 것. 자연생태계를 훼손하긴 무척 쉬워도 다시 가꿔나가긴 어렵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찬바람 속 고즈넉한 아름다움

    얼어붙은 ‘자연사 박물관’ 겨울 철새 날아가고…
    우포를 오른편에 두면서, 억새와 갈대가 무척 아름다운 사초군락과 목포제방을 지나 쭉 걸어가니 이 지역 사람들이 사는 소목마을이 나왔다. 지역민들은 장대 조각배를 타며 우포의 어류 등을 잡고, 습지의 물을 빼 만든 경작지에 마늘, 양파 등을 재배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최근 가장 큰 수익은 건강식품인 잉어즙과 붕어즙에서 나온다고 한다.

    소목마을을 지나면 길을 따라 주매제방과 사지포제방, 대대제방이 이어진다. 이렇듯 우포 탐방로에는 제방이 무척 많다. 이런 제방은 과거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우포의 늪을 경작지로 만들기 위해 쌓은 것이다. 실제로 이 지역의 경작지 대부분은 한때 늪이었다. 탐방로 막바지에 있는 대대제방은 우포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겨울 철새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일몰이 특히 장관이다.

    탐방로 시작점이었던 생태관에 다시 다다르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오전 10시에 출발했으니 4시간 정도가 걸린 셈. 그런데 우포늪 탐방로는 ‘누가 더 빨리 걸어 도착하나’를 경쟁하는 길이 아니다. 걷기로만 따지면 밋밋하기 그지없는 코스다. 하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늪의 수많은 생물이 내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쉬어 가는 것도 좋다.

    우포늪은 사계절이 확연히 다르다. 봄에는 자줏빛 자운영이 피어나며 개구리밥이 물 위로 올라오고, 여름엔 수생식물이 마음껏 자태를 뽐낸다. 특히 수생식물이 뒤덮은 늪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가을엔 갈대와 억새의 갈색빛, 은빛 물결이 눈앞에 펼쳐지고, 겨울엔 수많은 철새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봄과 여름, 가을에 이곳을 자주 찾는다. 김씨는 “몇몇 사람은 겨울 오포는 볼 것이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고즈넉한 우포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기자의 생각 역시 비슷했다.

    화려한 수생식물도, 시끄러운 벌레 소리도, 억새의 은빛 물결도 없었지만, 모든 게 사라진 후 홀로 남은 우포늪도 매력적이었다. 연극이 끝난 뒤의 무대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곳의 모든 것은 사라진 게 아니다. 늪 밑 또는 주변 뭍에서 1500여 종의 생물이 다가올 봄에 활짝 피어나기 위해 조금 움츠리고 있을 뿐. 꼼지락꼼지락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네 인생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 Basic info. ]

    교통편

    서울에서 가려면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호법IC까지 가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여주에서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선 뒤 창녕IC로 빠지면 바로 우포숲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서울에서 4시간여 걸린다.

    도보 코스

    얼어붙은 ‘자연사 박물관’ 겨울 철새 날아가고…
    1) 30분 코스 - 생태관 → 전망대 → 숲탐방로 1길 → 생태관

    2) 1시간 코스 - 생태관 → 대대제방 → 전망대 → 숲탐방로 1길 → 생태관

    3) 2시간 코스(목포늪 둘레 탐방) - 소목마을 주차장 → 숲탐방로 3길 → 목포제방 → 우만제방 → 왕버들군락 → (사)푸른우포 사람들 → 소목마을 주차장

    4) 3시간 코스(우포늪 둘레 탐방) - 생태관 → 대대제방 → 사지포제방 → 소목마을 → 사초군락 → 전망대 → 생태관(반대로 걸어도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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