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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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직면한 러시아, 무자녀 세금까지 고려

코로나19 팬데믹·우크라이나와 전쟁 영향… 연평균 50만 명 감소 전망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5-2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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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사상 초유의 인구 절벽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은 크렘린궁에서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크렘린궁 제공]

    러시아는 사상 초유의 인구 절벽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은 크렘린궁에서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크렘린궁 제공]

    “8명 이상 자녀를 낳자. 대가족이 표준이다. 인구를 늘리는 것이 향후 수십 년간 우리 목표가 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자 과거 대가족 전통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인구가 3억 명에 달하는 ‘인구 대국’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2660만여 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1991년 소련이 15개국으로 분리되면서 러시아는 경제 혼란 등을 겪었고, 출생률이 곤두박질치며 인구가 대폭 감소했다. 오늘날 러시아는 더는 인구 대국으로 불리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저출산 문제에 따른 인구 감소로 자칫하면 러시아 국력이 크게 약화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인구 증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1944년 옛 소련 정부가 제작한 출산 장려 포스터. [러시아 정부]

    1944년 옛 소련 정부가 제작한 출산 장려 포스터. [러시아 정부]

    ‘인구 보존’ 목표로 설정

    푸틴 대통령은 3월 대선에서 5선에 성공해 2030년까지 집권한다. 그는 5월 7일 취임식을 열고 가장 먼저 추진할 국정 과제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30년까지 구매력평가(PPP) 기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을 세계 4위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이어 6년간 새 임기의 국정 과제를 담은 ‘국가 발전 목표에 관한 대통령령’(5월 법령)에 서명했다. 이 법령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첫 번째 목표는 ‘인구 보존과 건강 강화’를 통해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6명으로, 기대수명을 78세로 늘리는 것이다.

    러시아는 말 그대로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에 직면했다. 인구절벽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국가나 구성원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인구 분포가 마치 절벽이 깎인 것처럼 역삼각형 분포가 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 인구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4년간 정상적인 수준보다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0~2023년 러시아 인구는 정상적인 인구 감소 수준보다 190만~280만 명 더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러시아 인구 감소를 가속화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코로나19로 38만8000명이 사망했다고 공개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실제 사망자가 120만~160만 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850~1100명 수준으로, 전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부채질한 다른 원인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려고 해외로 도피한 러시아인이 50만~1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많은 인구가 단기간에 빠져나가면 다른 인구학적 문제가 없더라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며 “러시아가 인구학적 감소의 악순환에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러시아군 전사자와 부상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5월 7일 러시아군 사상자가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47만6460명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정부는 정확한 사상자를 밝히지 않았지만,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러시아군 30만~45만 명이 사망했거나 부상했다고 본다.

    주목할 점은 러시아의 합계출산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연간 출생아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러시아의 합계출산율은 2016년 1.8명에서 2021년 1.49명, 2022년 1.42명으로 줄었다.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2.05~2.1명이어야 한다.

    러시아의 연간 출생아 수는 2014년 194만3000명을 기록한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는 127만 명으로 200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은 출생아 수가 2024년 117만2000명, 2025년 115만3000명, 2026년 114만3000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욱이 미국 등 서방 각국의 제재로 일자리를 잃은 엘리트 중산층은 물론, 젊은 엄마들이 외국으로 원정출산을 떠나 그대로 눌러앉는 등 이민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5월 1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주 보우찬스크에서 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불타는 건물을 뒤로한 채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5월 1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주 보우찬스크에서 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불타는 건물을 뒤로한 채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인구수 세계 9→15위 전망

    러시아의 합계출산율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이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한 병력이 25만~30만 명 정도일 것이라고 본다. 푸틴 대통령은 3월 31일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부족한 병력을 메우고자 15만 명을 추가로 징집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에도 13만 명을 징집했다. 러시아 남성은 모두 18세부터 1년 동안 군 복무를 하거나 고등교육기관 재학 기간에 상응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독일 통계 전문 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러시아의 현역 군인은 132만 명, 예비군은 200만 명이다. 러시아 의회는 징집 상한 연령을 기존 27세에서 30세로 높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올해 1월 1일부터 발효됐다.

    모스크바 인구통계연구소는 이렇게 많은 병력이 전쟁에 투입되면 합계출산율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올해 전쟁이 계속될 경우 러시아의 합계출산율이 1.2명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 가이다르 경제정책연구소의 인구학 전문가인 이고르 예프레모프 연구원은 “남자가 없으면 성관계도 없고, 아기도 없다”며 “이는 출생아 수가 감소하는 아주 간단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러시아의 출산율 감소와 인구 위기는 구조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인구는 1993년 1억49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향세를 보여왔다. 유엔에 따르면 러시아 인구는 2023년 기준 1억4444만 명으로 세계 9위다. 유엔은 러시아 인구가 지금 같은 속도로 감소한다면 2050년 1억2000만 명으로 줄어들어 세계 15위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연방통계청도 낮은 출산율 탓에 인구가 2046년에는 1억3880만 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전망에 따르면 러시아 인구의 자연적 감소는 연평균 50만 명이 될 것이고, 총인구는 2046년까지 760만 명이 줄어들게 된다. 이 경우 1981년 이후 최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민의 기대수명도 크게 높아지지 않고 있는 데다, 남성의 기대수명이 여성보다 훨씬 낮다. 남성의 기대수명은 2022년 67.6세, 2023년 69.5세인 반면, 여성은 2022년 77.8세, 2023년 79.3세다. 러시아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2022년 72.7세, 2023년 74.8세다.

    러시아가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목표대로 세계 4위 경제대국이 되려면 인구 증가가 필수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극도로 어려운 인구통계학적 상황을 맞았다”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에 일하는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낙태 금지 검토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대가족 지위를 강화 및 지원하는 법에 서명하는 등 인구 증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아이가 3명 이상이면 대가족 지위를 부여하고, 첫째가 18세나 23세(대학 진학 시)가 될 때까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한다. 또 대가족의 자녀들은 택시를 제외한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급식과 교복도 무상으로 지원받는다. 6세 미만 어린이의 처방약도 무료다. 3명 이상을 출산한 여성은 연금을 공식 퇴직 연령보다 3년 먼저 수령할 수 있으며 해고 방지, 세금 공제, 주택 자금 우대 같은 혜택도 받는다. 대가족은 박물관 등 국가 시설에도 공짜로 입장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에는 10명 이상 아이를 낳아 양육한 여성에게 금·다이아몬드로 만든 ‘어머니 영웅’ 훈장과 100만 루블(약 1500만 원) 포상금을 수여하는 옛 소련 시절 제도를 부활시켰다.

    러시아 정부는 ‘무자녀 세금’ 부활도 검토하고 있다. 무자녀 세금은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인구가 크게 줄어들자 1941년 도입했던 제도로, 자녀가 없는 20∼50세 남성과 20∼45세 기혼 여성은 임금의 6%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1991년 폐지됐던 이 제도까지 부활시키려는 것은 그만큼 인구 감소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와 함께 낙태 금지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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