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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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24인조 소녀들 ‘트리플에스’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05-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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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플에스(tripleS)가 24인조 완전체 앨범 ‘ASSEMBLE24’를 선보였다. [트리플에스 공식 X(옛 트위터 계정)]

    트리플에스(tripleS)가 24인조 완전체 앨범 ‘ASSEMBLE24’를 선보였다. [트리플에스 공식 X(옛 트위터 계정)]

    24인조. 조금은 황당한 숫자다. 트리플에스(tripleS)의 ‘ASSEMBLE24’는 첫 24인조 ‘완전체’ 앨범이다. 2022년 첫 유닛 음반을 발매한 이 걸그룹의 유별난 구석은 차고 넘친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포토카드, 팬 투표 기반의 유닛 결성, 그간 8팀의 유닛 발표 등 참신하다면 참신하고, 기이하다면 기이하다. 이 앨범과 타이틀곡 ‘Girls Never Die’에서 이들이 특이함 그 자체를 넘어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뮤직비디오 역시 특이하다. K팝이 자주 종말론적 웅장함을 보여줬다면 이 곡은 재해대피소와 묘지에 봉제인형이나 고데기, 파스텔톤 액세서리를 나란히 세운다. 자살을 연상케 하는 장면과 병리적 심리의 표현, 쓰레기가 산적한 방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 어느 것도 신화적이지 않다. 인물들은 국철 1호선 온수역 플랫폼을 달리고 컵라면으로 연명한다. 서브컬처로, 결핍으로, 정신적 위기로 내몰린 소녀들의 세계에는 죽음이 늘 공기처럼 떠다닌다. K팝의 팬시화 렌즈에 담아낼 수 있는 한계선까지 밀어붙인 절망의 표현이다. 가사가 짙은 화장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예쁘장한 사진 필터 효과가 자기혐오의 발로라고 짚어버릴 때 이 비일상적 암울은 자극적인 장식으로서 무대장치가 아닌 리얼리즘이 된다.

    그래서 곡 중반, 환영 같은 브레이크가 1990년대풍의 뽀얀 필터 효과를 과장해 군무를 비출 때면 끔찍한 시대에 소녀들이 마지막으로 매달릴 환상이 아이돌이라고 폭로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시선은 냉소적이지 않다. 멤버들은 텐트가 널브러진 대피소에서 춤추고 자신을 꾸미며 그것을 기록한다. 몸짓은 캄캄한 배경 속 검은 의상을 입은 24인조의 군무에 쏟아지는 역광으로 이어진다. 이 소름 끼치는 대형미는 24인조 아이돌이라는 존재와 그 이유를 압도적으로 입증하고야 만다. 또한 파멸적인 세계관과 아이돌의 만남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느긋한 템포에 R&B적 색채가 흐르는 사운드는 우아해서 그로테스크하다. ‘죽지 마’ ‘울지 마’가 반복되는 절박한 가사에도 보컬은 그저 묵묵히 걸어가며 노래만 하는 듯한 처연함을 유지한다. 끔찍한 세계일수록 춤추는 뮤직비디오와도 같은 결이다. 그 정점이 ‘라라라…’로 흐르는 리프레인에 맺힌다. 시대를 관조하는 듯한 거리감으로, 또는 세계에 무너지지만은 않는 낭만적 단단함으로 말이다. 울림이 얇은 음색, 꾸밈없이 대화하는 듯한 발성이 흐드러지다가 다부진 냉정과 교차할 때 그 목소리는 더욱 현실적인 ‘소녀’처럼 들리고, 그래서 더 의미심장한 울림을 준다.

    24명이라서 가능한 아름다움

    영상은 내내 한껏 불길하게 추락하기만 하는 까마귀를 보여준다. 그러다 영상 후반 각기 한 쪽씩 검은 날개를 단 두 소녀가 손잡은 채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 이를 때 곡은 가장 과감한 메시지를 던진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갖는 게 아니라, 극한의 절망 자체를 희망으로 삼는 것, 그리고 그 열쇠로서 ‘서로’를 말한다. 트리플에스는 이전부터 ‘거리에서 춤추고 틱톡을 하는 소녀들’로 대표되는, 말하자면 ‘K팝 리얼리즘’으로 동시대성을 추구했다. ‘Girls Never Die’는 이를 가장 암울한 곳까지 끌고 내려가 터널 속을 지나는 현실을 향한 용기와 위로를 시도하며, 미학적으로도 하나의 완성형에 도달한다. 무대에서 넘칠 법도 한 24인조라는 ‘특이한 시도’는 여기서, 24명이 모여야만 가능한 아름다움과 단단함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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