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강습상륙함 ‘트리폴리’. [사진 제공 · 미 해군]
미국의 對中 전략 포석, 실험적 항모
미 해군 강습상륙전단 모습. [사진 제공 · 미 해군]
라이트닝 캐리어는 미 해군이 실험적으로 도입한 새로운 항모 개념이다. 현재 11척 체제인 항모 전력으로는 중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시도다. 미 해군의 강습상륙함은 통상적 임무에서 헬기 30여 대와 수직이착륙 전투기 6대, 1000명 안팎의 해병대 병력을 태우고 움직인다. 여기에 샌안토니오급이나 위드비 아일랜드급 상륙함 한두 척이 붙어 상륙준비전단(ARG)을 구성한다. 전투함도 추가돼 함대 규모가 커지면 원정타격전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번에 동북아시아에 전개된 트리폴리함은 헬기와 해병대 병력 대신 F-35B 전투기만 탑재한 경(輕)항모로서 임무를 맡았다.
트리폴리함이 이와쿠니에서 실은 전투기는 5월 17일부로 완전운용능력(FOC)을 갖춘 제242해병전투공격비행대(VMFA-242)와 이미 완편된 제121해병전투공격비행대 소속 F-35B다. 이들 비행대는 2020년 미 해병대 편제 개편에 따라 F-35B 12대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비행대에서 차출된 기체 20대가 트리폴리함에 탑재돼 라이트닝 캐리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트리폴리함은 길이 257m, 폭 36m, 만재배수량 4만5000t의 거함(巨艦)이지만 F-35B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가장 많이 탑재해봐야 20대가 한계다. 부족한 함재기 탑재 수량을 보완하고자 미 해군은 제7함대의 샌안토니오급 도크형 상륙함을 기존 한 척에서 두 척으로 늘렸다. 이 중 한 척이 라이트닝 캐리어와 함께 움직여 해상작전헬기 발진 플랫폼으로 사용되도록 편제를 바꿨다.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 설계는 기존 와스프급과 달리 공기부양정 탑재를 위한 공간인 웰덱(well deck)을 없애고 항공기 운용 능력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태생 자체가 상륙함이다 보니 함재기 운용 능력이 덩치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이전 세대의 수직이착륙 전투기였던 AV-8B 해리어 II+는 길이 14.12m, 폭 9.25m, 높이 3.55m, 최대이륙중량 14.1t 수준이었다. 아메리카급에 20대 이상 탑재해도 헬기 몇 대 정도는 더 실을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F-35B는 해리어 II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길이 15.6m, 폭 10.7m, 높이 4.36m에 최대이륙중량은 해리어 II의 2배에 가까운 27.2t으로 늘어났다.
비행갑판 주기(駐機), 사고 위험↑
영국 해군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에서 이륙하는 F-35B. [뉴시스]
길이 257m, 폭 36m에 달하는 광활한 비행갑판에 전투기를 꽉꽉 채워 싣는 것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행갑판의 정확히 절반은 ‘주기(駐機)’가 불가하다. F-35B는 수직이함할 경우 무장 탑재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단거리 활주로 이륙해야 한다. 최소 활주거리는 180m이고 내부 무장창에 공대공미사일 2발과 폭탄을 창작하면 활주거리는 230m 이상으로 늘어난다. 갑판의 절반은 활주용으로 비워둬야 하는 것이다. 배의 아일랜드(island: 항모의 함교) 앞뒤 공간에 최대 10여 대를 주기할 수 있긴 하다. 다만 아일랜드 전방 공간에 전투기를 주기하면 이함 중인 전투기의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해군의 퀸엘리자베스 항모에서 단거리 활주로 이함하던 F-35B가 추락했다. 함교 전방에 주기된 다른 전투기에 씌워 놓은 방수 커버가 날아와 전투기의 공기흡입구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비행갑판 활주로 측면에 전투기를 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비행갑판에 상시 주기된 전투기의 수명과 작전 능력이 줄어드는 점도 문제다. 미국과 영국 해군의 운용 경험에 따르면 F-35B를 비행갑판 위에 오랜 시간 주기할 경우 직사광선·염분 등의 영향으로 스텔스 코팅이 손상됐다. 전투기의 위장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스텔스 도료를 재도색하는 비용 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CATOBAR(Catapult Assisted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 방식의 정규 항모로 설계된 프랑스의 샤를 드골급은 아메리카급보다 함선 크기는 작지만 격납고 면적(4002㎡)은 1.5배 이상 넓다. 이 격납고에 라팔 전투기 18대와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2대, 해상작전헬기 4대를 수용할 수 있어 평소 비행갑판 위에 전투기를 빼곡하게 세워놓을 필요가 없다.
미 해군·해병대는 이런 문제 때문에 원거리 작전, 무력시위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갑판 위에 전투기를 빼곡히 세워놓지 않을 것이다. 즉 실제 작전 중인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에 F-35B 24대를 모두 탑재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트리폴리함 역시 동중국해와 필리핀 일대, 멀어도 남중국해까지 항해할 것이므로 F-35B는 최소 수량만 탑재해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F-35B를 이와쿠니 기지로 수시로 오가게 하면서 직사광선이나 해풍 노출에 따른 기체 손상도 최소화할 것이다.
미국이 여러 제약과 한계에도 라이트닝 캐리어를 운용하려는 이유는 뭘까. 미군 측에 라이트닝 캐리어의 능력은 딱 그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1척의 슈퍼 캐리어(super carrier: 배수량 7만t 이상인 대형 항모)를 보유한 세계 최고 항모 대국이다. 최근 미 해군이 의회에 슈퍼 캐리어를 12척으로 늘려달라고 공식 요청하는 등 더 많은 항모를 운용할 가능성도 있다. 라이트닝 캐리어의 임무는 정규 항모를 굳이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함대 방공 지원이나 국지적 분쟁 개입 등 저강도 작전 투입이다. 라이트닝 캐리어에 탑재되는 F-35B는 F-35 시리즈 가운데 전투 행동 반경과 무장 탑재량, 기동성 등이 가장 떨어진다. 그럼에도 항모에서 발진하는 E-2D 조기경보통제기의 지원과 전단 소속 전투함의 토마호크 미사일 등 다른 타격자산 보조 덕에 부족한 성능을 커버할 수 있다.
4만t급 규모에 함재기 20대 탑재 어려워
한국형 항모전투단 개념도. [사진 제공 · 해군]
한국형 항모에는 조기경보기가 없다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군 당국은 육상 발진 조기경보기와 연동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항모는 기본적으로 먼바다에 나가 항공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조기경보기 ‘피스아이’ 4대와 추가 도입할 2대로는 대북 초계임무 수행도 벅차다. 작전-정비-훈련 순환 체계에 따라 밤낮없이 운용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본토 방공 임무에 투입하기도 벅찬 조기경보기를 떼어내 먼바다의 항모전단 상공을 24시간 초계할 수 있을까.
영국이나 인도처럼 헬기에 대형 레이더를 붙여 ‘조기경보헬기’로 운용하자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면 조기경보헬기의 성능은 어떨까. 영국 조기경보헬기 ‘멀린 AEW’는 최대 4.5㎞ 고도까지 상승해 최대 275㎞ 거리까지만 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35의 센서보다도 못한 성능이다. 인도가 운용하는 Ka-31 AEW는 3.5㎞ 고도에서 최대
150㎞ 거리까지 탐지하는 수준이다. 정규 항모에 탑재되는 조기경보기 E-2D와 비교하면 고도는 절반, 탐지거리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과 인접한 중국이나 러시아의 중장거리 공대공미사일 사거리가 400㎞에 육박하는 시대다. 이 정도 성능의 레이더는 사실상 있으나 마나다. 최근 인도가 러시아와 Ka-31 AEW 10대 추가 구매 협상을 중단한 것도 이런 성능의 한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