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식 기자]
3월 24일 탈북자 출신인 최정훈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를 만나 현 북한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함경북도 청진의대 임상의학부를 졸업한 뒤 청진 철도국 위생방역소에서 전염병 대응을 전담하다 2012년 탈북, 한국에 들어왔다. 현재 고려대에서 북한 전염병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방역 야단법석, 확진자 없으면 하겠나”
북한 조선중앙TV가 2월 18일 코로나19 확대 전파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중국 우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 지난해 12월인데 올해 1월 22일 북·중 국경 차단 발표가 있었다. 문제는 그 전에 이미 두 달 정도 관광객, 무역업자, 인력들이 자유롭게 왕래했기 때문에 감염자가 충분히 발생했을 거라는 점이다. 북·중 접경지대는 외부로 통하는 숨통과도 같은 곳이다. 북한의 생필품 80%가 오가는 통로다. 그걸 차단했다는 건 그만큼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은 북한 현지와도 연락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현장 상황이 어때 보이나.
“일단 북한 전역에 확진자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호흡기 증상으로 죽은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공식적인 움직임만 봐도 북한 역시 방역에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보건당국이 비상방역대책위원회를 발족해 비상방역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내각 보건성 산하 당국자들이 방송 매체를 통해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은 물론, 증상이 의심되면 보건당국에 알릴 것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 나름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에도 확진자가 있다고 보나.
“북한은 2월 한 달 동안 북한 전역에 대한 강력한 이동 제한과 격리 조치를 통해 내부 감염 경로 등 역학조사 지도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역학조사를 통해 2월 24일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3000명가량 ‘의학적 감시자’가 나왔다고 한다. 주로 중국인 접촉자, 관광 가이드, 중국에 갔다 온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2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외교공관을 비롯해 무역일꾼 380명 등 북한 내부에 있는 외국인들을 격리 조치했고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나 생일잔치, 각종 회의 등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 3월 들어 이런 조치들은 부분적으로 해제됐으며 3월 6일 평양-블라디보스토크 정기항로도 다시 열렸다.”
그는 현재 “북한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의학적 감시자가 총 2만여 명에 달하는데 확진자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의학적 감시자’는 확진자와 다른가.
“북한식 표현인데, 한마디로 의심이나 증상이 있어 격리시킨 ‘격리자’를 말한다. 현재 평안남북도, 함경북도, 자강도를 중심으로 2만여 명에게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후 평안남도와 강원도, 자강도 내 의학적 감시자 3000여 명의 격리를 해제했다고 하는데, 평안북도에서 제일 먼저 격리자가 나왔다고 해놓고 이곳에 대한 해제 언급은 없어 이미 이곳에서 확진자가 나왔거나 내부적으로 확산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진단키트도 없이 진단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2월 12일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전염병 예방사업 관련 선전 보도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그렇다. 2월 중순과 말 두 차례에 걸쳐 국제적십자연맹(IFRC)에 진단키트를 공식 지원 요청해 진단시약, 방호복, 마스크를 지원받았다. 프랑스 국경없는의사회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해제 요청에 따라 구호물자를 보낸 상태다. 언급한 대로 그 전에 확진자가 없다고 공식 선언했는데, 그렇다면 진단시약이 들어가기 전에 확진자가 없다고 발표했다는 건지 도통 믿을 수가 없다. 북한은 아마 체제 특성상 이번 사태가 끝날 때까지 ‘환자 제로’라고 우길 거다.”
북한 의료 상황은 어떤가.
“솔직히 기본 폐렴도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호흡기 증상으로 죽었다 해도 일반 폐렴 때문인지, 코로나19 때문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해마다 홍역, 수두, 인플루엔자, 백일해 등 각종 전염병이 돌아 전염병에 만성화돼 있다. 코로나19라고 특별히 무서워하거나 두려움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보면 된다. 전염병 대응의 경우 어떻게 보면 평소에도 이동 제한이 엄격한데 이번 일로 ‘역학 확인서’가 있어야 이동이 가능해 더 엄격해졌다고 보면 된다. 상대적으로 전염병 대응 차원에서는 통제가 쉽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체제 불안정 요소가 될 수도 있나.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한 탈북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사자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북·중 국경 차단으로 생필품이나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당장 정권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으로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땐 정말 흉흉했다. 북한은 남한과 국제사회에 타미플루를 지원 요청해 50만 명분을 지원받았다. 당시엔 전염병도 전염병이지만 2009년 11월 30일 단행한 화폐개혁 실패가 결정적으로 민심을 악화시켰다. 중앙당 재정경리부장이 총살당하는 일까지 있지 않았나. 장마당 경제가 파괴돼 돈도 없고 물자도 없는 상황에서 신종플루까지 더해지다 보니 북한으로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던 거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북한 나름대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 북한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2003년이었다. 8개월가량 북·중 국경을 차단하고, 철도와 육로를 비롯한 모든 교통을 통제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처럼 역학 확인서를 소지해야 이동이 허용됐다. 그때도 북한은 사스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사스도 그렇고, 코로나19 또한 중국발(發)이라 북한은 동맹 보호 및 외교적 차원에서 이번 사태가 끝날 때까지 환자가 없다고 할 거다. 다른 정보도 그렇지만 전염병 정보가 불투명한 데다, 특히 중국과 관계 때문에 발생 사례가 제로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또 내부적으로도 환자가 없다고 해야 결속에 도움이 된다고 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