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을 대표하는 서울 가락동 ‘헬리오시티’. [뉴스1]
다만 민심은 “과연 한국이 선진국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 의문의 근간에는 “한국이 선진국이 될 만한 ‘국격’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필자는 ‘선진국 담론’이 들끓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양’에서 ‘질’의 시대로, 그리고 그 너머 ‘격’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책 ‘격의 시대’를 쓴 김진영작가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접어드는 시점에 국민의 라이프스타일 등 생활의식과 사고체계가 큰 변화를 겪는다고 했다. 부동산 역시 ‘양의 시대’에서 ‘질의 시대’로 진입하며 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다가올 ‘격의 시대’ 징후들도 심심치 않게 포착돼 패러다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격의 시대 특징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형의 가치란 오랜 숙성과 축적의 시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누구나 인정하는 차원이 다른 품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격의 시대를 맞아 부동산 투자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는 부동산 ‘질의 시대’
과거 양의 시대를 대표하는 척도로는 ‘주택 보급률’이 있었다. “가구당 얼마나 많은 집이 공급됐는가”로 주거 수준을 측정하는 것이다. 건설된 주택의 유형은 무엇인지, 시공 품질이 어떠한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목표한 숫자만큼 건설만 하면 된다. 이 단순 척도로 성패가 갈리던 속도전의 시기가 바로 ‘양의 시대’였다. 2008년 주택 보급률은 100%를 달성했다. 그리고 어느덧 16년이 지났다. 단순히 양적으로 보면 주택이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여전히 주택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권마다 약속하는 ‘임기 내 수백만 채 주택 공급’은 부동산 정책의 단골 헤드라인이다. 주택 보급률 100% 시대에 ‘주택 부족’ 담론이 들끓고 있다는 것은 ‘양의 시대’를 떠나보내고 ‘질의 시대’ 한복판에 진입했다는 증거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장기 주거종합계획’에 따르면 주택 보급률 같은 양적 지표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다만 입주 30년 이상 된 고령 주택은 2010년 135만 채에서 2022년 449만 채로 3배가량 증가했으며, 빈집도 같은 기간 79만 채에서 124만 채로 빠르게 늘어났다. 이 기간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돌파한 후 3만 달러 중반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주거 질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지만, 개발 골든타임 실기로 ‘살고 싶은 집’이 감소한 탓에 신축 희소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 현재 신축 가치를 대변하는 말은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다. 그 대표 사례가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와 잠실동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다. 은마아파트나 잠실주공5단지를 보면 대단지 재건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설령 재건축이 진행되더라도 둔촌주공의 ‘공사 중단’ 사태가 시사하듯이 공사비 이슈로 제때 준공하기도 녹록지 않다. 이처럼 대단지 신축이 어렵다 보니 입지적으로 격차가 큰 ‘헬리오시티’와 ‘엘리트’이지만 국민 평형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국토연구원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저가 주택 군집지라도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이 촉진될 경우 고가 주택 군집지와의 집값 격차가 완화된다. 이 연구 결과는 대규모 신축의 입주 이벤트가 전통적 입지위계와 상관없이 해당 지역 전반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트렌드를 지지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질의 시대에 ‘틈새 기회 지역’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인근에 위치한 구축 단지다. 목동 신시가지 재건축 인근의 신월동 구축, 노량진 재개발 인근의 동작구 구축, 이문휘경뉴타운과 장위뉴타운 인근의 구축이다. 이곳들은 6억~9억 원대로 매입이 가능하면서 신축 개발의 후광 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투자처다.
주택 가치 복합적으로 따져야
요즘 분양 단지의 청약 성적을 살펴보면 같은 단지의 같은 평형이라도 평면, 조망, 방향에 따라 청약률이 크게 엇갈린다. 이는 주택 가치를 복합적으로 따지는 질의 시대의 특징이다. 톱상형보다 판상형이, 판상형 중에서도 3베이보다 4베이가 더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조망이 좋은 층수는 분양가가 수천만 원 비싸도 더 높은 청약 경쟁률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지방은 남향 선호 현상이 커 남향이 서향 대비 2배 넘는 청약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역세권’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돼 갈수록 풍성해지는 ‘N세권 사전’ 역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질의 시대를 상징한다. 질의 시대 부동산 상품성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얼죽신’이라면, 입지성을 대표하는 키워드로는 ‘얼어 죽어도 N세권’을 뜻하는 ‘얼죽세’가 있다.
향후 10년 대한민국 주거 전략의 대계인 ‘제3차 장기 주거종합계획’의 4대 정책 방향 중 하나가 바로 ‘4만 달러 시대에 맞는 미래 녹색 주거환경 조성’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도약이 ‘질의 시대’ 진입을 알렸다면, 4만 달러 진입은 ‘격의 시대’ 시작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질의 시대를 대표하는 ‘얼죽신’ ‘얼죽세’가 눈에 보이는 스펙에 대한 집착이라면, 격의 시대에는 무형의 가치가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주거종합계획에서는 4만 달러 시대와 녹색 주거를 연결했을까. 올여름 우리는 ‘뜨거워지는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미래라는 사실을 통감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지구와의 공존 시스템을 마련해야만 한다. 격의 시대에는 지속가능한 건강한 성장이 미덕이 될 것이다. 녹색기술로 건설된 저탄소 아파트가 인정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는 격의 시대로 가는 과도기다. 과도기에는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 이는 ‘그린 플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 정책과 기술에 대한 투자 증가로 나타나는 물가 상승 현상을 의미하는 그린플레이션으로 건설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시대 전환의 과도기에는 틈새 투자처가 탄생한다. 기후온난화가 심각해질수록 ‘저온지대’ ‘준해안가’ 같은 입지가 놀라울 정도로 격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영 작가는 격의 경험은 인간, 공간, 시간인 ‘3간’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격의 시대 부동산 3간의 가치는 어디서 올까. 아무리 신축이 좋다 한들 함께 사는 이웃이 불편하다면 ‘스위트홈’이 될 수 없다. 층간소음 분쟁, 경비원에 대한 갑질 등은 신축, 구축, N세권을 따지지 않고 발생한다. 함께 사는 입주민의 품위와 에티켓을 뜻하는 ‘민도’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다져진 아파트 단지 문화에 근간한다. 부동산 격의 시대에 인간과 맞닿아 있는 가치 잣대는 ‘민도’다. 지금 강남은 강북 명문고의 이전, 경부고속도로 건설, 테헤란로 조성, 서울지하철 2호선 개통 등으로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시간 흐름 속에 축적되는 평판은 도시의 격을 결정한다. 같은 N세권이라도 해당 역세권의 유동인구가 얼마인지, 해당 몰세권이 얼마나 고도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지, 같은 직주근접일지라도 관련 산업의 유망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그 도시의 평판과 부동산 가치가 엇갈리는 것이다.
활력 넘치는 지역에 수요 쏠릴 듯
부동산 격의 시대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사회에서 맞게 된다. 이때 부동산 가치 잣대는 ‘N세권의 평판’이다. 정부는 인구 감소 지역을 살리고자 ‘생활 인구’ 개념을 도입했으며, 최근에는 지역별 MBTI를 진단해 지역 맞춤형 회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액티브시니어는 요양시설이 아닌, 고품격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니어 레지던스로 몰리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교집합에는 바로 ‘활력’이라는 테마가 자리 잡고 있다. 격의 시대에는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부동산 수요가 쏠릴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자의 성패는 시대 전환의 파도를 미리 파악해 그 시류에 얼마나 능숙하게 올라타느냐에 달렸다. 격의 시대 3대 가치 잣대인 ‘민도’ ‘N세권 평판’ ‘활력’에 근간을 둔 부동산 투자전략은 다가올 부의 물결을 놓치지 않게 해줄 것이다.*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