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 4집 ‘세리머니’를 발매한 QWER(큐더블유이알). 쓰리와이코퍼레이션 제공
그런데 이들은 밴드이기도 하다. 또 기획 면에서 전통적 의미의 K팝 아이돌과 다소 거리가 있다. 기획자와 멤버 모두 인터넷 방송 팬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건 일본 서브컬처 팬덤과 가깝다. 음악 역시 J팝 영향권에 있다. 긴박감을 일으키는 굉음과 오밀조밀한 연주를 오가는 기타는 일본 컬리지 록 계보에 있는 듯하다. 더 정확히는 애니메이션 취향과 교차하는 것처럼 들린다. 세상에 소동을 일으킨다는 듯한 태도, 상처 앞에서도 굳센 마음을 표현하는 정서 등도 분명 그 언저리의 것이다. 친숙한 멜로디의 후렴이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핵심 구절을 선언하듯 떨구고 기타 연주로 넘어가는, 가슴 벅차게 하는 전개 방식도 그렇다.
사실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애니메이션, 게임, 음성합성 소프트웨어(보컬로이드) 등 일본 서브컬처 취향을 바탕으로 삼은 아티스트가 제법 많다. QWER 역시 그들의 일원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런데 정체성 이야기가 길어진 건 이 4인조 밴드가 최근 내놓은 미니앨범 4집이 눈에 띄게 K팝을 향해 선회하고 있어서다. 타이틀곡 ‘세리머니(CEREMONY)’가 신스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주보다 비트와 노래 흐름을 중심에 둔 전개, 여러 겹 보컬의 주고받음,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달콤한 멜로디 등이 다 그렇다. 꼬집어 말하자면 트와이스 데뷔 직후인 2016년 무렵 걸그룹 같다.
복합 정체성이 드러나는 흥미로운 순간
팬들이 이러한 새 옷을 낯설게 느낄 것이 염려됐을까. 이번 미니앨범 수록곡은 대부분 눈에 띄게 공격적인 록 사운드를 강조한다. 트럭에 치여 정신을 잃었더니 엉뚱한 세계에서 깨어났다는 서브컬처 클리셰를 전면에 내세운 뮤직비디오도 멤버들이 초심을 기억하고 있다고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K팝적인 ‘바니바니‘는 달달하면서 뾰족하지는 않아서 살짝 힘에 부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오랜 옷과 새 옷의 봉합이 원만치 않다. 그 탓에 5곡을 담은 미니앨범이 정규앨범보다 응집력이 약한 건 분명 큰 약점이다.하지만 음반 후반부에서는 가능성도 엿보인다. ‘아워 보이지(Our Voyage)’와 ‘파이오니어(PIONEER)’는 자신들의 원류에 단단히 뿌리를 둔 채 때론 구조적으로, 때론 장식적으로 K팝을 수용한다. K팝의 친근한 드라마틱함과 애니송 같은 탄성, 펑크계열 밴드의 시원스러움이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K팝식 브리지와 기타 솔로가 서로 다르게 감정을 고양하는 흥미로운 순간도 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던 이 음반은 기대감으로 마무리된다. 이건 복합적 정체성 속에서 성실하게 자신을 탐구하는 작업만이 들려줄 수 있는 순간들이라는 납득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