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력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표적 예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GETTYIMAGES
질병 위험 낮추는 과학
국내에서 진행된 전국 단위 역학조사 결과를 보자. 1촌 이내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는 사람은 대장암 발생 위험이 약 1.5배 높았다. 부모와 형제 모두에 대장암 환자가 있으면 그 위험이 2배 이상 치솟았다. 가족력이 질병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족력이 있다고 모두 해당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질병관리청과 국내 코호트 연구들은 혈압, 혈당, 지질, 흡연, 비만 같은 교정 가능한 요인을 관리할 때 발병 위험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족력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위에 쌓이는 위험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의학 학술지 ‘랜싯(Lancet)’에 실린 심혈관질환 예방 관련 연구 또한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가족력을 가진 집단의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조기 검진을 받게 한 결과 질병 발생 위험이 낮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암의 30~50%는 흡연, 음주, 비만, 신체 활동 부족, 감염 같은 요인을 관리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 빨리, 더 적극적으로 ‘예방 활동’이 가능하다. 즉 가족력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표적 예방의 출발점이다.
보건당국은 이 수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1차 의료기관이나 국가건강검진기관을 찾으면 부모와 형제자매의 암, 심근경색, 뇌졸중, 당뇨 등 병력을 표준화해 기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력이 확인되면 건강검진 시작 시기를 앞당기고 검진 주기 또한 단축해야 한다. 또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금연, 절주, 체중 관리, 운동 처방 등을 기본 패키지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가족력을 가진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부모의 병력을 낙인으로 여기지 말고 가족 전체가 습관을 바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덜 짜게 먹고, 더 많이 걷고, 더 일찍 검진받는 작은 변화를 누적할 때 가족력은 더는 운명이 아니다. 가족력은 확률이고, 보건학은 그 확률을 낮추는 과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