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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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제니, ‘젠(ZEN)’ 뮤직비디오 돌풍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5-02-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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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핑크 제니가 1월 25일 공개한 ‘젠(ZEN)’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빠른 비트의 연타에 맞춰 다채롭게 변화하는 제니의 매력이 돋보인다. [유튜브 JENNIE 채널 캡처]

    블랙핑크 제니가 1월 25일 공개한 ‘젠(ZEN)’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빠른 비트의 연타에 맞춰 다채롭게 변화하는 제니의 매력이 돋보인다. [유튜브 JENNIE 채널 캡처]

    블랙핑크 제니가 솔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선공개한 싱글 ‘러브 행오버(Love Hangover)’가 빠르게 반응을 모으고 있다. 동시에 또 한 곡, 1월 25일 유튜브로만 공개한 ‘젠(ZEN)’이 팬들의 폭발적 관심을 얻고 있다. 음원을 정식 발매하지 않고 뮤직비디오 형태로만 공개했으니 선공개곡보다 ‘트레일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정식 프로모션은 없으나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자 미리 공개한 것이라는 취지에서 보면 이 방식이 ‘선공개’의 참뜻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다.

    ‘ZEN’ 뮤직비디오에서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건 조기석 감독의 독창적인 미감이다. 신라 금관과 거대한 연꽃, 부엉이 분장을 한 기하학적 대형의 군무, 무수한 사람으로 이뤄진 거대한 날개, 거울처럼 복제되고 반복되는 이미지들의 몽환성, 빠른 비트의 연타에 맞춰 다채롭게 변화하는 제니의 모습 등 매 순간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하는 3분 30초다. 그 속에서 제니는 한국의 고대 혹은 문명 이전의 원초 세계부터 현대를 지나 초현대까지를 누빈다. 가만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채로. 마치 태초부터 있어온 초월적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손을 펼쳐 비를 부르면 비가 내리고, 빗방울이 공중에 멈춰 선 세계를 가로지르는 그런 인물이다. 지극히 탐미적으로 재해석된 동양풍 미술은 제니의 신화적 모습을 꽉 차오르도록 완성한다.

    팝 음악 지평 확대하는 여성 아티스트의 도전

    듣기에 말랑말랑한 곡은 아니다. 날카롭고 육중하게 다져진 비트가 비틀린 리듬으로 곡 내내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면서 청자의 리듬감을 농락한다. 시적으로 흩뿌려지는 가사들은 동양적 정취를 느끼게도 하지만 선이 굵다. ‘나는 기(氣)이니 네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다’ ‘쏴라, 쏴라, 쏴라, 나는 그것들을 흩어놓는다. 그것들이 나의 본질을 흔들 수 없다’ ‘비, 한밤의 개화, 어둠 속에서 나는 자라난다’ 같은 구절들이다. 이 내용을 무게감 단단한 저음으로, 또는 특유의 날카롭게 가시 돋친 음색으로 풀어내는 제니 목소리도 이 곡에서 놓치기 아쉬운 매력이다.

    은유를 가혹하게 걷어내고 보자면 사실 익숙한 이야기다. ‘네 생각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시련은 나를 강하게 한다’ 같은 내용은 K팝과 힙합에서 수없이 반복된 테마다. 하지만 이를 신비주의적 동양미로 휘감아 아티스트에게 아찔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금 팝 시장에서는 특히 여성 아티스트들이 대담하고 새로운 음악적·시각적 시도와 과감한 메시지로 팝 음악의 지평을 확장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ZEN’은 이에 대한 제니의 강렬한 응답인 셈이다. 블랙핑크의 첫인상을 좌우한 얼굴이자, 리사와 함께 가장 대담한 모습을 펼쳐온 그에게 실로 걸맞은 작품이다. 정규 앨범을 기다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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