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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극복형’ 유튜버가 뜬다

파산, 가난, 장애 딛고 유튜버로 ‘인생 2막’ 연 사람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김솔 인턴기자·한양대 영문학과 4학년

    입력2019-01-21 11: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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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고시원. 6.6㎡ 남짓한 비좁은 공간은 유튜버 한세상(49·가명) 씨가 스마트폰을 켠 순간, 어엿한 세트장이 됐다. 책상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스마트폰을 고정하는 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사업 실패와 두 번의 파산. 그로 인해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그는 현재 ‘TV한세상’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다. 채널을 개설한 지 3개월 만에 구독자 수 1만4000명을 돌파했다. 고시원에 앉아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은 첫 영상은 조회수 32만 회를 넘어섰다. “팬이 보내줬다”며 쌍화탕 한 포를 기자에게 건네는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요즘 그는 전국 각지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다시 태어났어요. 눈빛부터 맑아졌죠.” 그가 말했다. 

    유튜버 한세상(가명) (왼쪽) 김덕배 이야기 [김솔 인턴기자,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버 한세상(가명) (왼쪽) 김덕배 이야기 [김솔 인턴기자,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 채널 ‘김덕배 이야기’의 운영자 김덕배(32) 씨는 본격적으로 유튜브 활동을 개시한 지 6개월 만에 19만 명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게 됐다. 과거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전국 지정 숙소에 거주하며 일하는 ‘숙식 노가다’에 대한 후기 영상 등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는데, 영상마다 조회수가 수십만 회를 웃돌았다. 그는 ‘노가다 일급 안 떼이는 방법’ 등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한 달에 50만 원을 벌어 월세와 공과금을 충당해보자’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매달 300만 원 안팎의 수익을 내고 있다. 김씨는 “가스가 끊겨 버너를 사용했을 정도로 궁핍하던 지난겨울에 비해 올겨울은 형편이 넉넉한 편”이라며 “좋아하는 일로 수익을 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유튜버로 새 출발!

    동훈타파 [유튜브 화면 캡처]

    동훈타파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로 ‘인생2막’을 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난, 실직, 장애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 발판으로 유튜브를 택하는 것이다. 초기 자본이 적게 들고 조작법이 간단하다는 유튜브의 특성 또한 이들에게는 매력이다. 게시한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거나, 채널 구독자 수가 늘어 간접광고 등을 진행하면 수익이 난다는 점도 이들이 유튜브를 택한 주요 이유다. 

    몇몇 유튜버는 유튜브로 얻은 경제적 도움 외에 자신만의 콘텐츠를 키워가면서 느끼는 정신적 만족감 또한 재기에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어쩌다장애인함박TV’를 운영하는 함정균(47) 씨는 갑자기 맞닥뜨린 장애를 극복하는 데 유튜브가 힘이 됐다고 한다. 세계대회에서 수상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마술사였던 그는 2013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지가 마비됐다. 절망에 빠진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유튜브였다. 함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역에서 환승할 때 겪는 어려움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전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다 보니, 내가 가진 장애를 인정하고 적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뇌병변을 앓는 신동훈(20) 씨도 구독자 수 7000여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동훈타파’를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이나 ‘먹방’ 등이 주력 콘텐츠. 그는 “장애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해 친구를 사귈 수 없었는데, 유튜브 활동으로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구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자신의 고난을 털어놓거나 이를 극복해가는 유튜브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위안과 공감을 준다. 화려한 세트장이나 값비싼 촬영 장비는 볼 수 없지만,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튜버에게 조금씩 친근감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채널 구독자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유튜버가 자신의 아픔을 털어내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구독자도 있다. 평소 유튜브 영상을 자주 시청한다는 손모(25) 씨는 “역경을 이겨냈다는 유튜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꾸준히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미닝아웃 시대…시청자는 위로와 공감 원해

    어쩌다장애인함박TV (왼쪽) 박찬협TV잡식이 [유튜브 화면 캡처]

    어쩌다장애인함박TV (왼쪽) 박찬협TV잡식이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 채널 ‘박찬협TV잡식이’를 운영하는 박찬협(43) 씨는 “비트코인 관련 사기를 당해 2억 원을 잃었다. 내 비극이 누군가에겐 타산지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유튜브 채널을 통해 털어놓았다. 나의 솔직한 태도 때문에 5000명에 가까운 구독자가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인 크리에이터를 관리하는 MCN(다중채널네트워크)업체 유커넥의 관계자는 “평범하지만 시청자와 공감대를 쌓을 수 있는 유튜버에게 구독자가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닝아웃(meanig out)’이라는 신조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닝아웃은 개인의 취향 또는 신념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선언하거나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권위자의 식견보다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전문가나 유명 인사보다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튜버를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식하는 것이다. 취업난, 경기불황 등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공감과 위안이다. ‘고난 극복형’ 유튜버가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는 환경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유튜버들은 “유튜버 도전을 만만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덕배 씨는 “초보 유튜버는 혼자 촬영과 편집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 유튜브를 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소수만 큰 성과를 거두는 만큼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할애할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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