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

올해 넘기기 전 꼭 들어야 할 음반들

이사라의 ‘LIFE’, 김사월의 ‘로맨스’, 강아솔의 ‘사랑의 시절’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8-12-10 11: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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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엠넷]

    [사진 제공 · 엠넷]

    연말은 연초, 연중과는 완전히 다른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해가 넘어가기 전 만나야 할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다. 해가 바뀐 뒤 만나도 괜찮을 텐데, 괜히 그렇게 된다. 관계의 자장 속에 여전히 당신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다른 휴일에 비할 바 없이 크리스마스에는 무엇을 할지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건 연인이건 친구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넘어가면 왠지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평일을 주말처럼 보내며 흥청망청 간수치를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울 변두리 호텔방을 잡아 고적하게 혼자 보낸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흥청망청하건, 고적하건 어쨌든 연말이란 특별하다. 만약 연말이 여름이라면 또 다른 느낌이었으리라. 동남아에서 새해를 맞아본 사람은 동감할 수 있지 않을까. 들뜨기도 하고 차분하기도 한, 그리하여 양가적 감정이 혼재되는 시즌에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 있다. 파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오붓한 시간이나 쓸쓸한 시간에 어울릴 법한 음악이다.

    조지 윈스턴 ‘December’ 닮은 앨범

    이사라 [사진 제공 · 엠넷]

    이사라 [사진 제공 · 엠넷]

    술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놀아봤자 별거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조지 윈스턴의 앨범 ‘December’를 듣곤 했다. 순백의 바탕에 얇디얇은 서체로 인쇄된 앨범 타이틀, 평화로운 사진이 어우러진 커버에서 조심스레 검정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면 피아노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녹음했다는 조지 윈스턴의 연주가 흘러 나왔다. 몇 곡은 당시 CF에 쓰이기도 했다. 

    많은 한국인이 조지 윈스턴의 연주로 파헬벨의 ‘캐논(카논)’을 처음 접했을 것이다. 뉴 에이지라고 했지만 의미 없는 분류였다. 조지 윈스턴이 무슨 대단한 사상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을 리 없다. 그는 그저 피아노에 담긴 아름다움을 최대한 뽑아내고 연주했을 뿐이다. 지금도 그 앨범을 갖고 있다. 오래되고 관리도 잘하지 않아 이제는 레코드에서 자글자글 소리가 난다. ‘캐논’은 특히 그렇다. 마치 중학생 때 일기처럼, 사춘기의 지문이 묻어 있는 이 앨범을 나는 지금도 듣는다. 빈스 과랄디의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피아노 연주에 대한 감성이 그때 정립됐던 것 같다. 

    조지 윈스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이 앨범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지난봄 발매된 이사라의 ‘LIFE’다. 재즈와 클래식, 그리고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이사라는 ‘재주소년’의 멤버 박경환의 아내이기도 하다. 오래전 재주소년의 세션 연주자로 만나 가연을 맺었다. 



    음악 하는 사람끼리 부부가 되면 따로 활동하기 마련인데 그들은 줄곧 함께 했다. 피아노 소품집인 ‘LIFE’를 낸 것도 박경환의 제의로 이뤄졌다고 한다. 총 11곡이 담긴 이 앨범은 이른바 ‘비평적인 앨범’은 아니다. 그러니까, 실험적이거나 예술적으로 혁신적이거나 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있어 보이는’ 앨범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조지 윈스턴의 연주를 누가 그런 이유로 들었나. ‘LIFE’ 또한 그렇다. 틀어놓으면 산책하고, 집안일하고, 책 읽고 하는 평범한 순간에 평범하게 얹힌다. 요 몇 년 사이 음원 차트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그런 달달한 멜로디도 아니다. 맛으로 치면 오히려 담백한 쪽에 가까울 것이다. 경도를 대입하자면 말랑말랑하기보다 포근하다. 그러면서 한없이 유려하다. 건반에서 숨소리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음악을 들을 때면 ‘잘 자란 동심’이란 말을 떠올리곤 한다. 성장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나이테의 중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 만들고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다. 만약 조카가 집에 놀러온다면 말없이 이 앨범을 틀어주고 싶다.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의 취향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김사월 [사진 제공 · 비스킷 사운드, 뉴시스]

    김사월 [사진 제공 · 비스킷 사운드, 뉴시스]

    올해 유달리 귀에 오래 감돌았던 건 여성들의 목소리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해가 넘어가기 전 만나야 할 사람들과 약속을 잡듯이, 해가 바뀌기 전 그들을 소개하고 싶다. 마침 연말에,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 더욱 그러고 싶다. 

    첫 번째가 김사월의 두 번째 앨범 ‘로맨스’다. 2014년 김해원과 듀엣 앨범 ‘비밀’로 데뷔한 김사월은 2015년 솔로 데뷔 앨범 ‘수잔’으로 하나의 지평을 열었다. 2017년 라이브 앨범에 이어 공개한 두 번째 앨범을 들으며 탄성을 자아냈다. 커리어를 하나씩 쌓을 때마다 성장하는 게 귀에 들려서다. 

    누구나 언젠가는 연애를 한다. 연애란 관계의 가장 깊고 지독한 형태다. 이유 없이 빠져들고 이유를 거쳐 멀어진다. 이성과 상식이 좀처럼 개입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이성과 상식으로 어찌할 수 있는 관계라면 덜 힘들다. 덜 달콤하다. ‘로맨스’는 그런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수잔’에서는 수잔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의 생각과 생활을 하나의 스토리로 풀어냈던 김사월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앨범 속 12곡을 서로 연결되는 각각의 챕터로 풀어낸다. 온전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결핍이 서로를 끌리게 한다.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멀어진다. 질투한다. 증오한다. 사랑을 통해 결핍을 채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결핍은 결국 채워지지 않기에 결핍이다. 

    잠들어 있던 본연의 결핍이 다시 자라나는 순간, 우리는 혼자로 회귀한다. 그래서 많은 로맨스는 결국 허무의 발라드가 된다. 이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김사월은 탁월한 가사와 그에 꼭 맞는 음악으로 표현해낸다. 

    선명하게 들리는 발음은 몰입을 돕는다. 미술을 전공하고 문학평론가 신형철(현 조선대 교수)에게 국문학 수업을 들었던 20대 초반의 경력 때문일까. 김사월은 ‘심상’과 ‘표현’, 그리고 ‘소리’를 모두 갖춘 극히 예외적인 뮤지션이다. ‘로맨스’는 ‘수잔’으로 받았던 관심이 결코 거품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이 앨범을 조카에게 들려주지는 못하겠지만 “연말 따위는 인간이 만들어낸 단위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중요한 건 연말이 아니라, 계절의 끝인 겨울이라는 점을 말없이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다.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병 주고 약 주면 된다. 

    강아솔 [사진 제공 · 워너뮤직코리아, 뉴시스]

    강아솔 [사진 제공 · 워너뮤직코리아, 뉴시스]

    제주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세 번째 앨범 ‘사랑의 시절’이 있다. 두 번째 앨범 ‘정직한 마음’으로 시집을 읽는 듯한 사색의 순간을 전해준 강아솔은 이번 앨범에서 한층 온기를 더한다. 

    피아노를 바탕으로 한 편곡에는 기품이 있고, 그 위로 강아솔은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린다. 위로라는 진부한 단어가 이 앨범에서 본연의 의미를 찾는다. 몇 곡의 제목을 적어본다. ‘겨울비행’ ‘다 고마워지는 밤’ ‘당신의 파도’ ‘안부인사’. 연말이다. 그래도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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