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최근 뉴스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3년 차로 접어들던 2015년 2월 7일자 동아일보 사설의 일부다. ‘◯◯◯ 행정관이 술자리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퇴했다’는 대목을 ‘김종천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직권면직됐다’로 바꾸고, ‘행정관’ 대신 ‘특별감찰반원’으로 고쳐 쓰면 현 상황에도 딱 들어맞는다. 다만 ‘사표’ 대신 ‘원 부처 복귀’라는 점이 차이다.
‘청와대는 아주 오랫동안 사기꾼들에게 효과적인 속임수 수단으로 사랑받아온(?) 기관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인사를 사칭한 사기 성공률이 92%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을 정도다. 청와대 비서관을 사칭하는 사기꾼들은 이른바 힘 있는 부서인 ‘민정’이나 ‘사정’ 부서 소속임을 과시한다.’
김영헌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수사과장이 쓴 책 ‘속임수의 심리학’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권력을 앞세워 남을 속이려는 이들이 애용하는 기관이 청와대 ‘민정’ 또는 ‘사정’ 부서 소속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속임수’가 아닌 진짜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 직원들이 비위에 연루됐다. 부패를 감시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비위 의혹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진상을 조사해달라”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뉴시스]
이는 암행감찰을 위해 청와대 직제표에 특감반원을 명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과 급여 등을 담당하는 총무비서관실, 특감반원과 함께 근무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 그리고 민정비서관과 민정수석 정도만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김 수사관은 자신이 감찰을 담당한 정부 부처의 채용에 지원했다 청와대의 만류로 포기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동료 특감반원들과 부적절한 골프 회동을 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조국 민정수석은 “특감반원 가운데 일부가 비위 혐의를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특감반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고위직 비리 많았던 MB 청와대
청와대는 직원의 비리나 일탈 사건이 터지면 징계권이 없다는 이유로 파견 공무원을 원 부처로 복귀시키고, 별정직 채용 인사는 사표를 받는 식으로 처리한다. 이것만으로도 ‘강력한 징계’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조 수석도 경찰과 검찰 측에 청와대에서 복귀시킨 특감반원의 비위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하지만 청와대로 파견 나갔다 비위 의혹을 받고 원 부처로 복귀한 이후 징계 등 후속 조치가 유야무야된 사례가 적잖다.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불감증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청와대 파견 근무 때 민간기업 등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청와대에서 원 부처로 복귀한 이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청와대 근무 때 비리 의혹으로 원 부처로 복귀하게 된 행정관은 대부분 부처에서 핵심 보직을 꿰차는 등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청와대 직원의 일탈이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역대 정부 가운데 정권 초 청와대 직원의 잡음이 가장 많았던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취임 석 달 만에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고, 취임 첫해에만 금품과 향응을 받은 행정관 5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2014년에도 청와대 행정관 5명의 위법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청와대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2014년 11월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의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문건 내용을 조사한 청와대와 검찰은 당시 문건 내용이 허위라고 결론 내렸지만 2년 뒤인 2016년 10월 최순실게이트가 불거졌고,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문건 유출과 관련해 기소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은 재판에서 무혐의 선고를 받았고, 2016년 20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돼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조 의원은 최근 민정수석실 특감반원들의 비위 의혹이 불거지자 ‘민정수석에게 현명한 처신이 요구되는 때’라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조 의원은 “대통령을 직접 모시는 참모는 다른 공직자들보다 더 빠르고 더 무겁게 결과에 대한 정무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제 민정수석이 책임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먼저 사의를 표함으로써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 덜어드리는 게 비서 된 자로서 올바른 처신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청와대 행정관들의 위법 사실이 무더기로 적발된 것과 관련해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비리·부패에 대한 정보 및 첩보 수집을 통해 더 큰 비리와 부패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정권 초부터 청와대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감찰 활동을 벌였다”고 회고했다.
특감반이 제대로 활동하면 더 큰 비리와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인데, 정작 공직 비리와 부패를 감찰해야 할 특감반이 논란의 중심에 선 현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한 한 인사는 “청와대는 내부 감찰 시스템이 잘 갖춰진 조직이다. 그런데 특감반의 경우 창성동 별관에서 근무하는 탓에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직기강 확립 + 특감반 개선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하위직 직원의 비위보다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의 비리 의혹이 더 많았다. 2012년 7월에는 당시 김희중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1억 원 안팎의 돈을 건네받은 의혹이 제기돼 청와대를 떠났고, 그 전에는 김두우 홍보수석과 김효재 정무수석비서관이 각각 저축은행 비리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청와대를 나왔다.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과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도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청와대 인사들은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정권 출범 초 술자리 접대 파문으로 물러난 양길승 제1부속실장과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여겨지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청와대 안살림을 맡았던 최도술 초대 총무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야당의 집요한 공세로 이들 세 사람에 대한 특검이 도입됐고, 특검 수사 결과 이들 가운데 최 전 비서관만 기소됐으며 나머지 두 사람은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수석에게 특감반 개선 사항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회적인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대신 제도 개선을 추진하라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 파견 직원의 비위를 적발해 원 부처로 돌려보냈지만, 복귀한 이들이 오히려 주요 보직을 맡아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으로부터 공직 기강 확립과 특감반 개선 사항 마련이라는 주문을 받아 든 조 수석이 특감반 전원 원 부처 복귀라는 강수 이후 특감반 비위 의혹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갈지 주목된다.
역대 정권의 청와대 기강 문란 사례
문재인 정부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특감반)…비위 의혹으로 특감반원 전원 원 부처 복귀
박근혜 정부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
•2013년 :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 경제수석실, 민정수석실 행정관…민간기업 등으로부터 금품과 향응 제공받아 원 부처 복귀
•2014년 :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민정수석실, 홍보수석실, 총무
비서관실 행정관…청탁과 품위 손상 등의 이유로 원 부처 복귀
이명박 정부
•김희중 제1부속실장…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1억 원 수수 혐의로 사퇴
•김두우 홍보수석…저축은행 비리로 사퇴
•김효재 정무수석비서관…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사퇴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
노무현 정부
•양길승 제1부속실장…술자리 접대 파문으로 사퇴
•최도술 총무비서관…특검에서 금품 수수 의혹으로 기소
김대중 정부
•기능직 8급 청소원 이윤규…정현준 게이트 주인공인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으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 수수
•민원비서과실 김모 행정관…포항제철 납품업자 문모 씨로부터 6000만 원 받고 납품계약 연장 추진하다 구속
•이재만 제1부속실 행정관…최규선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사퇴